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생각나서 1979년 이 시기때 (12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한뉴스를
찾아봤습니다.
동영상대한뉴스 제 1268호-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공판제작일: 1979-12-08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첫 공판 -육군본부 계엄 보통 군법회의 법정 -김재규, 등 8명의 피고인에 대한 공판 -재판부의 인정심문, 검찰관의 공소장 낭독, 사실심리하려 했으나 변호인단의 재정신청으로 중단 -대법원 결정따라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군법회의에...www.youtube.com
대한뉴스 제작일 1979년 12월8일
10.26 관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첫공판을
받는 장면이 뉴스입니다.
통상 대한뉴스는 실시간 뉴스보다
며칠씩 늦었던 것을 감안하면
1979년 12월4일에 있었던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
첫 공판 모습으로
보입니다.
동영상대한뉴스 제 1270호-최규하 대통령, 새 행정부 출범제작일: 1979-12-20 최규하 대통령 청와대 집무 시작(내각 임명) -1979년 12월 14일 최규하 대통령, 청와대 집무시작,새행정부 출범 -신혁확 : 국무 총리 -이한빈 :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박동진 : 외무부 -김종환 : 내무부 -김원기 : 재무부 -백상기 : 법무부...www.youtube.com
대한 뉴스 제작일 :1979년 12월20일.
그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최규하가
1979년 12월6일 제10대 대통령이 되면서
총리공관에서 청와대로 옮기고
첫 집무와 새 행정부 각료를 구성하고
임명제정장을 주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미 12.12 군사 쿠데타가
있은 직후이고 전두환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이후이니
그 당시는 다들 몰랐겠지만
훗날 세월이 흘러
지나고 보니 무늬만 정부인
(사실 실권은 신군부가
발톱만 숨기고 있던)
씁쓸한 모습입니다.
대한 뉴스가 보통 늦으니
1979년 12월14일로 보입니다.
각료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신현확 : 국무 총리
-이한빈 :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박동진 : 외무부
-김종환 : 내무부
-김원기 : 재무부
-백상기 : 법무부
-주영복 : 국방부
-김옥길 : 문교부
-이재설 : 농수산
-정재석 : 상공부
-양윤세 : 동력자원부
-최종완 : 건설부
-진의종 : 보건사회부
-배상욱 : 체신부
-이규현 : 문화공보부
-김용휴 : 총무처
-성좌경 : 과학기술
-이규호 : 통일원
-김도창 : 법제처
-김재명 : 원호처
-최광수 : 대통령 비서실장
-유양수 : 교통부
이후 대한 뉴스 1272회는
최규하 대통령의 취임식이나
씁쓸해서 안올립니다.
통일주체 국민회의 선거였고.
또한 당시에도 최규하가 6년
임기를 역임하지
않고 과도기 대통령으로 물러
날것이라 생각하였고.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이
유신헌법을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 다음에 차기 대권을
도전할 것을 꿈꾸고 있었죠.
그러나 그 과도기 대통령
최규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마구니 전두환이었습니다.
동영상대한뉴스 제 1273호-수도권 방벽준공제작일: 1980-01-09 서울 북방 주요통로,수도권 방벽 준공 -최규하 대통령과 한.미 군수뇌 참석 -높고 두꺼운 방화벽으로 설치되어 적의 어떠한 기계화 부대에도 돌파할수 없음. -국민들의 방위선금으로 완성된 이 방벽에는 장병들의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음. -이 방벽의 준공...www.youtube.com
대한뉴스 제작일:1980년1월9일
뉴스 제작은 1월9일이나 실제 모습은
1979년12월29일입니다.
전쟁발발등 유사시
수도권 지역 대전차 등
방어방벽이 이때 생겼네요.
찾아보니
1979년12월29일
중앙일보에
기사가 실렸습니다.
발췌해 올립니다.
☞서울북쪽 외곽지역에 철근
「콘크리트」로된
「수도권 방어방벽」이
세워져 29일 준공됐다.
외침의 통로였고 6·25때는 북괴군의
주공격로가 됐던 ○○로를 비롯,
서울의 북쪽진입로가 이제 북괴의
어떤 기계화부대도 돌파할 수 없는
높고 두터운 방벽으로 둘러쳐졌다.
준공식에는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
주영복 국방부장관,
유병현 합참의장,
「위컴」한미연합사군사령관,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등
군수뇌가 참석시설물을
하나하나 살폈다.
휴전선에서 서울에 이르는
주요통로 ○개소에는
자동개폐장치의
「레일」식 철문이
가설됐고
요소에는
「벌컨」포 등
대공(對空)화기와
전차진지·대전차
「미사일」인
「토」(TOW)기지
등을 갖췄다.
방벽소에는 장병의
내무반·취사장·식당·
목욕탕·화장실까지
시설, 영구진지의
편의시설까지 고루 갖췄다.
진지형태를 갖춘 이
방어방벽 축조에는
32억여 원의 방위성금으로
연 병력 1만4천1백70명과
연 3만9천5백60명의 민간기술자,
「크레인」「불도저」등
연 6천7백13대의 군·민 장비가
동원됐다.
중앙일보 1979.12.29☜
냉전 시대에 한참 날을 서던
시대의 모습이지요.
첫댓글 1979년 겨울은 우울했었던 기억만 납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은 말씀을 아끼셨지요.
대학생 언니 오빠가 있는 친구들중 몇 명이 아주 친한 친구 한둘에게만 비밀 스럽게 박통의 죽음과 새로운 권력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하던 비밀 이야기였죠.
저도 비록 그당시 초딩1학년에 불과했지만 어린 당시에도
정말 무시무시한 시대였죠
그때 다큐에 나오는
그 시대 돌아보는
TV에 나오는 박정희 빈소
일반인들 방문하는데도
갔었죠.지금 나이의 저보다
조금 적었던 어머니 손잡고서요.
그리고 당시에는 "쉬쉬~말조심해~"가
어른들이 자주 말하던 시기였죠.
@풍문으로 들었어 맞습니다. 말조심 해야 한다고 다들 그랬지요.
안그래도 지난 주말에 구미를 가게되었는데...
IC를 통과하자마자 박정희생가가 떡 표시되어 있더군요;;;
구미 출신이 공교롭게도 박정희와
박정희를 총으로 쏜 김재규 둘다
구미 출신이죠.정확히는 경북 선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