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선 창세기 3장 1-6절
한 주간 동안을 보내면서 또 다양한 미담들이 있었습니다. 미담을 특별히 소개하는 이유는 이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힘들입니다. 고립과 외로움을 아는 5.18의 광주가 대구 시민들을 품고(달빛동맹) 의료진으로 물품으로 다양한 응원메세지로 대구와 연대하는 것도 감동이었고 ‘그만해라 지겹다’라는 언어폭력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하면서 고통의 세월을 보냈던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고립된 대구와 연대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마스크를 양보하는 사람들, 마스크를 모아서 더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는 사람들, 여기 강단위에 있는 꽃 보이시지요. 요즘 화훼단지가 코로나 여파로 전혀 장사가 안 돼 한해 농사 망쳤답니다. 조금이라도 함께 위로하고자 꽃 사기 운동을 한답니다. 그래서 꽃집도 살리고 사람들 기분도 전환시키고 모두를 살려가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동네 밥집에 가서 밥을 사 먹기도 해요. 시장을 돌리기 위한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일부러 사먹는 겁니다. 모두 이 위기 속에서 서로서로를 살려가는 힘들입니다. 어떤 기자가 이런 미담을 소개하면서 그런 글을 썼더라구요. 대구의 고립에 응원을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 덕에 대구가 살고 있는데 “언젠가 대구가 당신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그럴 것입니다.
제가 열혈사제라고 하는 옛날 드라마를 보았는데 마지막 신부님이 사람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던 어떤 사람을 향해 분노의 총을 겨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부 옷 벗고 죽여서라도 그가 죽였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그 안에는 자신을 사람 되게 해주셨던 주임신부님도 계시거든요) 원수를 갚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방아쇠를 당기려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신부님 옆에 있던 여 검사가 “하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고 이런 인간 때문에 신부님의 인생을 망치면 안 된다”고 말리면서 천천히 다가갑니다. 그리고 천천히 신부님의 등에 손을 얹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그 순간을 감독이 정말 잘 연출했어요. 손바닥을 통해서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면서 천천히 분노의 감정이 사그라드는 거예요.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필요한 시절입니다.
지난 11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어난 지 9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유학생활을 마치고 동녘에 다시 돌아온 달입니다. 지금도 880톤의 핵연료덩어리가 계속해서 분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나오는 방사능 오염수가 하루 300톤, 일본정부는 그것을 순환하며 쓰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반 이상이 바다로 유출되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핵분열을 하는 연료덩어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코로나는 마스크 쓰고 손 잘 닦고 매일매일 방역하고 그러면 절대 안 걸릴 수 있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통제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핵이라는 하는 건 인간이 관리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닙니다. 9년이 지났는데도 연료봉에 접근을 못했어요. 왜 그래요. 접근하려고 하면 피폭으로 현장에서 즉사하는 거예요. 얼마 전 아베가 토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서 <후쿠시마 농산물 먹고 마셔도 안전하다 원전 0.3Km범위 안에서 완전히 차단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언론에는 지속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게 후쿠시마 농산물 괜찮다고 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을 하고 현장에 가서 오이를 먹고, 농산물을 먹고, 잡은 고기로 요리를 해먹고 했던 연예인들 전원 내부 피폭되었고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특히 20대 30대의 젊은 연예인들이 백혈병과 각종 암으로 죽거나 투병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스트라이트 취재진이 얼마 전에 통제지역에 들어갔는데 대부분의 지역의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의 몇 십 배씩 되구요. 특정지역에 가면 방사능 수치가 400배나 나와요. 시간당이니까 그곳에만 계속 있으면 얼마 못사는 거예요. 20Km 반경 안에 귀환곤란지역이 풀린 지역이 있어요. 그곳에서 돌아와 농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키우던 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못 일어나 죽는 거예요. 그게 한두 마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피폭을 당하는 거죠. 체르노빌은 지금도 반경 30KM가 통제되고 있고 일본의 경우 올림픽 때문에 정보를 통제해서 알 수가 없어요. 그냥 안전하다고만 외치는데 실제로는 위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이제 11개에서 1개 멈춰 세웠는데 그래도 고리 5,6기를 또 짓기로 했지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지진으로 하나만 폭발에도 전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그 폭발한 원전은 영구적으로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여러분! 저준위의 핵폐기물의 보관이 300-400백년이고 고준위 핵폐기물의 경우 10만년에서 100만년은 보관해야 안정성이 보장된답니다. 그런데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껏해야 50-60년 정도 보관할 수 있는 중간저장방식만 개발되어 있는데 핵폐기물을 중간저장방식으로 옮기는 데만 10-30년이 걸린답니다. 인간이 손될 성질의 것이 아닌게 핵입니다. 우리가 탈핵을 선언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친자연적인 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아니 이미 없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성서에 보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았을 때 뱀은 여자가 이 열매를 먹으면 어떻게 되리라고 하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 줍니다. 여자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알고도 먹었습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삶에는 아무리 유혹적이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이야기는 그 경계선을 지키며 살아야 생명이 생명으로써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건지 모릅니다.
여러분 옛날 20대 때 데모 참 많이 했습니다. 시국과 관련 데모도 많이 했지만 교단과 관련된 비리, 학교와 관련된 비리에 대한 데모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데모하고 학내 사태가 이루어지면 양쪽으로 갈라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서로 생존을 위해 지저분한 공격까지 다 합니다. 그런데요. 싸움 하면서 볼 거 못 볼 거 다 보잖아요? 싸움하면서 인간의 바닥까지 다 보고 나면요. 싸움이 끝나도 회복이 안돼요. 평소에 잘 지냈는데 싸움의 와중에 서로 양극단을 달려요.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배, 선생님의 바닥을 보고 나면 그 상처가 치유가 안되요. 일은 해결되는데 상처는 치유가 안돼요. 부부도 그렇고 사람들 사이에도 그렇고 넘지 말아야할 선들이 있어요.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여러분들도 안방극장에서 돈 내고 한번 보세요. 초대형 유람선 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한 피아니스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 틀을 해서 완전히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피아노를 잘 칩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배안에서 여행객이었던 어떤 여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물론 짝사랑입니다. 그 여인은 떠나고 배에 홀로이 남아 지내던 그가 유람선이 뉴욕에 정박했을 때 그 사랑하던 여인을 찾아 배에서 내려 도시로 찾아가려고 내리기를 시도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배와 육지 사이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선셋으로 비취는 뉴욕을 거리를 바라봅니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가 계단을 내려가기를 멈추고 다시 배로 올라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하는 대사입니다. “피아노를 봐.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잖아. 그런데 저 도시는 끝이 보이질 않아” 88개의 유한한 건반위에서도 무한을 연주하고 초월을 연주하고 신비를 연주했던 그가 광활하게 펼쳐진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한 욕망의 도시를 보면서 내려가길 멈춥니다.
끝을 알고 한계를 알고 금지된 선 앞에서 멈춰서야한다는 것입니다.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끝은 잔인한 죽음과 고통과 상처뿐입니다. 여러분 선을 넘으면 정작 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시죠? 후쿠시마는 지진으로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붕괴되어 지금도 사람이 살수 없는 땅이 되었죠. 7년 8년이 지나자 그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곳 아니면 살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살만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도쿄로 해외로 나가서 더 좋은데서 살지요. 가장 경제적으로 약하고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받습니다. 원전은 돈 있고 그것으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마피아들이 다 지어놓고 그 이득도 그들이 다 챙겨가고 엄한 도시인들이 다 보면서 결국 그 피해는 원전이 있는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온 몸으로 껴안고 사는 겁니다.
부모가 상호간의 선을 넘으면 누가 가장 피해를 봅니까? 부부는 괜찮아요. 다 컸잖아요. 헤어지면 다른 사람이랑 살고 요즘은 혼자서도 잘 살아요. 가장 피해자는 애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코로나를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이런 재앙이 닥칠 때 가장 피해를 보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경제적, 사회적 약자입니다. 건물 있고 정규직에 있는 사람들은 꼬박 돈이 들어오겠지만 일일 노동자로 살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우리 교회에도 많습니다. 적금을 깨고 카드빚 늘려가면서 살 수 밖에 없어요. 헬기로 돈을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모든 경제적 취약자들에게 기본 소득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삽니다.
우리가 삶의 다양한 환경에서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결국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있는 길이고 가장 약하고 가장 여리고 상처받은 우리의 이웃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핵과 기독교신앙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관계에는 넘지 말아야할 소중한 선들이 있습니다. 성찰과 사랑으로 서로를 잘 살려가는 귀한 한주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