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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인 『동주와 함께 걷는 길』의 해법
- 박성진의 시적 차별성과 그 매혹(魅惑)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신문예』고문)
1. 시적 감응(感應)과 동행의 상징성
지난 2019년 8월부터 11월 강원도 인제군의 만해문학박물관에서 「항일 민족문학을 다시 읽다」라는 주제의 인문학 콘서트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학관협회 후원으로 일제강점기 항일민족 시인의 작품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과 문학적 감수성을 높이며 마감되었다. 모처럼 8월에 오태영(동국대) 교수의 「항일 민족문학의 문학사적 의미」를 비롯해 김응교(숙명여대) 교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시인을 만나다」, 또 11월 평자의 <소년아 봄은 오려니-민족시인 심연수>의 주제 강연으로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항일민족 시인 4인의 문학정신’을 확증하였다.
모처럼 그 자신의 빛나는 존재감을 지켜낸 끝에 간행하는 제4 시집『동주와 함께 걷는 길』(책나라, 2024)의 편집 구도는 결(結) 고운 옷감처럼「제1부. 동주 한 사나이의 길(15편), 제2부. 동주의 조국(19편), 제3부(22편). 후쿠오카 형무소에 피는 꽃, 제4부. 달빛 속에 고독한 나(15편)」의 보기와 같이 치밀하게 직조(織造)된 71편이 비교적 단조로운 호흡으로 맞물려있다. 그 나름으로 시집의 특이성은 마치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처럼 시적 화자가 윤동주 시인의 내면의식에 투사(透寫)되어 시적 형상화에 일체의 거부감 없이 개아적 동일화로 합일시킨 일례다. 일단 그 자신이 ‘도시의 불빛 속에서도 그대와 나의 별 헤는 밤 함께 꿈을 꾸는’ 시 심리의 작위(作爲)야말로 “별빛 하나하나가/ 내 길을 밝혀주는 길잡이// 삶의 무게 버거워도/ 희망의 빛 잃지 않고 있네(별 헤는 밤)”라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연유한 탓이다.
또 한편 동일 선상에서 진정한 동행은 ‘같은 방향을 응시하고 함께 비를 맞는 행위를 뜻하기에’, 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민족 시인으로 생존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존재감이 베일에 가려졌던 북간도 용정태생의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정음사, 1948)의 간행 직후에 세인(世人)의 이목을 끌었음은 주지할 바다. 마치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가 “시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임”을 밝혔음은 새삼 유념할 일이다. 아울러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으로 밝은 미래가 불확실한 시간대에서 지난 2022년 7월 22일까지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의 「백영(白影) 정병욱(鄭炳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특별전」 개최는 시사적 의미가 지대하였다.
차제에 이 땅의 진정한 휴머니스트이며 창조적 영혼의 소유자가 비정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정황에서 민족의 울분을 순수서정의 꽃으로 형상화한 특정한 시인에 관한 시적 접근과 비교문학적 검증에 몰두한 박성진 시인의 시집 출간은 따뜻한 감성을 공감한 정신적 결과에 해당한다. 따라서 ‘시린 바람 속에서도 굳건히 선 나무 한 그루의 꿈이 담겨 있기에 “아침이 오면 빛나는 태양처럼/ 그대의 시 영원히 빛나네// 한 줄기 우리의 길 밝혀주는/ 시간이 지나도 빛나는 그 이름(동주의 이름표)”의 일면도 그렇거니와 화자(話者)인 그 자신이 ‘밤하늘은 어둠만이 아닌 희망을 품은 거대한 어머니의 품’을 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내면의식에서 소환(召喚)하여 “나 지금 캄캄한 밤하늘에서/ 새로운 아침을 약속하는 소리/ 들으며 그곳에 가 닿으리라(캄캄한 밤하늘에서 빛을 보며)”라는 기대감은 못내 절대적이다.
까닭에 일제강점기의 그 참담한 상황에서 ‘모국어로 시를 쓴 시인’으로 피가 뜨거운 열혈의 청년으로 ‘정지용 시인의 시집을 가슴에 안고 다녔던 별의 시인 윤동주는’ “백석, 영랑 시집도 좋아했던 시집/ 한번 책을 잡으면 놓지 않던// 새벽까지 세계전집을 읽던/ 무서운 독서광 동주(암흑의 세대에도 독서광)”의 보기에서 젊음의 한 때를 ‘잃어버린 조국의 뼈아픈 치욕스러움을 시로 형상화’하며 끝내 민족 앞에 부끄러운 자신의 참회록(懺悔錄)을 스스럼없이 확증한 면모를 “1941년 12월 27일/ 졸업을 며칠 앞두고/ 태평양 전쟁이 터진다// 졸업 후 동주는/ 사촌 형인 송몽규와/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슬픈 비는 내리고)”라는 삶의 여적(餘滴)에는 비장감이 묻어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민족시인 윤동주가 정병욱 교수에 의해 세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정음사, 1948) 유고시집의 간행 직후이다. 그 시집의 「서문」에서 정지용의 의중은 확인될 것이나 이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갈망하는 「序詩」를 중심으로 빈도수 높게 사용된 ‘하늘, 바람, 별, 길, 밤’이라는 시어의 틈새 좁히기를 비교문학적 일면에서의 검토작업은 유의미하기에 『동주와 함께 걷는 길』의 시집 간행은 지극한 삶의 잠언(箴言)이다.
모처럼 초 장르적으로 활동하는 그 자신의 천부적 재능에 견주어 시 짓기도 그렇지만 브런치 스토리 작가이며 칼럼니스트로 음악 작곡, 보석 및 예술 작품의 수집, 또 감정(鑑定)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다소 문학 외적인 문제이나 오랜 날 평자와도 시를 통해 소중한 연을 맺은 한국의 상징적 블로거 ‘꽃순이 배선희 시인’과의 조우도 그렇지만, 그 자신이 세계 180여 개국을 여행하며 희귀 보석을 수집하고 세계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스케치한 체험은 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는 역동성이다. 따라서 ‘영원한 청년!’ 제2 시집『동주를 노래하다(윤동주)』출간 이후, 제4 시집 간행에서도 밝혀지듯 낮은 산자락의 들꽃에도 따뜻한 시선을 주는 ‘별과 길의 시인 윤동주’에 대한 지극한 관심사는 한층 더 감동적이다.
2.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피는 꽃의 차별화
우리 근현대시문학사에서 그만의 차별성을 자리매김한 윤동주 시인에 관한 알맞은 정신기후는 유추(類推)될 것이나 시적 징표로서 고향의 개념은 고정된 공간의 개념에만 머물지 않는 정서적 양감이다. 그렇다. 윤동주 시인의 보편적인 시론은 ‘저항 시인론과 부끄러움의 미학론’이다. 그 자신의 시집에서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빈도수 높게 확인되는 현상에 있어 이것은 그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동력이며 모티프일뿐더러 “저항적이고 지사적 색채”라는 시적 경향의 특이성은 가늠할 점이다.
특히 북간도 출생의 윤동주는 조국 상실로 분노에 찬 지사들이 모이고 교회와 학교가 새로 형성되던 당시 인구 10만의 용정(龍井)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천성이 맑고 고운 그 자신은 신작로를 걷다가도 시골 아낙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어 하고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귀여워 함께 씨름도 하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며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종종 들꽃을 가슴에 꽂거나 책갈피에 끼워 넣으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독백하는 다감한 품격의 실체로 가녀리고 연약한 것에 대한 세심한 그 자신의 지대한 관심은 하늘처럼 높고 깨끗한 품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론하고 그 자신의 시편 중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마음 찾아/ 오늘도 그의 이름 불러본다// 그대가 전해주는 순전한 마음/ 그리움 안고 별 같은 시를 쓴다(그리움의 별)”도 그렇거니와 ‘동주의 양심과 깊은 성찰 그의 시를 읽으며 나도 양심의 참회록’을 쓰는 그 자신의 시적 행위는 “순수한 영혼의 소리 들려오고/ 진실한 고백이 속삭이듯/ 내게 묵언으로 용서하는 시간이다(나의 참회록)”라는 진실한 고백이기에 충직한 이 시대의 독자에게도 ‘순수한 영혼의 소리’로 들려오는 것은 지극히 극명한 현상이다. 한편 그 자신이 ‘동주는 영혼을 관조(觀照)’하는 시적 해법도 “동주가 사랑한 모든 시들/ 오늘 우리 영혼의 울림이다(라이너 마리아 릴케)”에서의 보기나 연작시로 ‘한 편의 시가 눈물에 젖는 「동주의 시편」에 맞물린 ‘생명의 원천이며 영원한 모성(母性)을 상징하는 ‘조국을 위한 뜨거운 사랑, 고뇌와 눈물을 시로 형상화’야말로 “바다는 슬픔을 삼키고/ 동주의 영혼 어루만지다// 별빛 아래 춤추는 물결/ 짐짓 우리의 영혼 가늠해 본다(동주의 바다)”라는 시적 변명에서 그 존재감의 빛남이다.
무엇보다 생명의 원천이며 지고지선(至高至善)의 표징인 하늘에 시적 상상력을 결부시켜 확장하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층위로 읊어낸 윤동주에게 “하늘”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한 종교적 대상이다. 그의 하늘은 사랑과 용서, 그리고 공의의 표징이며 ‘바람에 스치우는(序詩) 별’이 자리한 현실적 공간이다. 비교적 윤동주의 시력에서 1941년은 시 문학을 총결산하는 시간대다. 그 나름으로 문학성을 인정받는 대부분의 시편은 이 시기의 작품이며 또 시대 상황은 인류가 시를 외면한 시간대였다. 그 자신이 즐겨 응시하던 ‘하늘과 바람과 별’의 공간에 공습경보가 울리고 민족의 혼인 조선어가 말살된 암울한 분위기였으나 이 시대의 시인 중 천체(天體)나 기상학에 관심을 지닌 연유로 그의 시편의 별은 상징적 처리가 아닌 자연현상이다.
차제에 “일제의 어둠 속에서도/ 잃어버린 자유와 평화를 그려/ 별처럼 빛나는 시를/ 또박또박 모국어로 썼다(동주의 조국)”의 시편을 통해 다시금 느꺼운 일화(逸話)의 감회랄까? 도시샤대학 문학부 재학 당시 어느 날 영문학과 교수 집의 회합에서 일본 친구의 말이 끝났을 때 “여러분은 목숨 바칠 조국이 있지만 내게는 그런 조국이 없다.”란 울분에 젖은 윤동주의 절규도 그럴 것이나 그 자신은 시편 말미(末尾)에 천황의 소화(昭和)가 아닌 서기(西紀)로 기록하였듯 작은 것 하나도 소홀하게 지나치지 아니했다. 이처럼 박성진 시인이 다소 의도적이나 윤동주 시인의 삶의 족적과 시편을 이처럼 조응하는 양상에서「十字架」에 견주어 또 그 자신의 시적 이미지를 결부시킨 「십자가 아래에서」의 대비(對比)는 ‘생명 허락한 창조주께 십자가 아래 무릎 꿇고 그의 길 밝혀주길 기도하는 경건성’은 끝내 또 다른 시적 다양성의 확장이다.
모태신앙이 지켜준 믿음/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준/ 눈물 속의 순수한 신앙//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의지대로 살 수 없었던 조국/ 주님의 사랑으로 견디었네//
그의 영혼을 품어주신 주님/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고/ 그의 길을 밝혀주길 기도했네//
-「십자가 아래에서」 전문
어디까지나 시집 목차의 「제3부 후쿠오카 형무소에 피는 꽃」에서 비록 ‘어둠 속에서도 그의 영혼은 시를 쓰며 버티었기에 끝내 그의 시가 세상을 안겨주었듯이’ “신체적 정신적 고문/ 일경의 가혹 행위로 잃어가는 기억/ 공식적인 사인은 결핵으로 기록되지만/ 치료한 의사의 증언이/ 생체실험의 가능성을 제기한다(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라는 엄연한 사실은 참담한 심정이다. 까닭에 그 자신이 깊은 밤에도 견고한 고뇌 끝에 깊은 사유를 거친 여백의 간극(間隙) 좁히기도 그럴 것이나 그 나름으로 집념이 강한 박성진 시인의 정신작업의 온전한 수행은 비장감이 묻어있다.
그렇다. 민족시인 이육사(본명 李源祿)의 대구형무소 수감 당시 수인번호가 '264'였던 점에 비춰 윤동주는 수인번호 645로 복역 중에 옥사하였다. 며칠 뒤 명동촌으로 날아온 전보(電報)는 ‘동주 사망, 시체 가져가라’였다. 모처럼 박성진 시인이 시적 상상력을 확장하여 윤동주 삶의 족적(足跡)에 걸맞게 서사구조(Narrative structure)의 측면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분할·통합하여 ‘출생→성장→사망(獄死)’을 원근조망법(遠近眺望法)으로 시집에 수록된 시 전편을 새롭게 형사(形似) 한 점은 이채롭다. 까닭에 시적 틈새를 좁혀가며 연보(年譜) 격인 “그 자신은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명동촌에서/ 개신교 출신인 부친 윤영석과/ 자애로운 심성의 김룡을 모친으로/ 남동생 일주, 광주, 범환/ 여동생 윤혜원과 외삼촌 김약연/ 고모 윤신영, 고모부 송창희/ 고종사촌 송몽규, 한복, 우규/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뒤에/ 은진중학, 숭실중학 거쳐 광명중학 졸업 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여 졸업작품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유작으로 남긴다/ 릿쿄대학 문학부 자퇴하고/ 도시샤대학 문학부 편입한 뒤/ 안타깝게도 1945년 2월 16일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으로/ 27세 그 열혈(熱血)의 나이에 옥사한다(시인의 탄생)”에서 일체 긴장감의 끈을 늦출 수 없다.
또 한편 그 자신의 시편 중 형식상 호흡이 긴 산문시 격인 “뜨거운 눈물은 흐르고 다시 한번 청명한 하늘 위 별을 본다 변함없이 수신을 보내는 별들 너희들은 내 운명을 알고 있는가 나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은 다하여가고 나에게 힘을 주소서 감당할 수 없는 현실… 힘을 주소서(언덕 위의 세찬 바람아)”의 일례도 특이하지만, 무엇보다 “가브리엘 오른손에 든 우렁찬 나팔의 신호탄/ 강산을 뒤덮는 태극기의 물결/ 삼천만 군중이 일장기 밟는 소리/ 내 살과 뼈 흙 속에 묻어 풀 한 포기로 태어나/ 나답게 윤동주 손을 잡으리라/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갈대밭 숲속의 몽환)”에서 절제된 감정에 가슴 뭉클함은 소홀하게 지나치거나 끝내 가볍게 털어낼 수 없다.
그 같은 맥락에서 혹독한 일제강점기 ‘살아있는 눈빛 그립다’라는 그 자신이 ‘선한 눈빛’을 회감(懷感)하며, 윤동주 시인이 처한 그 삶의 일상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바람도 구름도 별 하나까지/ 나의 것들을 빼앗아 간 일장기야/ 공평하게 비추던 달빛(태양)”은 하나의 충격으로 수인(囚人)의 정한(情恨)에는 비통함이 주어진다. 아울러 “근정전의 태극기는 힘차게 휘날리고/ 종달새도 지지배배 노래한다// 네 눈에 보이는 35년 일장기는/ 섬에 갇혀 외톨이가 되었구나(잃어버린 35년)”에서 확인되듯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한 조국광복의 그 맞물림은 엄숙한 역사 앞에서 진실로 뼈아픈 자기성찰의 시간대임은 망각하거나 소홀하게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3. ‘달빛 속에 고독한 나(個我)’의 해법
모름지기 윤동주 시인은 지극히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자못 외국 시인으로 구수하면서도 신경질적인 프랑시스 잠과 장 꼭도, 그리고 조국애에 불타는 나이드의 시를 즐겨 읽으며 때로는 시흥에 취해 무릎을 치기도 하였다. 비교적 그 자신은 어질고 곧은 성품의 소유자로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투르게네프,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등에 관심을 지녔고, 국내 시인으로 정지용, 한용운, 백석을 따랐다. 일단 한 사람의 충직한 독자라면 시대를 앞서 숨져간 이들이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그 물음에 가슴 저밀 것이다. 까닭에 참담한 스탈린의 압제하에서 끝내 당파성을 뛰어넘지 못한 채 굴복하고 “내 조국, 러시아에 돌아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고 절규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비극적 생애도 새삼 헤아려 볼 일이다.
또 한편 “후쿠오카 형무소는/ 계절의 봄도 가두었다”라는 <형무소에 핀 꽃>은 물론이거니와 ‘고문하는 자와 순순한 시인 수감자 시가 화해와 용서의 고리가 되엇을까?’라는 물음 앞에서 그 자신이 이정명의 소설「별을 스치는 바람」을 접한 뒤’ “1후쿠오카 형무소 인간 백정으로 불리는/ 특히 조선인 죄수를 혹독하게 다뤘던/ 지독한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은 까막눈/ 조선어로 된 책은 모조리 불살랐다(이정명 소설「별을 스치는 바람」)”에서의 이 같은 상황 심리는 더없이 암울하다. 그렇다. 그 자신이 ‘꽃처럼 피어나는 피 그의 피는 예수의 보혈’을 지상에 갈 앉는 낮은 음조로 나직이 읊조린 끝에 “지금 회색 벽체에 가두어진 청년/ 너의 청춘 정녕 시들지 않기에// 오, 별은 꾸짖어도 빛나리니/ 매를 맞는 팽이 더욱 잘 도는 이법(理法)(봄 그리고 봄)”의 보기는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기에 응당 시적 감동을 일깨워 줄 것이다.
차제에 윤동주 시인의 첫인상이 정병욱의 회고담에 의해 세상에 밝혀졌듯이 “오뚝하게 솟은 콧날, 부리부리한 눈망울, 한일(一) 자로 굳게 다문 입, 그는 한 마디로 미남이었다. 투명한 살결, 날씬한 몸매, 단정한 옷매무새, 이렇듯 멋쟁이였다.”라며『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나라 사랑, 1976)에서 술회하고 있다. 기실 안타깝게도 그의 생애는 불과 ‘27년 1개월 16일’ 밖에 안 되지만, 아명인 해환(海煥)과 달리 암울한 삶을 마감했다. 한편 ‘키에르 케고르의 십자가 끌어안고 큰 별이 지던 날 인왕산도 울었다’라는 박성진 시인의 각별한 시적 교감(交感)처럼 ‘영원한 문학청년 윤동주’가 주권 없는 나라에서 시심을 키우며 불꽃처럼 살다간 짧은 생애 중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윤동주의 <자화상>)”라는 ‘청운동 하숙생 시절’을 헤아리면 멀리 보이는 인왕산의 풍경은 더없이 아득해 몽환적이다.
여기서 호흡이 단조롭게 2년 6행으로 시 의미를 응축하여 처리한 “거친 폭풍우 몰아치던 그 날도/ 키에르 케고르의 십자가 끌어안고/ 큰 별 지던 날 인왕산은 서럽게 통곡했다(인왕산 별)”에서 수사적 기법의 시적 묘취(妙趣)는 가시적이다. 무엇보다 박성진 시인이 고뇌 끝에 묶어내는 제4 시집 간행 의미와 가치야말로, 치밀한 귀금속 감정가의 아집과 투명한 시선으로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문학에 각별한 관심과 열정을 지닌 끝에 스키마(schema)를 키워드로 새로운 붓 터치와 기법으로 꼼꼼히 모사(模寫)하고 또 그 자신의 사고가능성(思考可能性)을 확장하여 재현(再現)한 창조적 결과물은 엄격한 개아적(個我的) 차별성이 빛난다.
결론적으로 ‘비공인의 입법자’로서 다정다감한 심성의 소유자인 박성진 시인에게 거는 기대감은, ‘행복한 언어의 집을 짓는 시인의 몫’을 감당하는 막중한 역사적 과업의 수행이다. 까닭에 그 자신이 윤동주 시인의 시격(詩格)에 초점을 맞춰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순수서정시가 배척받는 현상에서도 연대기술적(年代記述的) 측면에서 시적 상상력에 적절히 배치한 시적 대처는 이채롭다. 그렇다. ‘강직한 지조와 체취, 그리고 육성’을 소통 기표로 발신한 정신작업은 후학으로서 응당 담당할 시대적 소임이기에 지극히 인간적이다. 모쪼록 극단주의로 치닫는 삶의 일상에서 ‘세상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뿐인 연유’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라는 존귀한 별의 시인 윤동주의 지고지순한 민족정신을 ‘바람의 초상(肖像)’으로 켜켜이 지켜낸 박성진 시인의 창조행위인 시집 간행은 끝내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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