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6:3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6장 1-3절까지의 내용을 볼 때,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 그분이 고쳐주시고 살려주실 것과 그들이 힘써 여호와를 알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실 것을 전혀 의심치 않는 확신을 갖고 하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에는 믿음을 갖고 나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면서(半信半疑 반신반의)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6-8)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사자와 젊은 사자처럼 먹이감을 움켜쥐고 찢으셨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찢어진 곳을 도로 낫게 해주실 것이며, 그들을 치셨던 곳을 싸매어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도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합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라"의 "힘쓰다"라는 히브리어 '라다프'(רָדַף)는 '따라가다'(follow after), '추적하다'(pursue), '박해하다'(persecute) 등의 뜻을 갖고 있는 동사입니다. 따라서 "힘써 여호와를 알라"라는 말은 누군가를 추적하며 핍박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는 것과 같이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여호와를 알려고 애를 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 즉 지식적으로 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포함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을 통한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마음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에 대하여 알고 있지만 그와는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안다'(יָדַע 야다)는 것은 부부가 함께 살아가면서 부부관계를 맺으면서 서로에 대해 깊이있게 모든 것을 경험하여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성경을 백번이 아니라 천번을 읽더라도 기도생활을 하지 않거나 교회에는 다니지 않고 지식으로만 성경을 알고있다고 해도, 또 신학박사라고 해도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의 삶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간섭해 주셨는지에 대해 간증할 수 있는 은혜의 사건들을 갖고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간증을 나눌 것이 없다면, 그는 아직까지 하나님을 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아는 사이라고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사람들과 심지어 자신까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구하라, 두드리라, 찾으라"라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성경에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 범인을 잡기 위해 끝까지 쫓아가서 잡고야 마는 그러한 열심으로 알라고 하십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호세아 4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공의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진실할 수가 없었고, 사랑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인애 대신에 저주와 살인과 강포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1. 새벽빛처럼 일정하신 하나님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처럼 일정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새벽빛은 어떤 빛입니까? 온 세상이 어둠에서 해방되어 밝은 빛의 세상으로 바뀌기 위하여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무렵의 빛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빛은 항상 변함없이 세상을 비춥니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하여도 새벽빛은 변함없이 항상 그 시간에 온 세상에 빛을 비춥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새벽빛처럼 변함없이 일정하시다고 말씀합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새벽빛은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깊은 밤 속에 있으면 낮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칠흙같이 어두운 밤일지라도 반드시 새벽은 옵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답답하고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고 있을지라도 결국 터널의 끝이 나오고 그 끝은 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자들에게는 새롭게 거듭나는 비밀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성령의 열매인 '인내'의 열매가 맺히게 되며, 그로 인하여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2-13)
하나님의 나오심은 새벽빛 같이 일정하십니다. 그분은 신실하시므로 결코 약속을 변개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분만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9:7)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9-11)
2. 이른비, 겨울비, 늦은 비와 같이 임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입니다. 지중해성 기후는 보통 우리가 살고있는 한국이나 미국과 반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한국이나 미국은 겨울에는 별로 비가 오지 않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옵니다. 그러나 지중해성 기후는 여름에는 비가 오지 않아 매우 건조하고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립니다. 그래서 5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오지않는 '건기'이며 11월부터 4월까지가 비가 오는 '우기'입니다.
겨울에는 지중해에서 서풍이 불어와 큰 비를 내리게 하며, 반면에 여름에는 사막에서 동풍이 불어와서 매우 건조하고 무더운 아열대 기후를 형성하는 곳이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중해성 아열대 기후는 동쪽으로 갈수록 심해지며 같은 팔레스타인이라고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 기온 차이가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여름에도 밤에는 북동풍이 찬 기운을 몰고오기 때문에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하루 일교차가 거의 40도 가까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출 22:26-27). 사랑의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이렇게 세밀하게 이웃의 고통까지 우리가 살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1) 이른비(יָרָה 야라)
팔레스타인의 건기인 여름이 지나서 우기인 겨울에 접어든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내리는 비를 '이른비'라고 합니다. 본절에서 "땅을 적시는"이라고 해석된 히브리어 '야라'(יָרָה, 요레 יֹורֶה)는 '이른비'(former rain)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른비'는 여름의 건기를 지나서 내리는 비이므로 여름동안에 매말라있던 땅을 촉촉히 적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른비가 내리면 여름동안 말라서 굳어있던 땅이 씨를 뿌리기에 적당하도록 부드러워지므로 이른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에 큰 타격을 줍니다.
반가운 북동풍과는 반대로 남풍이 불어올 때에는 모래를 동반한 사막의 찌는듯한 더위를 몰고오기 때문에 모든 식물이 말라 죽게 됩니다. 엘리야 때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비를 내려주지 않으셔서 3년6개월동안 땅이 말라서 기근으로 고생했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이른비를 내려주시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른비가 와야만 땅이 부드러워져서 씨를 심고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른비가 오지 않으면 씨앗이 발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른비는 목축을 하는 유목민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비였습니다. 이른비의 유무에 따라 가축들이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목초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눅 12:54-55)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욜 2:23-24)
(2) 겨울비, 큰 비, 소나기(גֶּשֶׁם 게쉠) 본절에서 "비와 같이"의 "비"(גֶּשֶׁם 게쉠, rain, shower)는 히브리어 '가쉠'(גָּשַׁם)이라는 '소나기가 격렬하게 퍼붓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남성 명사로 '큰 비' 즉 '소나기'를 말합니다. 이는 보통 '비'라는 말로 사용되는 '마테르'(מָטַר)와는 달리 이른비 이후에 12월말경부터 2월까지 내리는 장마비와 같은 소나기를 말합니다.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40 주야를 땅에 비(מָטַר 마테르)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창 7:4)
창세기 7장 4절에 나오는 '비'와는 달리, 노아의 홍수때에 내렸던 폭우에도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노아 6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17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 주야를 비(גֶּשֶׁם 게쉠)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12)
이 비는 바람을 동반한 폭풍우로 성경에서는 "큰 비"라고 해석이 되어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가 든든하지 못한 집은 이러한 '창수'로 인해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소의 생활 속에서 겪고있는 상활을 비유로 들어서 알아듣기 쉽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the floods)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27)
에스라 10장에 보면, 이 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9월 20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스 10:9-13).
에스라 10장9절에 나오는 9월은 이스라엘력으로 기슬레브(כִּסְלֵו)월을 말하며, 양력으로는 11~12월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에서 큰 비가 내리는 이때의 비는 호수나 샘에 저장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때에 빗물을 저장하며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 대비하였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한 번 가뭄이 들기 시작하면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의 폭풍과 농경의 신인 바알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알은 우상일 뿐, 이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른비와 큰비와 늦은비를 우리에게 알맞게 내려주십니다.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 11:13-15)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슥 10: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גֶּשֶׁם 게쉠)의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3) 늦은비(מַלְקוֹשׁ 말코쉬)
늦은비는 3, 4월경에 추수를 앞두고 내리는 축복의 단비입니다. 이 비가 내려야만 곡식들이 잘 결실할 수 있으며, 이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들이 모두 죽기 때문입니다. 이른비가 내려서 말라있던 땅이 촉촉해지면서 땅에 씨를 뿌리고 새싹이 나오고 줄기와 잎사귀가 자랄지라도 늦은비가 내리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여 그 동안의 수고가 모두 수포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이른비는 파종하기 위하여 중요한 비이지만 늦은비는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기 위해 중요한 비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이 모두 필요합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기근과 지진과 홍수와 태풍과 굶주림으로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어떠한 노력으로도 비를 내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따라서 복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고 그분만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어있는 인간들은 복의 원천인 하나님을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 5:21-25)
창세기 1장28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말씀하듯이 인간의 노력으로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 1:17)라고 말씀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허물이 이러한 것들을 물리쳤고, 우리의 죄가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른비와 늦은비를 우리 개인의 삶에 적용한다면, 이른비는 처음 성령을 받아 거듭날 때를 말하며 늦은비는 거듭난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성화되어가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견인해주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과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물어 매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라고 찬송을 부르듯이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도 선물로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정말로 갈급한 심령으로 힘써 구하고 두드리고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늦은비와 같은 진리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셔야만 우리는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사모함이나 갈급함이 없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며 여호와를 알 수 있는 지식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참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힘써 찾는 자에게 반드시 나타나셔서 보여주시며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매마른 땅에 단비를 촉촉히 내려 주시며 늦은비와 이른비를 시기 적절하게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 91:14-16)
우리에게 이른비와 늦은비를 때에 맞게 내려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 복과 은혜를 받는 비결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합왕 시대에 3년6개월동안 기근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른비와 늦은비의 은혜를 받고 싶은 이들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찌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찌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레 26:1-5).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른비와 늦은비는 성령이면서 동시에 여호와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단비는 우리의 영을 살리는 생명수이며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한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양식인 성경말씀을 듣고 읽어도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생명의 말씀이 결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를 외면하는 것이 바로 이른비와 늦은비를 맞지 않은 매마른 땅과 같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혜받을 만한 때에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그분의 은혜를 사모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 기근을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 8:11-13)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힘과 어떠한 노력으로도 하늘에서 비가 오게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즉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하나님 의존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결코 교만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언약의 말씀을 근거로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순종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인내의 결국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언약의 말씀을 근거로 인내하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적당히 하나님을 알고 믿으려고 하지말고 하나님께서는 힘써 알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과 생명을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7-11)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삶 속에서 이른비와 늦은비를 가장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양으로 내려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언약의 말씀에 충실히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보다 저의 생각이 앞서서 제가 원하는 시간에 제가 원하는 양의 비를 내려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실수를 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귀한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과거에 제가 신앙생활에 나태하여 게으름을 부리며 힘써 구하고 두드리며 찾지 않았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세상일과 제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고 추구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랬사오니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제는 주님을 아는 일을 가장 최우선에 두며, 그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임을 잊지 않고 살기를 원하오니 저에게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매순간 성령님께서 저와 함께 하셔야만 제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단비를 받아 복의 근원의 삶을 살 수 있사오니 저와 항상 동행하여 주옵소서.
제 삶 속에서 지금껏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당히 내려주셔서 지금까지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먹여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귀한 은혜를 이제는 전도자로서 주위에 나누어주며 살기를 소망하오니 저를 도와주옵소서.
주께서 원하시는 복의 근원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더욱 큰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그래서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며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큰 영광을 받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답게 힘써 여호와를 아는 데 저의 시간과 에너지와 모든 것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