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보는 편인데 오늘이 마지막회였죠.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생
사이고 쥬도는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만나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끄는 군대가
정부군에 토벌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
전해 듣고 총총히 자리를 뜹니다.
사이고 쥬도는 다카모리와 달리
정부군 편에 남았고
훗날 해군장관 자리에 오릅니다.
정부군의 토벌작전에..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자후를 토하며.
토벌정부군의 여러 발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납니다.
사이고 다카모리 역은 스즈키 료헤이가
연기했죠.
일본 드라마 안본 분들도 웬지 낯이 익죠?
실제 사이고 다카모리
그의 마지막을 본 이는 사실 드물고
부상을 심하게 입은 사이고의 목을
부하가 마지막으로 칼로 쳐주었다는 말만
전해집니다.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안 다룬거 같네요.
그 시간 사이고의 부인 사이고 이토는
사이고의 죽음을 예감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한때 사이고의 동무이자 같은 동지였던
오쿠보 도시미치는.
사이고의 죽음에 "키치노스케상~"하며
오열하죠.
키치노스케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아명이지요.
역시 에이타 연기 정말 잘합니다.
세월이 흘러 교토시장인 사이고의 아들이
회상을 합니다. 이 드라마 세고돈의
나레이션을 맡고 있죠.
"경천애인" 사이고 다카모리가 남긴 유명한 글이죠.
사이고의 죽음은 도쿠가와
막부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도
전해집니다.
메이지 일왕에게 권력이양한
대정봉환 이후 그는 시즈오카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죠.
그리고 사이고의 죽음은 이렇게 그림으로
사람들과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1년후 그리고 1878년 운명의 날.
아카사카에서 퇴청하는 내무경 오쿠보
도시미치는..
마차를 세운 자객들에게..
마차에서 끌어져내려..
자객들의 공격을 당해. .난자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이고와 우정이 담긴 손수건을
떨어뜨리며 눈물을 흘리며 죽습니다.
아.역시 에이타 연기 잘하네요.
한때 동료였으나 서남전쟁으로
사이고 다카모리를 토벌을 하게 된
오쿠보 도시미치는 이렇게 세상을 떠납니다.
서남 전쟁(1877년)은 일본역사에서 마지막 내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서남전쟁에 미국
남북전쟁영웅이
활약하는 이야기로 각색한것이
톰 크루즈의 <라스트
사무라이>입니다.
■오쿠보 도시미치의 암살.
1878년 5월1일 아침,
후쿠시마 현령 야마요시
모리노리(山吉盛典)는
출근 전의 참의(參議)겸 내무경(內務卿)
오쿠보 도시미치를 방문했다.
현의 보고를 마친 야마요시는
돌아가려고 했는데 오쿠보가
그를 불러세워,
『메이지 유신을 완성시키는
데에는 30년이 걸릴 것이다.
메이지 원년 (元年)으로부터
10년까지의 제1기는
창업기로서 병사(兵事)가 많았다.
20년까지의 제2기는
가장 중요하여 내치(內治)를
정비하고 민산( 民産)을 증식시키는
시기이기 때문에 불초(不肖)
토시미치는 전력을 기울일
심산( 心算)이다.
이후 제3기는
후진 제군(後進 諸君)에
맡기고 싶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제2기의 출발
초기에 오쿠보는
불의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오쿠보가 마차를 타고
출근하려고 하는 순간
늦둥이 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그치지 않았다.
이에 오쿠보가 딸을
마차에 태워 현관 앞을
한 바퀴 돌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그 직후에 오쿠보는
암살되었다.
오전 8시경, 오쿠보의
마차는
오르막길을 접어들었는데,
길가에 있던 서생풍( 書生風)의
남자 둘이 갑자기 달려들어
칼로 말의 앞다리를 베었다.
마차가 급정거하자 숨어 있던
다른 남자 넷이 저마다 손에
단도를 들고 마차로 돌진했다.
마차 안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오쿠보는 급히 좌측 문으로
나오려다 자객과 마주치자
「무례자 無禮者」라고
일갈했지만, 미간을 베였다.
자객은 오쿠보를 마차로부터
끌어내려 난자했다.
이렇게 오쿠보는 49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
오쿠마 시게노부·
이노우에 가오루 등
다른 유신의 원훈들이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던 때에 오쿠보는
여전히 관저에서 생활했다.
그의 사후(死後)에는
8000엔이라는 빚만
남아 있었다.
하수인은 이시카와(石川)현
사족(士族 선비가 아닌 일본은 사무라이)
시마타 이치로(島田一良) 등 6명이었다.
그들은 가고시마 사학교에 공감,
세이난(서남)西南전쟁에
호응하여 거병을 기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쿠보 암살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들의 참간장(斬奸狀)에는
「공의(公議)를 두절하고,
민권을 억압하고,
이로써 정사( 政事)를 사사로이 했다」,
「유사전제(有司專制)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 「간괴(奸魁)를 참한다」
고 쓰여 있었다.
범행 후 제 발로 자수했던
그들은 동년인 1878년 7월
모두 참수형에 처해졌다.
(일본은 1880년 형법개정으로
사형 집행방법이 참수형☞교수형으로
바뀌게 됩니다. 1879년 처형된
독부 다카하시 오덴이 거의 마지막
참수형이자 마지막 여성 참수집행이라
볼 수 있는데 다음 기회에
다카하시 오덴에 대해 올려보겠습니다.)
한편 사이고·오쿠보와 더불어
「메이지 유신3걸」의 1인으로
회자되는 조슈번 출신 참의參議
기도 다카요시는 오쿠보보다
1년 전에 44세를 일기로 병사( 病死)했다.
기도의 사후(死後), 조슈파의
정치기반은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이들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끝납니다.
오쿠보 도시미치를 연기한 에이타는
노타메 칸타빌레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노타메 칸타빌레에서 미네 류타로 역을 연기했죠.
스즈키 료헤이는 나인틴에서도 다룬. .
나인틴 303회2부 내 이야기!!에 나왔죠.
첫댓글 쭉 모르는 얘기가 나오다가...
내이야기가 딱 나와서 반갑네요;;;
일본 영화도 저에겐 불호쪽에 가까운데 드라마는 정말 1도 모르는군요ㅠㅠ
내년도 NHK 대하드라마는 안보려구여.
보통 도쿠가와 막부 말에서 메이지 초를 다루거나 전국시대를 다루는데 내년은 2020 도쿄 올림픽때문인지 올림픽 3부작을 한다고 합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손기정 선수와 3위 남승룡 선수를
어떻게 다룰까 우려되네요.
기타노 다케시가 나레이션할거 같지만
안보려 합니다.
사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좋은 쪽은 아닙니다.
정한론을 주장했었죠.
그것을 같은 사츠마 번(오늘날
가고시마)출신 오쿠보가 막았죠.
물론 오쿠보가 사이고를 막은 것은 그가
착했다기보다 아직 일본의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죠.
일본의 총리대신은 이 당시까지
없었습니다.
흔히 조선침략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토 히로부미는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에 비하면 햇병아리이죠.
사이고가 1828년생. 오쿠보가
1830년생인데. 이토가 1841년생인가 그럴겁니다.
사이고 .오쿠보.기도등이 죽고난 그 자리를 이토가 차지한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아베까지 이어지는
총리대신(소리 다이진)은 이토 히로부미가 1880년대에 최초로
역임합니다.
사이고 오쿠보 죽고 이토가 자리를
차지한것은 마치 박정희 사후
차지철.김재규 빈 자리를 전두환이
차지한거와 같았죠.
사실 이들이 안죽었음 이토는
한참 권력 군번 순서에서 멀었죠.
@풍문으로 들었어 생각보다 더 어렵네요ㅠㅠ;;
너무 문외한이다 보니 고유명사들이 어려운게 많네요;;;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