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평화광장 2007.9.12.수
금구온씨(金溝溫氏)
온씨는 원래 중국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온씨는 온달(溫達)을 시조로 한다. 바보장군으로 유명한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다. 어릴 때 살림이 구차하고 남루한 옷차림이어서 "바보온달"로 불리었다. 그러나 평강공주와 결혼한 후 장군이 되어 나라에 큰 공을 세운다. 온사문(溫沙門)은 고구려 보장왕 때 당나라의 설인귀를 횡산에서 격퇴하였다.
금구온씨의 시조 온신(溫信)은 고려 공민왕 때 이존오 등과 더불어 신돈을 탄핵, 상소한 것이 빌미가 되어 봉성으로 폐출된다. 그 후 여기에 살면서 후손들이 금구를 본관으로 삼았다. 봉성은 금구의 다른 이름이다.
금구는 전북 김제시 금구면의 지명이다. 지금도 금구면 일대에는 금구온씨들이 집성촌을 이룬다. 온씨 중에는 ▲봉성온씨(鳳城溫氏)를 쓰는 후손도 있다. 2000년 현재 금구온씨는 2,148명, 봉성온씨는 1,417명이다.
온신의 아들 온임(溫琳)과 손자 온윤(溫潤)은 좌랑을 지냈고, 온윤의 아들 온후(溫厚)는 조선 때 선전관을 역임했다.
한성부 좌윤 온훤(溫喧)과 온순흥(溫舜興), 공조참의 온수점(溫壽點), 병조참판 온정화(溫鼎和)도 유명하다.
한말에 와서는 중추원의관을 지낸 온주택(溫鑄澤)과 사현서원을 창건하고 금구 저수지를 설치한 사회사업가 온성하(溫聖河)가 가문을 빛냈다.
한편 금구온씨는 경주온씨의 분파다. 경주온씨의 시조 온군해(溫君解)는 신라 때 김춘추가 고구려군에게 포위되자 김춘추를 도망하게 하고 대신 죽었으며, 후에 대아찬에 추증되었다.
고려 충목왕 때 회양부사를 지낸 온수(溫粹)는 온군해의 후손으로 아들이 둘 있었다. 큰 아들 온선(溫善)은 예의판사를 지냈으며, 우부시랑을 지낸 작은 아들 온신(溫信)은 금구온씨의 시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