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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겨울, 소리 없이 걷다』의 충동감
- 손은교 시인, 그 개별성과 서정의 회귀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모던포엠 주간)
1. 직물 대상과 시적 형사(形似)
비록 미래가 불확실한 시간대에서 시의 본말(本末)인 서정성의 회귀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삶의 고뇌와 투명한 시혼의 빛남’은 더없이 유의미하다. 일단 <벚꽃의 내력>을 투명하게 선보이면서 올곧게 자존감을 지켜내는 특정한 시인의 ‘시적 합리성과 서정의 회귀, 그리고 시적 의미망의 탐색’은 일체의 거부감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 점에 있어 시적 개별성은 담백한 품격이 빛날뿐더러 경건함은 맑은 시혼의 발현으로 오래된 성곽(城郭)처럼 견고한 틀을 지탱할뿐더러 응축된 삶의 역동성은 존재감을 지켜낼 것이다. 이처럼 존엄한 삶의 다채로운 여적은 현상학적으로 고뇌 뒤에 묶어내는『G겨울, 소리 없이 걷다』(모던포엠, 2024)의 의미를 새삼 가늠할 바다.
특히 부산 출신인 손은교 시인은「해동문학」등단(2001) 이후, 현재 도휴갤러리 대표이며,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한국국보문인협회 자문위원, 모던포엠작가회 회원으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해양문학상, 타고르문학상을 포함한 다채로운 수상경력을 지닌 그 자신이 앞서 『꽃잎 위에 머문 카이로스』에 잇닿아 간행한 시집의 편집구조는 결(結) 고운 옷감처럼 「1부-벚꽃의 내력, 2부-그날엔 핑크뮬리 바람이, 3부-명상의 에우로페, 4부-그 겨울 내게로 왔던」의 치밀한 직조(織造)로 깔끔한 편이다. 따라서 그 자신이 자서(自序)「시인의 말」에서 “언어의 그림자를 따라 걸을 때면 스쳐 가는 바람 소리에도 고독의 영성이 靄心으로 기척 하며 나만의 민낯인 시간 속에서 꽃물 든 安閑이란 결이 되어 시를 읽는 게 아닌 바람꽃으로 듣는다.”라는 사유(思惟) 뒤 자리매김한 단순 명료한 합리적 해법에는 비장감마저 묻어있다. 차제에 “공간은 사회적 산물이다.”라는 프랑스 비평의 선구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지적은 ‘생성된 공간’의 개념으로도 해석되기에 묵언의 응시와 개아(個我)의 변형에서 시의 틀 짜기와 합일의 공간을 상오접목시킨 그 자신의 창조행위는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에 일관성을 지니고 더없이 감응(感應)할 일이다. 혹여 잠시 지나쳐온 삶을 뒤돌아보면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지만, 월간 『모던포엠』151호의 지면과 소중한 연이 맞물린 탓에 2016년 4월, 창조적 영혼과 시적 교감을 선명하게 투사하기 위해 푸른 생명 기호로 시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교신하며 집중과 선택의 공간을 제공하는 「모던포엠 포커스」에서 조우(遭遇)하게 되었다.
비교적 차별성을 지니되 안정된 시적 정조로 시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놓은 시적 세계를「시적 감응(感應)과 푸른 생명 기호의 통섭(通涉)-손은교 시인의 창조적 영혼과 묵언(黙言)의 시학」으로 결속(結束)을 지어 그 자신의 시 의식의 중량감을 비중 있게 기술했다. 한편 특이하게도 ‘상서로운 고해성사 가슴에 한 장씩 붙이고 있는’ 시적 정황에서도 “겨울 중심에 선 고해의 몸짓들이 외롭다/가벼워지기 위한 이별의 흔적에 이끌려 눈발 내리닫는 바람이 접어든 겨울//하얀 뼈 사이로 삐꺽거리며 길을 묻는 자들의 시선은 지치고 흔들릴 때마다 살아내야 할 수직을 향한 입술을 벙그는 자작나무를 닮아 있다(G겨울, 소리 없이 걷다-자작나무)”의 일면에서 “그대 내밀한 목소리에 다시 떠올라/하나 둘, 우리의 나루터에 꽃등을 켜는 푸르른 사랑(별 하나의 님)”에서 그 자신의 시적 형사(形似)는 자유로운 바람의 영혼에 견주어지는 정조(情調)다.
따라서 잇닿는 시편인 <( )열고 ( )닫고>에서 시적 묘미의 구도처리는 더없이 “( ) 열고-사랑하고, 이별하고, 첫눈같이, 마지막같이, -( ) 닫고.”의 일면도 경이롭지만, ‘카랑한 달빛이 바다를 탐미하는 밤’에 잠들지 않고 일상의 삶에서 “꿈결처럼 곁을 지키던 난해한 불면이 당신의 세월을 덥고 하냥 그립기만 한 갇혀버린 백서를 걷어내며//여여하신가도 바다, 안부를 묻습니다(안부를 묻다)”의 기법은 친숙할뿐더러“때 되면,/생각을 see//기어코,/마음을 see//기다림이면,/눈물이 sea sea(Coming road)”에서 그 시적 수사적 기법(craft) 또한 낯설지 아니한 신선한 충동감dp 의한 감동의 회복임에 틀림이 없다.
각론하고 화자(話者)인 그 자신의 시 양식(樣式)에 호흡의 완급이나 시행의 장단(長短)이 지극히 자유롭게 처리된 “16만 도자대장경의각, 푸르른 역사로 문장을 펼치며 帖으로 열락을 되짚어오는 잠언의 성지(장엄한 처소, 통도사)”의 일례나 또는 <불멸을 敍事하다>는 물론이고 “푸른빛 은편銀片의 섬//수억 년 침묵이 몸 푸는 비명소리(북극의 신음)”의 보기도 그렇지만 <고독, 짙어서 미소 짓는. 1>이나 <오색찬연 타기>는 명상호흡으로 짐짓 묵언으로 헤아릴 점이다.
유리알 같은 기억의 떨림이 하얗게
성성한 새벽 에오스 신명으로 갉아먹으며
여
전
히
그 녀석 내 옆에서 동침한 채//
-<고독, 짙어서 미소 짓는. 1>에서
향기도 절제한 아름다움 되어 당신이 있어 하늘 보고 바람을 따라 길고 긴 별 들의 행진을 마주하는 따스한 가슴속 꿈이야 잠 들고 있는 것을//
이보시게, 이 꿈 깨거들랑//
-<오색찬연 타기>에서
위에 인용한 시편에서 무엇보다 그 자신의 문학성을 확증하려는 의중은, 인간소외의 문제를 온몸으로 항변하다가 사유와 직면하는 대상과의 관조(觀照)를 통해 거대한 공해의 도시공간을 뛰쳐나와 자연(physis)과 연계성을 맺는 현존재(Dasein)로서 그 자성(自省)이 곧 삶의 본질을 통합하려는 집념임이 파악될 것이다. 이처럼 그 자신이 정신적 외상(trauma)으로 고통받는 소외된 타자와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해 깊은 밤 홀로 고뇌하며 시어(詩語)의 극간(隙間)을 ‘직물 대상의 응시와 화해의 시학’으로 풀어낸 따뜻한 감성의 관심사가 평안과 위로의 안겨줌이기에 못내 감사할 일이다.
2. 합리적 해법과 묵언의 응시
모름지기 지극히 생산적인 정신적 결과물은 이 땅의 시인들이 비열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시간대에, 그 자신이 상처 입은 영혼을 맑게 치유하는 ‘고귀한 성직자, 작품에 대해 충실하고 개방적인 중개자, 그리고 시혼이 깨어 있는 시인’으로 시대적 소임을 온전히 수행하기에 더없이 가치를 지닌다. 아울러 미래의 충격을 감당할 미적 주권을 상실한 우리의 현대 시단에서 이같이 ‘차별화된 특이성과 지조(志操), 그리고 자존감의 회복으로 존경받는 시인이라’는 사실은 결코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다. 그렇다. 특정한 정신작업의 종사자에게 탄생의 기쁨을 수반하는 고통은 세모나 네모처럼 모남의 형태가 아닌 둥근 마침표(.)인 ‘생명의 씨앗’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그 자신의 「합리적 해법과 묵언의 응시」뒤에 ‘꽃길마다 하르르 깃을 펼친 실안개’가 아득할지라도 시 형식의 틀을 자유롭게 이탈(離脫)한 “삶의 무게에 질린 민낯//무작정 물들이는 심장이 뛰어 관문의 꽃으로 線을 넘는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으로 가는 일(그날엔, 핑크뮬리 바람이)”에서 시적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꽃향기 번져나 다발인 시점에서’ “꽃잎이 E 단조의 선율로 운다//봄,//곧 작별이다(E 단조의 봄날)”에 이채로운 것은 그 자신의 ‘기억의 숲 언저리엔 향수 말린 바람이 얹힐 것이다.’
또 한편 <비 오는 날, 낚詩>의 보기나 <푸른 산 詩行>은 “花, 花, 행간의 차림(진달래, 마음을 묶다)”을 통해 자유로운 바람의 영혼처럼 그 자신의 시혼은 ‘바다에 비 내리면 물빛 그림자 밟은 바람이 섞여오듯’ 그 얽매임을 지극히 거부하고 있다. 여기서 “같은 바람이 불어도 각자의 파도 소리를 울리며 거문고 소리가 난다는 슬瑟도바닷물과 갯물이 만나는 합수合水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라는데//똑같은 말을 들어도/사람과 생각이 다른 소리 울리며(與民樂의 바람)”를 통해 시적 상상력을 초월하여 ‘니르바나 꿈으로 지상의 하늘’을 경이롭게 열어주는 분위기다.
까닭에 능숙한 화가의 화필이나 물오른 연주자의 손끝에서 신선한 음의 세계가 창조되듯 “바벨이 허락한 사하라 연안/얼어버린 불안을 접고 칠흑 같은 어둠의 고요가 입적한다//클래식 배회(물오른 VHF)”는 못내 신선한 충동으로 ‘작렬하는 외로움 앓는’ 감회(感懷)를 이처럼 일깨움은 물론 “붉음 섞인 앙금//소복이 구슬 꿴 양식장 가로질러 포용의 접선으로 경계를 넘나들며//일상을 엮는 점ㆍ점ㆍ점(이다지오의 애가)”의 일면이 허망한 삶의 일상에서 ‘피아노 소나타 4막 5장을 듣는’ 여유로움으로 그 존재성의 의미를 아름다운 삶의 잠언으로 일깨워주거나 다독여 줄 것이다. 각론하고 “피아노 소나타 1막 2장을 연주한다//온몸 가득 스스럼없을 심혼 열어 그리움 동여맨 뉘엿뉘엿한 바다(청해진에 서서)”의 서경(敍景)은 경이롭지만, 또 <청산도의 함성>에서 충직한 독자의 오감(五感)을 자극하여 ‘감동의 느낌표(!)’로 낙점을 찍도록 맑은 언어를 튕겨내는 시적 작위(作爲)에 비장감이 묻어난다. 그 같은 관점에서 짐짓 숨을 고르고 손금을 보며 그 자신의 시편을 분할·통합하면, 시적 대상의 공간은 ‘강과 산, 그리고 호수와 바다’로 변형되어 확장될 것이다. 까닭에 자연(풀꽃과 숲)이 들려준 깨우침의 귀 기울임으로 하여 아득한 유년의 회감(懷感)에서 기인(起因)된 정신풍경의 조응에 비로소 일상의 자잘한 언어의 가닥은 인용한 시편처럼 ‘느림의 시학’으로 그만의 개별성을 지닐 것이다.
詩聖이 나투어 낸 숱한 언어들/후렴처럼 훌훌히 28수 보궁 별로 뜨서 너를 위 한,/나를 위한 풍경소리 울림으로 깊어간다//
詩든 그리움 도져 윤독하는 신비로운 영감/뜰채에 가지런히 담아 두는 밤//
-<명상의 에우로페>에서
목이 길어진//
하루의 여자에게 다가선 섧음이 드나들고 봄날, 시윈의 끝을 속내로 차압해 둔 시간들이 핏발 서듯 초침으로 피어난다//
-<하루를 한 달처럼 사는 여자>에서
특히 시문학은 자기실천의 원리가 ‘하루를 한 달처럼 사는 여자처럼 기본 틀을 구성하여 설계될 일이기’에, 실험을 반복하며 소음과 매연 속에 묻히는 도시적 삶의 현상에서 애증을 되새김질하되 절제된 정감으로 잠시 시간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물상과 대면한다는 것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정신작업이기에 한층 더 신선한 생명감이다. 따라서 소중한 삶의 일상에서 응당 ‘다시 등줄기 뜨끔할 가을이 오려나 보다’라는 예감이 주어지기에 “기립한 전사를 꾹꾹 눌러쓰는 푸른 산은/그 언덕의 둥지 꼬옥 끌어안고 생각의 뜨락 차오르게 울어댄다(눈감으면 여백이)”라는 보기도 그렇지만, 수시로 접하는 즉물적 대상인 ‘차 안과 피안의 경계도 이렇듯 안개였을까?’라는 반문이 주어진다. 또 한편 “생계가 걸린 그물 끝 임계점 온도에 겨주어 생성을 수태할 날빛 들이마시며 출어 뱃머리 매어둔 어머니의 눈물에 파도와 누빌 고통에 강타당한 묘약(妙藥)으로 밤낮을 낚아채어 밝히고 안개 울음 자욱한 아우성에 헐떡이는 헐벗은 바다 미망을 더듬으니 쏟아진 샛별 날아다닌다(미량의 새벽)”라는 그 자신의 명상호흡에 온전한 평상심이 유지되는 멋스러움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새악시 보듬듯 안고 번개같이 돌아갈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기에, “廣寒樓 이도령이 春香을 껴안고 돌 때/거북등골짝 변강쇠는 옹녀 계집을 안고 돌았지만/함양 산청 물레방아는 차돌같이 지리산을 안고 돌았다(咸陽 山淸 물레방아)”를 통해 새삼 유추되는 정황도 그렇지만 삶의 현상에서 쫓기며 몇 번인가 반복하며 지나쳤을 지극히 사소한 문제마저도 “스쳐 지나온 길들이 가물거리며/머리에선 미로의 바쁜 길 찾기 중이다(핸드폰 분실)”도 저마다 주어진 과제일 것이나 세월의 물발에 그렇게 무개념으로 지나칠 수 없다.
차제에 독실한 불자인 그 자신이 ‘쉼표 하나 새벽 산사의 허리를 안고 오르며 나직이 읊조리다 일천 배의 염원을 띄우는 “원만구족圓滿具足으로 열려진 하늘/청심하게 떨리는 님의 가피에 녹아들어/한 땀 한 땀 전미한 여백(山門을 열고)”에서 지극한 선경(仙境)의 한순간이 클로즈업되지만 “꽃잎에 매달려 달빛 휘어진 하늘로/설레이듯 도도히 날아오른다(이화, 무르익은)”의 보기처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관념을 통해 깊은 화엄(華嚴)의 세계는 몽환(夢幻)처럼 아득히 자리한다. 특히 그 자신의 제3 시집『꽃잎의 카이로스』(모던포엠, 2020)의 작품해설에서 월간『모던포엠』의 전형철 발행인이「서정의 언어미학, 그 치열성이 돋보이는 사유체계의 인지능력」으로 전제하고 서술한 그 통시적 고찰이야말로 동시대에 몸담은 그 어떤 평자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예리한 반증임은 의미 있게 다시금 숙고(熟考)할 일이다.
3. 언어의 공간과 변형의 이채로움
짐짓 시론에서 ‘시인으로서의 조건’이라는 지적은 시인으로서의 기초를 어떻게 갖추고 있으며, 시를 쓰는 환경, 즉 객관적 조건인 역사와 사회, 시대 그리고 개인적 상태에 관한 검증과 이해로 해석된다. 여기서 최소한 품격 있는 시인이라면 친숙한 어휘, 또는 시 정신이 눈부시고 의식이 날(刃) 푸르게 깨어 있는 자이어야 한다. 이 땅의 누구보다 수행자의 자세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아니하고 언어의 집짓기에 용맹정진(勇猛精進)하면서도 ‘스승 없이도 깨달음을 얻어(無師獨悟)’ 홀로 고통을 감내하며 저토록 피워낸 ‘꽃의 시학’은 빛과 향이 눈부시고 그윽한 품격이다.
그렇다. 응축된 시어(詩語)는 소통의 도구로서 지극히 생명적인 언어에 속한다. 까닭에 ‘투쟁의 논리’로 논의되는 오르테가(Ortega Y. Gasset)의 은유론은 종래의 치환 은유와 정면으로 대립 되기에, 그 자신이 진단한 현대시의 은유가 “비인간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라는 주장은 주지할 바다. 여기서 시집 편집의 특이성이랄까?「제4부 그 겨울 내게로 왔던」11편의 시편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 자신의 모성적인 지극한 배려심은 ‘시작 노트 위에 그린 시’의 정체성으로 시 의미는 가중될 것이다. 한편 ‘그저, 돋아난 만큼의 아픔이 마냥 신비로운’ 현상에서 “산동백의 눈을 보면서/처연한 살떨림을 보았네//문득, 기다리는 일도/이 만큼의 시간이었던가(사랑, 그대 안으로)”라는 주어짐의 추이(推移)로 그만의 합리적 해명인 ‘시선, 세상을 향해 따뜻하다. 잠재된 매력의 묘약으로 잃어버린 절반, 심장에 닿을 때까지 반쪽을 찾아 헤매는 사랑 그 자체가 인간에겐 영원한 명제이다. 신을 향해 날아오르는 낭만적 신성함이다.’라는 시작 노트의 제시로 시적 역동성은 새삼 가늠된다.
모름지기 “내게는/값나가지 않는 목록의/재산인/불명不明의 시詩들이 뿌리째 늙어간다(25詩의 노래)”에서 ‘詩人의 방 밤새워 불을 밝혀도 당신의 詩는 타지 않는다.(시작 노트)’라는 합리적 해법에 잇닿은 시적 모티프도 그렇거니와 “온몸을 털고 일어서는 향연//꽃잎 누운 자리/살아가야 할 수평을 물으며/태초, 햇귀의 가슴 짚어오는 걸음으로(화우, 꽃비 내리는)”에서 ‘도솔천에 나리는 꽃비’는 아니더라도 예외 없이 ‘꽃비, 그대의 흔적 하루를 살아도 가슴 저미는 유영은 꿈도 아까워라(시작 노트)’의 술회(述懷)는 시편의 감상에 화자의 의중을 가증시켜주기에 못내 눈물겹다. 각론하고 그 자신의 시 창작의 큰 틀은 지극히 자연 친화적인 삶의 일상에서 연계성을 지닌 인간관계 층위의 회복과 지극한 그 자신의 시적 해명처럼 ‘적정선을 유지하기 위한 타협이 아닌 변방의 전사로써 형이상학적인 공명을 울리는 명민한 자유인으로 사라스바티 안한安閑의 심장에 들이고서 순치되지 않은 야생시인으로 겸허히 깨어 있을 것’이나 “고고한 정령 가슴으로 살고/있나니//바람아, 달빛을 흔들지 마라(시인의 心路)”에서도 입증될 것이나 ‘神이 내린 하루, 마모되어 온통 가슴에 번져 노을 삼켜버린 머무는 시선마다 시간 초월한 밤, 절정의 언어들이 피고 지는, 가고 옴이 분별없을 순리로 심금을 펼쳐내어 오래도록 맑히며 머물고픈 마음의 자유 無爲! 가만가만 들여다본다.(시작 노트)’의 일관성을 지닌 몰입은 예외일 수 없다.
또 한편 “시간의 문설주에 말씀들 포개어져 쉴 새 없이 낙하한 번민과 희열 거느리며 절름발로 막을 올리고 내린다/맨 처음, 심장 곁에 나의 존재로 마련한 한 점 빛의 능선(詩, 멈춰 서서)”을 통해 짐짓 이채로운 현상은 ‘神만이 특혜를 누리려고 인간을 잠들게 하는 밤을 만들었다는데 신의 섭리를 거역하면서 밤마다 내 안의 열정인 공명共鳴을 만나 어둠 속에 깨어 있다.(시작 노트)’라는 존재감의 빛남은 못내 생명 경외의 엄숙성이다. 까닭에 그 자신은 천성적으로 담백한 품격과 우직한 심성의 소유자이기에 주위의 타자에게 등을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의 실체다. 따라서 영혼의 잔을 비우려고 노력하며 단절이 아닌 열림과 화평을 소망하는 역동성과 시적 상상력을 지닌 열린 사유의 종결자라는 확신에 일체의 주저함은 허락되지 아니한다.
결론적으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는 사회현상에서도 그간에 줄곧 ‘바람아, 달빛 흔들지 마라(시인의 心路)’를 역설하며 절박하게 경계하고 잇닿은 미래를 생명감과 실험정신으로 엄중히 대처한 손은교 시인에게 치열한 기대감이라면, 역사적 소임의 수행과 깊은 영혼의 상처로 고통받는 소외된 타자를 다독이는 분별력이다. 모쪼록 우리 시문학사의 빛나는 성좌로서 따뜻한 정신기후의 조성과 문화의 융복합을 창조적 매개물로 삼고 시 의식의 지평을 켜켜이 열어줄 것을 끝내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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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