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려의 멸망
가. 국제정세의 변화
⑴ 왜구와 홍건적의 창궐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간의 대립 상황속에서 왜구와 홍건적이 창궐했다. 이것은 원명교체기에 따른 영향이다.
홍건적의 격퇴
1359년 제1차 홍건적 격퇴 서경(이방경, 이승훈)
1361년 제2차 홍건적 격퇴 화주(정세운, 이성계)
왜구의 격퇴
우왕 2년 1376년 崔瑩 홍산대첩
우왕 6년 1380년 8월 崔茂宣 진포대첩
우왕 6년 1380년 9월 李成桂 황산대첩에서 아지발도(阿只拔都) 격파
우왕 9년 1383년 鄭地 관음포대첩
창왕 1년 1389년 朴葳 쓰시마(對馬島)정벌
세종 1년 1419년 李從茂 쓰시마(對馬島)정벌
⑵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문제
명나라가 요동지방에 철령위를 설치한다고 통고해 오자 최영(崔瑩) 등은 분개하여 요동지방을 수복하려 했다.
⑶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우왕 14년 1388년 최영을 8도도통사, 조민수(曺敏修) 우군도통사, 이성계(李成桂) 좌군도통사로 하여 출병했으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과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성계의 요동정벌 4불가론
이성계는 우왕(禑王)과 최영이 요동을 정벌하기로 결정하자, 다음과 같은 4가지 근거(四不可)를 들며 반대하였다.
첫째, 이소역대 (以少逆大)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할 수 없다. 소역대(以小逆大)
둘째, 하월발병(夏月發兵)
여름에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 (夏月發兵)
셋째, 거국원정 왜승기허(擧國遠征 倭乘其虛)
온 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멀리 정벌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탈 것이다. (擧國遠征, 倭乘其虛)
넷째, 시방서우 노궁해교 대군질역(時方暑雨 弩弓解膠 大軍疾疫)
지금 한창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많은 군사들은 역병을 앓을 것이다. (時方暑雨, 弓弩膠解, 大軍疾疫)
나. 이성계의 집권
⑴ 실권 장악
1388년 위화도 회군이후 신진사대부들이 실권을 장악했다.
⑵ 과전법 시행
전제개혁을 추진하여 공양왕 3년 1391년 과전법(科田法)이 공포되어 권문세력은 타격을 받고 신진관료들은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⑶ 신진사대부의 분화
산진사대부는 온건파(정몽주, 길재 등)와 역성혁명파(이성계, 정도전 등)로 분화하였다. 역성혁명파는 정몽주 등을 제거하고 1392년 조선왕조를 개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