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소리 / 정성화
함석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사이로 '다각다각' 하는 소리가 끼어들고 있었다. 도마소리였다. 잠결에 듣는 소리는 가까이 들리는 듯하다가 다시 멀어진다. 그래서 아련하다. 윗동네의 예배당 종소리나 이른 아침 '딸랑딸랑' 들려오던 두부장수의 종소리, 도마 소리가 그러했다.
어머니는 소리로 먼저 다가오는 분이었다. 펌프질을 하는 소리, 쌀 씻는 소리, 그릇을 챙기는 소리 등. 그 중 도마소리는 잠을 더 자라고 토닥여주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이불 삼아 다시 잠에 빠져들곤 했다.
한 스무 평밖에 되지 않는 집이었다. 부엌이 집 가운데에 자리하고 양쪽으로 방이 붙어있는 ㄷ자 구조의 집이라 부엌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는 어느 방으로든 이내 전해졌다. 도마소리가 잠잠해지고 '보글보글' '자글자글' 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냄새가 풍겨올 때면 잠은 베갯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어머니는 어려워진 살림살이를 만회해 보려고 한동안 미제물건을 떼다 파는 장사를 했다. 그 즈음 대구 교동시장은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미제 물건들로 성시를 이루었고, 어머니는 그 시장 상인에게 물건을 대어주는 일을 했다. 사흘에 한 번씩 새벽 기차를 타는 날이면 단속을 피하기 위해 품이 너른 치마를 입고 그 치마 속에 물건을 넣은 자루를 찼다고 한다. 아침에 부엌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은 어머니가 장사를 나간 날이었다. 그런 날은 학교 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도마소리가 들려오면 얼마나 반가웠던지.
어머니의 도마 소리는 그다지 높지도 빠르지도 않았으며 장단이 골랐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어머니의 성미를 닮았던 듯하다. 작은 몸집으로 많은 일을 감당하는 어머니를 보며 이불을 쓰고 소리 없이 운 적도 많다. 어머니가 다리를 죽 펴고 앉아서 쉰다든지 낮잠 자는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온종일 방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일 년에 한 번쯤 부산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셔도 어머니는 그날로 가셨다. 손이 빠르지도 않은 딸이 친정엄마 드릴 반찬을 한답시고 부엌에 오래 서 있는 게 싫다고 하셨다. 실은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집에서 그룹 과외를 많이 했다. 어쩌다 어머니가 오시는 날도 수업을 해야 했다. 내 나름대로는 성취감도 있고 보람 있는 일이었지만, 내가 목청을 높여가며 수업하는 걸 방 바깥에서 듣는 어머니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수업 중간에 잠시 쉬러 나왔을 때 어머니는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얘야, 좀 쉬었다 해라." 고 하시며 쥬스 잔을 디밀었다.
진폐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십 년 간 반복하던 어머니. 내 자식들을 못 본다고 생각하면 정말 죽기가 싫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가 올 2월에 돌아가셨다. 삼우제를 지내고 오는 길에 어머니가 살던 집에 들렀다. 한쪽 벽에 기댄 채 바짝 말라있는 도마를 보았다. 가운데가 닳고 가장자리가 거무스름한 게, 버릴 때가 한참 지난 도마였다. 새 도마를 사드리겠다고 해도 마다하셨다.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생을 예견하셨을까. 돌아가시기 두 달 전이었던가. 친정집 현관 앞에 섰을 때 도마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웠다. 이 집에 홀로 거주하는 어머니가 내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딸이 온다는 기별을 듣고 애호박전을 부쳐준다며 연신 기침을 해가며 그날 호박을 썰고 계셨다.
도마의 품은 너르다. 젖은 것 마른 것 가라지 않고, 질긴 것 무른 것 가리지 않는다. 칼질로 인한 자국이 겹쳐 제 목리문이 없어져도 개의치 않는다. 어머니라는 존재도 그런 것 같다. 당신 자식이 잘 났든 못 났든 내 손으로 따뜻한 밥 한 그릇 지어 먹이겠다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분이다. 어쩌면 어머니의 삶이란 한평생 도마 앞에 서 있다가 가는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랫동안 복용한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입맛을 잃은 어머니는 끼니마다 거의 두어 숟갈 밖에 드시지 못했다. 기력이 쇠한 어머니를 억지로라도 우리 집에 모셔와 소고기를 다져 떡갈비를 만들어드리고 싱싱한 전복을 다져 전복죽이라도 한 냄비 끓여드렸더라면….
어머니를 여윈 뒤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목이 멘다. 내가 장만한 음식을 먹으며 남편이 맛있다고 하는 날은 더 눈물이 난다.
첫댓글 정성화선생의 글은 늘 삶과 가족의 이야기가 애틋한 감동으로 전해져오지요.
현영샘, 필사하셨어요? 첫 줄에 '함성지붕' 은 '함석지붕'이 아닐까 싶네요.
선생님의 작품은 저도 올리고 싶을 때가 많지만 너무 많이 알려져 미루곤 하지요.
수고하셨어요.
필사아니고요. 어디서 업어왔어요ㅎ 수리완료요^^
정성화 선생님 수필이라 눈이 번쩍 뜨여서 옮겼습니다
@이현영 ㅎㅎㅎ 그만큼 그분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는 뜻이지요? 저도 좋아합니다.
수리 빨라서 좋군요. 함석지붕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고맙습니다.
정성화님 작품은 언제나 의미 깊고, 독자 가슴을 울리는 속 울음이 배어 있지요.
전에도 읽은 작품인데 또 읽어도 또 감동으로 젖어듭니다.
현영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