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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까 치 밥
- 김정원
늦가을 햇살 거푸 불러와
할머니는 감 너댓 개를
가지 끝에 다독였다
쪽마루에 앉아
푸른 산맥 굵은 손등을 만지며
혼자 중얼거렸다
‘시린 추위 치열해도 잘 버텨 줘야 해
허기진 까치가 올 때까지
알았제......’
텅 빈 하늘에 주홍빛 까치밥
자비의 눈빛에 반짝거렸다
온 마을 등불 같이 환히
노을 속 번져가는
할머니의 하얀 박꽃미소.
▲ 할머니가 다독여 놓은 감, 까치가 먹고 있다.(사진 허홍구 시인)
이틀 뒤면 24절기의 열아홉째인 ‘입동(立冬)’인데 이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으로 입동이라 부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궁궐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한다. 이런 궁궐의 풍습처럼 민간에서도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아름다운 풍속도 있다. 이는 입동 등에 나이 든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이다. 이때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운 집이라도 치계미를 위해 곡식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했는데 이를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입동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풍속도 있었다.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내는데 음력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날을 받아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조금 장만하여 곡물을 저장하는 곳간과 마루 그리고 소를 기르는 외양간에 고사를 지낸다. 고사를 지내고 나면 고사 음식을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가져다주고 이웃들과도 나누어 먹었다. 소 같은 짐승에게도 고마움을 표할 줄 아는 우리 겨레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때 시골에 가면 감나무에 감을 다 따지 않고 몇 개 남겨둔다. 그것은 까치 등 날짐승의 겨울나기를 위해 보시하는 것이다. 여기 김정원 시인은 그의 <까치밥>이란 시에서 “늦가을 햇살 거푸 불러와 / 할머니는 감 너댓 개를 / 가지 끝에 다독였다”라고 노래한다. 이는 까치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다. “노을 속 번져가는 / 할머니의 하얀 박꽃미소”를 우리는 보는 것이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