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유한 사람들의 모습
온유한 사람의 모습은 어떨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남에게 부드럽고 상냥하고 친절하며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는 온유의 의미가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면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을 뜻했습니다. 본능적 충동과 격정에 휩쓸리지 않고, 폭력을 거부하며,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는 사람입니다. 바클레이는 예수님 당시 온유한 사람들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를 때라도, 화를 낼 상황이 아니라면 화를 내지 않고, 마땅히 화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화를 내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다.
이러한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평소에 부드럽고 온유한 분이셨지만, ‘어떤 경우’에는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당시 사고방식대로 과연 어떤 상황이 화를 내도 되고, 또 화를 내서는 안 되는 걸까요? 하느님 나라와 공동선을 위한 것이라면 화를 내도 되고, 개인적이며 자신의 이해를 위한 것일 때는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에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마태 23,33), “위선자”(23,13)라 불렀으면 지옥에서 엄한 단죄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전을 돈벌이 장소로 만든 대사제와 사두가이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유다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분노하셨습니다.(21,13 참조)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먹보요 술꾼이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11,19 참조),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기적을 행하는 자요(12,24 참조). “사생아”(요한 8,41)라고 개인적인 조롱과 모욕을 받으셨을 때에는 애써 그렇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거나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 자신을 다스린다는 의미
그렇다면 남이 나를 짓밟을 때, 남이 내 영역을 함부로 침범할 때에도 하느님 나라와 공동선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하나요? 남이 나를 의도적으로 조롱하고 무시하고 괴롭힐 때, 그것이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절대 분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요?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개인적인 것이기에 무조건 참아야 하나요? 분노를 억압하고 그 강렬한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두라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분노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도, 단오하고 분명하게 내 의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를 돌보기 위한 것이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상대에게 깨닫게 해주거나, 상대의 나쁜 버릇을 고쳐놓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성찰한 다음에 생각을 표현하여 나를 알리는 데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느님 나라와 공동선을 위해서 우리는 화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인품을 갖지 못했기에, 화가 났다면 먼저 그 화를 표현하기 전에 충분히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나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느헤미야처럼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귀족들과 관리들의 악행에 화가 많이 났지만 곧바로 그 화를 표출하지 않고 깊이 생각한 다음에 그들을 꾸짖었다.(느헤 5,6-7 참조)
“화가 나면 표현하기 전에 열을 세라. 정말 많이 화가 났다면 백까지 세라.” 이 격언은 분노가 가진 폭발력을 다시르는 데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주체하기 어려운 분노일수록 조절을 위한 숙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분노라는 감정 앞에서 숙고하는 것은 분노를 억압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분노가 일어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라는 것이요,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분노 표출을 제한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노가 치밀 때는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우둔한 자는 화를 있는 대로 다 터뜨리지만 지혜로운 이는 화를 가만히 가라앉힌다.”(잠언 29,11)
지혜로운 이가 화를 가만히 가라앉히는 것은 자신의 화를 상대에게 마구 배설하지 않고, 그 일과는 무관한 사람들까지 공격해서 아수라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부부나 친구처럼 친밀한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내 얼굴색이 바뀐 것을 보고 “화났어?”라고 묻는다면, “응.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아. 나중에 이야기할게.” 또는 “그래,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정말 나쁘네. 그런데 아직은 나도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워.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시 이야기하면 좋겠어.”라고 대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가진 다음 이야기할 때는 ‘나 전달법’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항상 따지는 거야.”가 아니라, “내가 꼭 죄수처럼 심문당하는 기분이야.”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신, 시댁 식구들과 함께 나를 왕따시키는 거야 뭐야?”가 아니라,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앞의 표현은 주어가 ‘너’이고 뒤의 표현은 ‘나’입니다.
‘나 전달법’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나의 불만을 전달하는 대화 기법입니다. 불만은 비난이 아닙니다. 불만은 내가 어떤 점 때문에 힘들어하고, 어떻게 내 마음이 안 좋은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난은 상대방을 몰아세우고 인격적인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힘들게 하네요. 지난달에도 기한을 못 맞추더니 이번에도 또 그렇잖아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불만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또 기한을 못 맞추다니, 정말 한심하다 한심해. 이렇게 하면 당신하고 어떻게 일을 같이 하냐고.” 한다면 그것은 인신공격이고 비난입니다.
분노에 더딘 이는 용사보다 낫고 자신을 다스리는 이는 성을 정복한 자보다 낫다.(잠언 16,32)
첫댓글 “화가 나면 표현하기 전에 열을 세라. 정말 많이 화가 났다면 백까지 세라.”
분노가 일어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라는 것이요,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분노 표출을 제한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노가 치밀 때는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나 전달법’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나의 불만을 전달하는 대화 기법입니다.
불만은 비난이 아닙니다.
불만은 내가 어떤 점 때문에 힘들어하고, 어떻게 내 마음이 안 좋은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둔한 자는 화를 있는 대로 다 터뜨리지만 지혜로운 이는 화를 가만히 가라앉힌다.(잠언 29,11)
분노에 더딘 이는 용사보다 낫고 자신을 다스리는 이는 성을 정복한 자보다 낫다.(잠언 16,32)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멘. 아멘. 아멘.~~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를 때라도,
화를 낼 상황이 아니라면 화를 내지 않고,
마땅히 화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화를 내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다."
“우둔한 자는 화를 있는 대로 다 터뜨리지만
지혜로운 이는 화를 가만히 가라앉힌다.”(잠언 29,11)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