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습니다 / 장석주
눈雪과 죄로 음습한 계절을 지나 산벚꽃 진 뒤 태풍처럼 밀려온 여름이 있었다. 그 여름의 날들엔 쌀독이 비는 것, 시작하는 일과 실패 따위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도와 족보, 도덕과 관습에 반항하고, 새벽 풀숲에서 떨어진 별을 주우며 불가능을 꿈꾸었다. 젊음이란 잔고殘高가 두둑했으니 그걸 믿고 방종에 빠졌다. 랭보같이 "바람 구두를 신고" 겁 없이 "해진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세계를 다 떠돌 기세였으나 목포나 군산 선창가 언저리를 헤매다가 돌아오곤 했다.
아직 젊었을 때 행위·열정·지식을 다 털어 넣어 판을 짜느라 골몰했으나 나는 결코 순진무구하지 않았다. 젊음의 질병, 젊음의 나태함, 젊음의 추악함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예의 없고, 파렴치하며, 막 돼 먹었다. 여름이나 젊음은 다 싸가지가 없다. 둘 다 혈기방장하지만 다스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스꽝스러운 가장행렬"의 시기다. 인생이 늘 울울창창한 여름일 수는 없다. 저 개간지 너머로 해가 진다. 가을의 서늘함이 천지간을 채울 때 늙은 버드나무 잎이 물 위에 떨어져 떠간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
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
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
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
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날> 전문(시집 《형상시집》, 1902)
하연 불꽃이 쏟아지던 여름이 끝나고, 매미 울음소리는 뚝 그쳤다. 하지만 가을 유혈목이는 독이 오르고, 말벌은 인정사정없이 사나워진다. 가을은 장년기다. 알알이 여문 수수머리를 잘라 내고, 대추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달린 붉은 대추를 따내려야 한다.
천지간에 온 이 가을은 항상 첫가을이다.. 포도 수확이 끝나 포도원은 텅 비고, 석류나무에서 석류들이 익어 이마가 빠개지며 홍보석 같은 속을 드러낸다. 나는 세계를 다 가질 듯 욕심을 부렸으나 결국은 그게 헛된 꿈이라는 걸 알았다.
숨결을 갖고 사는 동안 배운 것은 평원 위로 뜨는 달의 고결함, 뱀이 꿈틀거릴 수 있는 권리, 말없이 많은 말을 하는 키스, 초연하고 순결한 4월의 비, 영원 속을 지나가는 여름……정도다.
아직 여름이 제 화살통을 다 비운 건 아니다. 여름은 퇴각하며 도처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른다. 해는 내 뒷덜미를 뜨겁게 지진다. 해는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듯 며칠 동안 남아 남국의 날을 베풀고, 저 햇살로 말미암아 여름 끝물 과일과 독한 포도주에 단맛이 들 테다. 떠날 자는 서둘러 떠나고 남을 자는 남는다. 한적한 동네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낮 닭이 길게 운다. 이 대낮에 수탉이 왜 우는가? 이 가을 오후 수탉이 목을 빼 울기 위해 올빼미에게 허락을 구하지는 않았을 테다. 나는 돌연한 수탉 울음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찬바람이 일렁이는 가을의 들머리에서 릴케의 시를 읊조릴 때 가슴은 떨린다. 릴케의 시는 삶이 잃는 일보다 더 깊고 무언가를 거머쥐는 손보다 더 고결함을 일깨워준다. 나는 여럿이면서 하나고, 동시에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파도가 조각이면서 더 큰 바다의 일부분이듯이, 나는 이 세계를 헤매는 자이면서 헤매지 않는 자다. 저 수확 끝낸 빈 옥수숫대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같이, 만물은 증식하면서 또 다른 부분에서는 잘라낸다. 진짜로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높은 나뭇가지는 가장 빨리 바람을 맞고, 바람을 타고 높이 나는 새는 가장 멀리 본다. 세상의 그 무엇이 저절로 이루어지던가? 과일에는 심고 거둔 자들과 땀방울과 인고忍苦의 낮과 밤이 깃든다. 밤이 차갑게 식는 가을밤은 나를 이마에 칼자국이 있는 돌아온 탕자蕩子로 만든다.
가을밤은 살아온 날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고요한 걸음걸이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혼란과 시행착오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가을이 그렇듯 인생의 원숙함은 실패와 혼란과 시행착오를 딛고 이룬 것이다. 혼돈과 부조리를 다 겪고, 그 탕약湯藥같이 쓴 날을 견뎌낸 자의 상처가 아물고 눈은 지혜로 깊어진다.
가을이다! 먹고 마시며 노래하는 기쁨을 미루지 않을 테다. 낮엔 이깔나무와 갈참나무가 우거진 산림욕장에서 보내고, 밤에는 요절한 시인의 시집을 읽으리라.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분별하며, 쾌락과 고통들로 내면을 깊게 하리라. 그리움이라는 질병에 나를 방치한 것은 너였구나, 너였구나! 백치와 몽상가에게 관대해지고, 나에게는 엄격해질 것이다. 어떤 의혹과 확신이 깊어져도 괜찮다. 왜냐하면 가을이니까! 지금은 뿌린 자만이 거둘 시각이다. 밤이 다가오고 있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가난한 숲과 작은 개울을 위해 휘파람을 불어라! 진실한 연인과 이별하는 기쁨을 유예하지 말라!
[출처] [좋은수필]가을이 왔습니다 / 장석주|작성자 에세이 자키
첫댓글 현영쌤, 또 이렇게 채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이분 블로그(?)에서 가끔 훔쳐오는데
설마 필사로 그 많은 글을 올리진 않으시겠지요. 어쨌든 오타가 좀 있는 편이라 신경이 쓰입니다.
밑에서 다섯 번째 '나쁜 것을 분멸하며...' 에서 분별이 아닐까 싶네요.
시인이 쓴 수필은 다르네요. 장석주시인의 산문을 그래서 좋아합니다만.
계절에 딱 어울리는 글, 잘 읽었습니다.
찬찬히 읽었는데도 오타를 못 알아봤네요. 수리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늘 읽던 수필과 결이 달라 읽는 맛이 색달랐어요.
@이현영 현영샘, '굳이 나같은 사람이 수필을 써야 하나'에 반론을 해봅니다.
잘 쓰는 사람만 수필을 쓴다면 수필가가 그렇게 많겠어요?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지요. 우리 소심해지지 말자구요.
@이복희 네네,선생님
@이복희 동의합니다. ^^
@윤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