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 발목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형은 데릴사위로 가고, 짝귀는 나의 숙부들에게 맡겨졌다. 나머지 식구는 어머니 친정 동생 형제가 사는 시골로 내려가 큰삼촌네 윗방을 얻어 살았다.
어머니는 사기그릇 행상으로는 우리 3남매를 먹여 살릴 수가 없어 밤에는 베도 짜셨다. 그래도 우리는 늘 배가 고팠다. 살던 방은 방문만 열면 곧바로 마당이었고, 방문 밖 왼쪽엔 부엌이었다.
눈이 쌓인 날이었다. 마당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문구멍으로 내다보니 작은형이 달려오는 발소리였다. 폭설이 쌓인 그날 이른 아침에 사냥꾼을 따라갔는데, 짐승몰이를 해주고 노루 발목 한 개를 얻어들고 달려오는 거였다.
형은 부뚜막 위에 노루 발목을 올려놓고는 물을 서너 바가지 떠서 솥에 부었다. 노루 발목을 대충 씻어 솥 안에 넣고 아궁이에 등걸불을 지폈다. 부엌비로 아궁이를 부쳤다. 불이 잘 붙은 모양이었다. 콧노래를 불렀다.
형은 무슨 볼일이 또 남아 있는지 밖으로 휑하니 달려나갔다. 잠시 뒤에 솥에서 고기 익는 냄새가 폴폴 올라왔다. 작은누나가 나가더니 주걱으로 노루 발목을 건져 바가지에 담았다. 부엌칼로 베어 입에 넣는 게 보였다. 그리곤 솥 안에 도로 넣었다. 좀더 기다린 누나는 다시 나가 노루 발목을 통째로 건져 들고 들어왔다. 말라붙은 남매의 창자는 순식간에 하얀 뼈다귀 한 개를 만들어냈다. 그걸 도로 가져다 솥에 넣었다.
잠시 뒤 또다시 마당이 울렸다. 형이 달려왔다. 급한 손놀림으로 솥뚜껑을 열었다. 건졌다. 하얀 뼈다귀뿐이었다. 형은 소리를 지르며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큰소리로 울면서 외쳤다.
“노루 괴기 다 먹었네. 지들끼리만 다 쳐먹었네.”
형이 벌떡 일어나 부지깽이를 들고 방문을 열어젖히곤 우리들을 마구 때릴 것만 같았다. 우리도 큰소리로 울어댔다. 양심의 가책이라기보다 겁이 나 울었을 것이다. 급기야 형이 부엌 바닥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젠 맞을 차례구나!’ 싶었다. 아니었다. 형은 소매로 눈물을 닦더니 방에 대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처먹으면 됐지 울긴 왜덜 울구 지랄여? 국물에다 소금이나 쳐서 먹어”
그렇게 말을 남기곤 다시 눈이 내리는 마당으로 걸어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홉 살, 열두 살 남매는 한참을 더 울었다. 매를 맞은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파서 울었는지도 모른다. 눈은 자꾸 퍼부었다. 마당 위엔 형의 발자국이 외줄로 남아 있었다.
1943년
첫댓글 영상으로 올라온 적 있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이 작품, 눈으로 다시 읽어봅니다.
영상으로 보았어요. 명품수필입니다
이 거 쑥스럽구만...ㅎㅎㅎ
다시 읽어도 감동입니다. 알맞게 절제 된 한
편의 詩였습니다.
내 어린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 여겼는데 나를 앞선 준빠님이 계셨네요.
준수 선생님,
우리 언제 한 번 만나 '불우 어린이회'라도 만들어 지난날의 회한을 날려봄이 어떨는지요.
선생님, 강건하시죠?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