호롱불
몇 년째 비어 있는 시골집을 헐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점점 흉물로 변해서 바라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마치 생명 다한 나목이 눈비를 맞으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연명하느니 차라리 흙으로 돌려보내자. 이것이 순리라 생각했다.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큰방의 지붕을 육중한 굴착기가 찍어 눌렀다. 지붕이 풀썩 먼지를 일으키며 내려앉았다. 뵌 적 없는 선조의 손 떼 묻은 흙벽과 서까래가 차례대로 속살을 드러냈다. 명색이 몇 대에 걸쳐 내려온 집인데 굴착기와 실랑이 한 번 하지 않고 사라졌다. 집이 있던 자리는 금방 횅한 공터가 되었고, 그 위로 고요가 덮였다.
그때 눈에 익은 하얀 호롱 하나가 흙더미 속에서 몸통을 반쯤 파묻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골방 어디 깊숙한 곳에서 나온 듯 눈부셨다. 나는 채신머리없이 달려가 덥석 감싸 안았다. “아! 어머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호롱을 보면, 어머니를 떠올리는 버릇이 있다. 호롱에서 피어나는 불면 꺼질 듯 휘어지는 불이 어머니의 가는 허리를 생각나게 했다. 어머니에게 불어 닥치는 바람은 아버지였다가 할머니일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힘들게 한 것은 우리 집을 둘러싼 주위에서 나오는 냉랭한 기운이었다.
한여름 밤이면 어머니는 호롱불 아래서 길쌈을 했다. 나는 까닭 모를 어머니의 긴 한숨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의 밥상을 책상 삼아 숙제를 했다. 노릿한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깜빡 조는 사이에 호롱불이 내 앞이마 머리털 몇 올을 태웠다. 놀란 어머니가 나를 이불 속으로 쑥 밀어 넣었다. 나는 금방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투는 꿈을 꾸었다. 며칠 전 있었던 일이 생시처럼 나타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었지만, 아버지의 바지를 잡고 매달렸다. 구석으로 내몰리는 어머니의 바람막이가 되었다. 나를 잠시 내려다보던 아버지는 바람을 휙 일으키며 방을 나가버렸다.
부모님이 다투는 이유를 어린 내가 세세히 알 수는 없었다. 단지 우리 초가집 사립문 바로 앞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과 관계가 있을 거라는 짐작만 했다. 이 집에는 큰아버지의 식구들이 살았다. 웅크린 채 포획물을 노리는 듯한 이 큰집에서는 늘 찬 바람이 일었다. 그것이 우리 집으로 불어오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집안에는 음산한 기운이 나돌았다. 서로에게 할 말은 눈짓으로 대충 하고 말았다. 식구들은 집안이 뒤숭숭하게 된 원인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달라질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장남이 잘살아야 집안이 일어선다는 할아버지의 믿음에 따라, 문전옥답은 고스란히 큰아버지의 몫으로 돌아갔다. 우리 집은 과즙이 빠져나간 껍질처럼 헙수룩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머슴이 둘이나 있는 큰아버지네 볏가리는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았다. 그러나 우리 집 것은 납작 엎드렸다. 마치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듯 자세를 낮춘 채 어딘가 절실해 보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코앞에 있는 큰집에 살 수가 없었다. 한 살림 크게 차려온 큰며느리의 콧바람이 드세었기 때문이다. 매달린 혼인을 했다가 혼이 난 할아버지는 작은 며느리만큼은 내리 혼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산골 동네에서 자란 어머니를 둘째 며느리로 간택했다.
지차에게 시집오는 줄 알았던 어머니는 오자마자 시집살이를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 손이 헤퍼서 살림이 거덜 나게 생겼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동네 아낙네들이 그런 할머니를 흉보았다. 부잣집에서 몸종까지 데리고 시집온 큰며느리는 못 본 척하고, 옷고름 접히듯 다소곳한 작은 며느리만 부린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큰며느리를 다른 동네로 나가서 살게 하던가. 코앞에 살게 하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아낙네들은 마치 어머니 속을 훤히 다 들여다본 것처럼 말했다.
부지깽이도 일 거든다는 여름 농번기였다. 앞집 동서가 모시 적삼에 부채까지 들고 동네 골목을 오갔다. 그 동서를 향한 비난이 온 동네를 휘감았다. 어머니는 밤마실조차 나갈 수 없었다. 동서 없는 곳에서 사는 것이 어머니의 소원이었다.
어머니는 뒤틀려버린 삶의 틀을 반듯하게 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소원이 아버지의 화를 돋웠다. 그 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밤마다 다투었다. 해결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너 때문에 산다.”라며 어린 나를 끌어안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어머니는 태연스럽게 부엌에 나갔다. 밤새도록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도 아침밥을 짓는 것이 불안했다. 부엌문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마치 어머니가 허벅지 살이라도 베어 식구들의 아침상을 차리지 싶었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잔상 때문에, 부엌의 일이 끔찍스럽게 상상되었다. 방정맞은 생각은 조금씩 현실 쪽으로 발을 뻗었다.
어머니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침이 되어도 부엌으로 나가지 않았다. 의심쩍은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다가, 맨발로 마당을 걸어 다녔다. 나와 마주쳐도 본체만체하였다. 어떤 날은 머리를 산발한 채 작은 방 아궁이 앞에 앉아 있곤 했다.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가 실성했다고 수군거렸다.
집에서 굿하는 일이 잦았다. 허튼짓에 돈을 쓴다며 젖은기침을 하던 할머니는 건넛방에서 기척도 하지 않았다. 무당은 복숭아나무 회초리로 어머니의 몸을 자근자근 두드리더니, 제풀에 신명이 나서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방 안의 호롱불은 무당의 굿 춤에 맞추어 꺼질 듯 휘어졌다.
그때 그 호롱일까? 주둥이에는 따끔한 불기운이 아직도 남았는지 온온했다. 각을 지고 살아야 했던 시절의 어머니를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얽힌 추억들이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시골집이 사라진 대지 위에 어둠이 내리는데, 내 가슴에는 호롱불이 켜졌다. 나는 바람막이가 되려고 몸을 웅크렸다. 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어머니가 아직도 내 안에 있었다.
첫댓글 최우수상 축하합니다
상 이름에 걸맞는 참 예쁜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 멍멍~~
우리 어머니들의 일생~~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최선생님 쌍수를 들어 축하드립니다. 식당에서는 이런 큰 상인줄도 모르고,
또 남의 이야기인줄 알아들었읍니다.
글을 정독하니 역시 좋은 글임을 그리고 애틋한 마음이 가슴깊이 와 닿았습니다.
다시한 번 더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빕니다.
즐거운 저녁되세요.
이제야 호롱불을 만났습니다.
어머니같은 호롱불, 그 바람막이가 되고픈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늦게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