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저물어 갑니다. 인근 선릉에서 산책을 하며 돌아보면, 온 숲이 다 가을을 노래합니다. 흙길에는 낙엽이 깔려 있습니다. 맨땅에 떨어져 자연스럽게 색이 바래지며 삭아가는 모양은 도로 위에 떨어져 번듯한 채 그냥 있는 것보다 한결 편안해 보입니다. 세상이 자연을 다 가리고 막는 시대에 낙엽은 초연하게 자연의 길을 보여줍니다. 가을 정경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정치가 심한 혼란에 빠져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을 숲은 여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나무는 여름 내내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만든 잎을 미련 없이 떨어뜨립니다. 기세좋게 머리에 이고 있던 그 푸른 잎들을 볼 때는 저 성성한 기운이 몇달만 지나면 꺾이리라는 상상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나무는 나목(裸木)이 될 준비를 합니다.
자연은 오랜 세월 변화를 거듭하면서 조화(和)와 균형(均)이라는 틀을 만들어 냈습니다. 조화와 균형은 놀랍게도 약하고 부드러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자연은 그 많은 일을 해내면서도 몰아붙이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기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를 뚫는 것과 같습니다. 노자는 이러한 자연의 활동에 질서가 있는 것을 보고 도(道)라고 불렀습니다.
노자는 세상사람들이 다투어 배우는 인의(仁義)와 병법 형명(刑名 형벌) 등 지식과 도덕이, 자연의 도와는 달리, 백성들을 형벌과 도덕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의 태평을 위해 학문을 익혔다는 사람들에게서 마치 큰 제사에 참여해서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거나, 높은 누각에 올라가 희희낙락거리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들뜬 욕망을 보았습니다. 벼슬아치들은 고개를 들고 다니고, 백성들은 세금과 병역에 허리가 휘어졌습니다. 배운 사람의 언행은 '훌륭하다(美)'고 칭송하고, 배우지 못하면 '쓸모없다(惡)'고 비웃는 세상의 풍조를 보고, 노자는 자신의 깊은 속을 드러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예’ 하는 것과 그냥 ‘응’ 하는 것이 서로 멀다면 얼마나 먼가?
그 학문에서 말하는 미(美)와 악(惡)이 서로 멀다면 그 얼마 만큼인가?
사람들은 미와 악 사이에서 두려워한다.
나 또한 이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황폐하다! 이런 일들이 그치지 않는구나!
사람들은 희희낙락거리며 마치 큰 제사를 지내는 듯하고,
또 마치 봄날에 누각에 올라가는 것과 같이 마음이 들떠 있다.
- 노자도덕경 20장
오늘 우리의 정치를 보면 노자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벌어 나라를 위해 내 놓은 세금을 마치 자기 금고에서 돈을 꺼내듯 빼내가는 것을 본 국민들은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은 세상 사는 기쁨을 눈과 귀와 코에서 구하기 때문입니다. 학문과 도덕이 쾌락을 구하는 수단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노자는 과감하게 세상의 풍조를 뿌리쳤습니다.
나는 홀로 지내며 뜻이 없으니,
마치 어린 아기가 아직 웃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의욕이 없는 듯 지척지척한 내 모습이여!
어디로 돌아갈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뭇 사람들은 모두 재물이 넘치는데,
나는 홀로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인가! 흐릿하기만 하다.
노자는 출세를 보장하는 학문을 거부하고 '어리석고 촌스러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학문과 지식을 익혀 '똑똑한' 사람들이 벌이는 정치는 도덕과 형벌로 백성을 몰아대지만, 세상은 더욱 각박해지고, 인심은 더욱 모질어집니다. 노자는 식모(食母), 즉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를 소중하게 여기겠다고 합니다. 식모는 아기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아기의 자연적 욕구에 귀를 기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밝은데 나 홀로 깜깜하고,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홀로 멍청하다.
나는 바다와 같이 고요하고, 바람에 흔들리듯 고집(주장)이 없다.
뭇 사람들은 쓸모가 있는데, 나는 홀로 어리석고 촌스럽다.
나 홀로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으며, 식모(食母)를 귀하게 여기겠다.
- 노자도덕경 20장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기를 키우면 아기는 조화와 균형을 찾습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아기의 미소는 자연이 주는 선물입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일도 결국 아기를 키우는 식모와 같아야 올바른 정치입니다. <조화와 균형>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하면(치허수정 致虛守靜 - 도덕경 16장), 저절로 얻어집니다. 노자는 자연에 대한 깊은 체험으로, 정치도 마음을 비우면 자연의 도(道)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길은 어려운 예절을 익히거나 까다로운 형법(刑法)을 시행해서 되는 것이 아니요, 자연에 맡기면 저절로 얻어지는,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길입니다(오언 심이지 심이행 吾言 甚易知 甚易行 - 도덕경 70장)
옛 시대의 정치는 비록 소박했지만 임금과 백성 모두 태평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노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치가 환상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 솥 가득한 밥을 다 먹을 수 없는 법이며, 목이 마른 쥐가 물가로 달려갈 때는 강물을 다 마실 것 같아도 제 작은 창자만 채우면 그만입니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은 억지로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정해준 분수(명 命)를 따르면 저절로 얻어집니다. 옛사람들은 이런 삶을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가 쉰다.'고 했습니다. 소박한 기쁨과 후덕한 성품은 여기서 일어납니다. 노자는 이처럼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자연의 도를 천하에 아무도 행하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고 탄식했습니다. 명예와 재물에 눈이 멀면 도둑이 다투어 일어납니다. 백성들은 헐벗고 논밭은 텅 비었는데, 비단옷에 칼을 차고 부귀를 누리는 벼슬아치를 노자는 도둑이라고 욕했습니다(도덕경 53장). 노자가 탄식한 현실은 오늘 우리 정치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름과 가을의 숲을 자꾸 돌아보아야 비로소 자신의 가을과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니, 지금 우리는 자연과는 한참이나 먼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갓난아기를 키울 때에는 그 누구도 자기의 뜻을 아기에게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때 맞추어 먹이고 재우면서 아기의 자연성을 따를 뿐입니다. 성인은 나라를 다스릴 때 백성을 어린아이처럼 대합니다(도덕경 49장). 백성이 못 배웠다고 업신여기거나 힘이 없다고 깔보지 않습니다. 훌륭한 정치는 이처럼 자기를 비우며 백성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입니다. 세상이 자연의 소리를 듣는 날이 언제나 올지 탄식하는 노자의 목소리가 숲 속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여운 2016.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