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무엇보다 수행자가 어떻게 사는지 그 실제 삶을 통해서 평가받게 됩니다. 아무리 수행이 치열하고 혹독한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실제 삶이 탐욕과 성냄에 묶여있다면 참다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삶으로 돌아오지 않는 수행도 더 큰 문제입니다. 수행과 삶의 괴리는 종교를 떠나 진지한 지성이라면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교회는 2006년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50개 교회 중 1위를 차지한 교회입니다. 미국에는 큰 교회가 많지만, 사회에 영향력이 높은 교회로는 이 교회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교회 성장을 꿈꾸는 전 세계 개신교 지도자들이 이 교회를 방문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 교회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신도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교회 목사 빌 하이벨스가 쓴 책들은 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릅니다.
2007년 이 교회는 지난 32년 동안 자신들이 지금까지 벌여온 목회활동을 평가했습니다. 심리학자와 사회학자 등 여러 전문가를 동원하여 1년 넘게 조사해서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결과가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동안의 사목활동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다양한 영성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신도들의 수가 획기적으로 늘었지만, 정작 신도들의 의식을 조사해본 결과, 성서의 가르침대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밖에서는 최고의 교회라고 평가해주었지만, 참다운 신앙과 거리가 먼 신도들의 실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발견하고 그 모순을 스스로 인정할 줄 아는 이 교회 지도자들의 지성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불자들이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키며 욕됨을 참으며 정진하는지, 그리고 그 모든 수행과 보시를 상(相)을 내지 않는 공(空) 도리로 회향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실천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마른 지혜(乾慧)’라고 하여 경계합니다. 지식과 실천, 수행과 삶의 괴리를 점검하는 일은 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지낸 한 원로 불자는 사석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선거 유세전에서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이 많았고, 국회에서 반대파 의원과 거칠게 다투는 일이 많았으니, 성내거나 악한 말을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긴 것이 아닌가?”
부처님에게 귀의한 정치가(신하)들은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하다가 우연히 <전업경>을 만났습니다. <전업경>에는 부처님에게 귀의한 꼬살라(코살라)국 신하들이 등장합니다. 꼬살라국은 마가다국과 함께 영토가 넓고 국력이 강했습니다. 신하들 또한 부와 권력이 대단했으리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이 전법을 위해 먼 길을 떠난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을 찾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꼬살라국 빠쎄나디(파사익) 왕의 대신입니다. 왕이 공원에 들어가실 때에는 저희들에게 큰 코끼리를 타게 합니다. 그리고 왕이 제일 사랑하는 궁녀들도 태우는데, 한 여자는 우리 앞에 타게 하고 한 여자는 우리 뒤에 타게 하고는, 우리를 그 가운데 앉게 합니다. 그리하여 코끼리가 비탈길을 내려올 때엔 앞에 있는 여자는 우리의 목을 끌어안고, 뒤에 있는 여자는 우리의 등을 붙잡습니다. 또 반대로 코끼리가 비탈길을 올라갈 때에는 뒤에 있는 여자는 우리의 목을 끌어안고, 앞에 있는 여자는 우리의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저 궁녀들은 왕을 위해 비단옷을 입고 온갖 묘한 향을 바르며 보석으로 장엄합니다.
우리는 이들 궁녀들과 더불어 지내지만, 항상 세 가지 일을 조심하곤 하였습니다. 첫째는 코끼리를 몰되 바른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고, 둘째는 제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여 물들어 집착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셋째는 제 자신의 몸을 단속하여 거기 넘어지고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때 왕의 여자들에 대해 잠깐이라도 바른 사유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장자들에게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대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단속하였습니다.”
장자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들 집에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물을 늘 세존과 모든 출가자나 재가자들과 함께 같이 쓰겠으며,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장자들에게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대들은 이 꼬살라국에서 돈과 재물로는 견줄 이가 없거늘, 저 많은 재물에 대하여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전업경> 잡아함경 제31권 동국역경원 (일부 요약하고 윤문)
비탈길을 타면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하도 생생해서 눈으로 그 정경을 보는 듯합니다. 왕은 자신이 아끼는 아름다운 궁녀들을 신하가 모는 코끼리 수레에 함께 태웠습니다. 왕은 주위 사람을 늘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는지요? 빠쎄나디왕은 사실 매우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을 자주 치르는 대국의 왕답게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이복동생들을 모두 죽이고는,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부처님을 찾은 적도 있었습니다. 말리까 왕비가 세상에 제일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람의 목숨이라고 말한 것은 왕의 행실을 고려하면 매우 절박한 말이었습니다.
말리까 왕비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나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전하께서는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빠쎄나디왕은 대답했다.
"말리까여, 나에게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은 없소."
왕과 왕비가 부처님을 찾아가 이 이야기를 하자, 부처님은 이렇게 시를 읊었다.
"마음이 어느 곳으로 돌아다녀도
자기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을 찾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사랑스러우니
자신을 위해 남을 해쳐서는 안 되리."
- <말리까의 경> 쌍윳따니까야(전재성 역) 3:8(1-8)
자기의 목숨이 귀한 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읊은 부처님의 시는 실로 뜻이 깊었습니다. 신하들은 유혹과 위험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했습니다. 신하들은 코끼리를 몰되 바른길을 잃을까 조심하였으며, 나아가 궁녀들의 유혹 속에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속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단속하며 자신의 일(직업)에 전념하는 것은 팔정도의 정사(正思 바른 생각)와 정업(正業 바른 행위), 그리고 정명(正命 바른 생계)에 다름 아닙니다. 신하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일생생활 속에서 팔정도를 실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바른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말보다 그 사람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음 경전은 당시 사람들이 부처님을 찾은 까닭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사슴 같은 정강이에 여위었으나 강건하고,
적게 드시고, 탐욕이 없이,
숲 속에서 조용히 선정에 드시는 님, 고따마를 뵈러 가자.
온갖 욕망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사자처럼 코끼리처럼, 홀로 가는 그 님을 찾아가서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물어보자.
진리를 가르치시고, 설하시는 분,
모든 현상의 피안에 도달하여 원한과 두려움을 뛰어넘은
깨달은 님, 고따마에게 물어보자.”
- 숫타니파타(전재성 역) '뱀의 품' 제9 <헤마바따의 경>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나'와 '내 것'이 없는 진리입니다. 원한과 두려움을 넘어선 부처님의 고요한 삶을 본 꼬살라국 신하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무아(無我)의 진리를 실천했습니다. 팔정도를 실천하며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하는 데까지 이른 꼬살라국 신하들의 높은 지성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의 순간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한 꼬살라국 신하들은 2,50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불자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운 2017.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