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문화 64호 2022 겨울호)
#뻘 이불 덮었다는 소문 외 1편
이민숙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베고 가버린 년
한여름 햇살처럼 데어놓고 가버린 놈
쓰라려도 괜찮아 보내고 난 뒤
그제야 알았지 부드러움이란,
천둥번개 원 없이 맞아야 뻘뻘 펄 되어 녹아내린다는 걸
배반의 눈물 같은 존재의 칼춤이 곱고 고운 와온 뻘의 어머니라는 걸
#사실과 상상
감자 두 알 고구마 두 알 삶는다 끓는다 보글보글 사실적으로
고구마가 익었나? 감자는 탈까? 코가 마침내 벌떡 일어나 앉는다 냄비가 신호음을 보내는데, 침이 혓바닥을 연주하며 노래한다 먼 석기시대의 그리움과 21세기의 외로움이 서로 경쟁을 한다
엄마 감자 딸 고구마 아빠는 맥주 한 캔에 오징어 한 마리
사랑하는 관계, 아니 아니 서로서로 무심히 여행을 꿈꾸고 있나? 자유라는 날개가 어깨에 매달린 고무줄을 튕기며 춤 춘다
저녁노을을 등지고 아들이 들어온다 도서관에서 어렵사리 찾아온 책 한 권, 친구가 하도 재밌게 읽어서 빌렸다는 「호모 데우스」* 세 사람은 감자와 고구마와 맥주 한 잔과 마른 오징어 다리 하나를 건넨다 고르기는 쉽다 신神처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서로의 경험이 같거나 달라서? 알고리즘이란 게 뭐라구? 엄마인 여자와 딸인 여자, 아빠인 남자와 아들인 남자, 또다른 타인들, 역사가 남긴 미래변화 관성은 붙잡을 수 없다는데, 세상은? 더 빨리 변할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상상과 사실의 격차
사실과 현재와 상상이 다정하게 살던 때가 있었다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상상 속에 배롱꽃이나 피우면서, 타인의 피가 내 가슴으로 흐른다는 것과 저 먼 과거나 미래가 다르지 않다고 고갤 끄덕이면서, 변하려면 변해봐! 하면서도
이미 나도 몰래 절뚝거리는 아름다움이라는 추상, 진실이라는 우주, 선善이라는 언어는 호모 사피엔스의 유물로 박물관에 갇히고 말았다 죄수의 기억은 ‘탈출!’ 지금도 유효할까 아주 오래된 유전자처럼?
*유발 하라리 저서 제목, <신이 된 인간>의 뜻 |
첫댓글 누님의 시에 대한 삶에 대한 대단한 열정 늘 감동이네요.
언제 쯤 식을지 궁금합니다.
시에 대한 열정은 당연지사구먼...감동이라니 고맙그만요~ ㅎㅎ
삶에 대한 열정은 이제 그만 슬렁슬렁 살고파요 그러다보면 시도 그만 쓰고 싶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