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처럼 사람을 보라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인도 북부의 라다크인들의 삶을 그린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작가는 라다크인들의 결혼관습이 궁금해서 오빠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젊은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오빠의 결혼은 중매결혼이었나요?”
“네, 오빠가 그걸 원했어요.”
“이곳에서는 아내를 선택할 때 사람들이 찾는 특별한 자질이 있나요?”
“글쎄요.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잘 지내고 공정하고 관대해야 해요.”
“그밖에 또 무엇이 중요한가요?”
“얼굴이 예쁜지 그렇지 않은지는 문제가 되지 않나요?”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내면이 어떤가 하는 것이지요. 여자의 성품이 더 중요하단 말이에요. 여기 라다크에서는 이런 속담이 전해져 오지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예언자 사무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사울을 대체할 이스라엘의 임금은 구하기 위하여 이사이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이사이의 장남인 엘리압을 보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가히 외모지상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얼굴과 몸매를 예쁘게 가꾸고 외모가 단정한 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그러나 속빈 강정처럼 알맹이는 없고 겉모습만 화려하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도 사무엘처럼 사람을 보고 평가하는데 착시(錯視)현상을 일으키듯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 하느님처럼 사람을 볼 수 없을까요?
먼 옛날 조금 깨어져 금이 가고 오래된 못생긴 물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항아리의 주인은 그것을 버리지 않고 물을 길어오는데 사용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주인은 깨어진 물 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다른 온전한 물 항아리와 똑같이 아꼈습니다. 깨진 물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온전히 못하여 주인님께 폐를 끼치는구나. 나로 인해 그 귀하게 구한 물이 새어버리는데도 나를 아직 버리지 못하시다니…….’ 어느 날 물 항아리가 주인께 물었습니다. “주인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고 새로운 항아리를 사용하지 않으시는지요? 저는 별로 소용가치가 없는 물건인데요.”
주인은 그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물 항아리를 지고 계속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길을 걸으면서 물 항아리에게 조용히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아라.” 그제서야 물 항아리는 고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그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습니다. 주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꽃들이 보이니? 메마른 길가에서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