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감나무
여세주
마당에 감나무 묘목 두 그루를 심었다. 한 해 동안 뿌리를 정착하는 데 온 힘을 쏟은 탓일까? 키가 크지 않아 일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곁가지는 두어 뼘 남짓 뻗어나다가 멈추었다. 그런데 이듬해 봄, 그 여린 가지에 꽃이 피더니 대여섯 개의 열매를 달았다. 어린 녀석이 이토록 여러 개의 열매를 맺다니,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감나무를 마주할 때마다 정겨운 눈빛으로 속삭여 주었다. 빨리 열매를 맺어주어서 자랑스럽다고. 식물과도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감나무를 볼 때마다, 언제나 고향 집 마당에 서 있던 감나무가 생각난다. 감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할머니도 떠오른다. 마을 길 쪽으로 언덕진 마당 가에는 자랄 대로 다 자란 감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고목이 다 된 나무였지만, 키도 크고 가지가 뻗어 우람찼다. 앞산의 빽빽한 소나무처럼 기품 있는 자태도 아니었고, 뒷산 언덕에 줄지어 선 참나무처럼 위압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다정한 느낌을 주는 나무였다.
사립문 바로 옆에 서 있는 감나무에서는 포근함까지 느껴진다. 봄부터 가을까지 짙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그 나무 밑에서 할머니가 나를 기다려 주던 추억 때문이다. 입이 짧아 밥을 잘 먹지 않던 나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할머니는 밥그릇을 들고 그 감나무 밑에 하염없이 앉아 있곤 했다. 아이들과 마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가 우리 집 감나무 그늘에 이르면, 할머니는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간장에 비빈 밥 한 숟가락을 떠서 내 입에 얼른 넣어주곤 했었다.
나는 할머니 손에 컸다.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살면서 종종 밭일도 나가야 했으므로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께해 주지 못했다. 아무리 귀찮은 일이라도 내 시중을 들어주는 일은 할머니 차지였다. 밤이 긴 겨울이면 한밤중에 일어나서 잠든 할머니를 깨워 밥을 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손수 부엌 찬장에 남겨둔 찬밥을 가져와서는 아주 작게 자른 김치를 밥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내가 다시 잠들 때까지, 할머니는 내 등을 긁으며 옛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던 성가심에도 싫어하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가을날엔 꼭두새벽에 나를 깨워 아직 익지도 않은 파란 감을 주우러 나서야 했다. 동네 아이들이 주워가기 전에 먼저 줍겠다며 새벽에 깨워달라고 했었다. 다른 아이들이 나보다 일찍 일어나 땡감을 다 주워간 날에는 할머니 탓이라며 괜한 트집을 부렸다. 감을 줍지 못한 대신에 다락방에 숨겨 두었던 간식거리를 꺼내 주어야 떼쓰기를 멈췄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고집쟁이였다. 모든 것을 내 멋대로 하려고 하였다. 때로는 할머니가 당장에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무조건 졸라대곤 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큰 소리로 울어댔다. 그런 나에게 할머니는 큰소리로 꾸중 한번 한 적이 없다. 고집쟁이 손자를 무조건 보듬으면서 빨리 커서 철들기를 묵묵히 기다렸을 것이다. 감나무 그늘에서 밥그릇을 들고 손자를 기다리듯이.
나도 할머니처럼 감나무 그늘에 앉아 왁자지껄하게 동네 한 바퀴 돌아오는 개구쟁이 손자를 기다리고 싶다. 자식과 함께 살며 손자를 키울 수 있는 시대는 아마도 돌아오지 않겠지만, 내 자식들과 손자가 이 시골에 와서 며칠간이나마 묵어가기라도 하면 좋겠다.
시골에 집을 지으면서,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으로 방을 하나 더 만들었다. 본채에 붙여놓은 방이지만, 화장실도 따로 만들고 작은 싱크대도 설치했다. 에어컨과 냉장고, 그리고 인터넷까지 연결한 컴퓨터도 갖추어 놓았다. 손님들이 오면 차를 마실 수도 있고 하룻밤 쉬어 갈 수도 있는 방이란 의미로 이 공간을 나는 ‘게스트룸’이라 부른다. 그런데 내 속마음에 숨겨놓은 이 방의 용도는 사실 따로 있다. 처음부터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 심산이 있었다. 자식들이 구애받지 않고 쉬어 갈 수 있는 방으로 꾸미고 싶었다. 결혼하고 저희 가족이 생겼을 때를 생각하면서. 가끔, 나를 보러 오게 되면 편안한 잠자리가 있어야 그날 제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룻밤일망정 자고 갈 것이라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이 방은 대부분의 나날을 빈방으로 있겠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기다림의 공간이다. 할머니의 감나무 그늘처럼. 할머니에게 내가 그러했듯이 나의 손자도 나에게 막무가내 떼를 쓰기나 할까? 고집쟁이 손자가 떼를 쓰면 할머니처럼 귀찮아하지 않고 행복한 마음으로 손자 시중을 들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상상조차 헛된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일어난다. 환상도 경험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나 자신을 달래 보지만, 가슴속에 빈방 하나 더 생겨나고 있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