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적금 탄 돈으로 피아노를 사러가던 날, 봄빛은 찬란했다. 만개한 꽃들이 나를 향해 눈웃음을 보냈고 봄바람이 장난스럽게 내 얇은 실크 스커트를 살짝살짝 들추었다. 이제야 나는 온전히 나 혼자만의 피아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햇살도 꽃들도 바람도 다 들뜬 내 마음을 알고 있는 듯했다. 피아노 가게 문을 밀치자 나를 따라오던 바람이 먼저 들이치며 내 머리카락을 날렸다. 주인이 반갑게 일어서 내게로 다가왔다. 짐짓 그의 시선을 피하며 진열된 피아노를 둘러보았다.
대개의 피아노가 아담했고 나뭇결이 비치는 적갈색이어서 날렵해 보였다. 전에 우리 집에 있었던 우람한 검은 피아노와는 사뭇 달랐다. 그래, 내 피아노는 언니와 동생이 치던 그 피아노와는 당연히 달라야지. 더 세련되고 더 고급스러워야 해, 나는 이 중에 가장 멋진 피아노를 사고 싶었다. 뚜껑을 열어 둔 피아노로 다가가 살짝 건반을 두들겼다. 모양새와는 달리 소리가 신통치 않았다. 주인이 옆에 있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쳐보았지만 그것 역시 소리가 튕겨나가 허공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내가 찾는 음색이 아니었다. 내 속으로 들어와 온몸의 세포를 춤추게 하던 피아노 소리는 어쩌면 내 어린 날의 기억 속에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걸까?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실망을 감추느라고 고개를 돌렸을 때. 새까맣고 덩치가 큰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다가가 건반을 눌렀다. 순간, 깊고 그윽한 음향이 내 심장을 두드리고 피와 뼛속으로 파랑을 일으키며 번지는 게 아닌가. 이 청아한 소리,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소리였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가족회의를 한다고 우리를 안방으로 모이게 했다. 피아노를 사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오빠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했다. 아들을 제쳐두고 딸들에게 거금을 들인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눈치였지만 오빠는 별다른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며칠 후 까맣고 윤이 나는 큰 피아노가 우리 집 거실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위풍당당한 피아노가 거실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세 자매의 자존심이었다. 언니는 학교가 파하면 달려와 밤이 새도록 피아노를 쳤고 동생도 동이 트기 전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언니는 가끔 정전이 된 밤에 어두운 데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곤 했다. 그때 나는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 멀리 구름사이로 피아노 선율이 은은한 달빛을 타고 있었다. 우리 집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외출에서 돌아오다 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새어나오면 담장 곁에서 발길을 멈추곤 했었다. 그러나 피아노는 내 차지가 된 적은 별로 없었다. 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독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며 열심인 언니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맘먹고 치려고 하면 어느새 언니가 앉아 있거나 동생이 치고 있었다. 둘은 악착스러웠다. 손끝이 닳아 건반에 피가 묻어날 정도였다. 나는 그들 곁을 맴돌며 피아노를 왁스로 반짝거리게 닦곤 했다.
그 날은 언니가 친구 생일에 초대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학교가 파하자 집으로 달려갔다. 피아노를 실컷 쳐볼 작정이었다. 내가 신나게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해주야! 해주야! 연거푸 부르시더니 다가와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 팔에 꼭 힘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우리 착한 해주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피아노를 가슴으로 치고 있어.”
그때 뭔가가 내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것이 가슴을 살짝 짓눌렀다. 아버지와 나만의 무언의 약속처럼. 그후 오랫동안 나는 그날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행복했다. 언젠가는 피아노를 열심히 쳐야한다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왔다. 그러나 언니와 동생은 내로라하는 콩쿠르에 나가 상을 휩쓸었고 언니는 명문대 음대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나는 끝내 아무런 재능도 보이지 못한 채 일반 대학에 진학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후두암 말기의 진단을 받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아버지의 생명은 바람 앞에 등불이었고 나는 뭔가를 해야만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허둥댔다. 세 딸 중에 늘 뒤쳐진 나 때문에 병이 나신 것은 아닐까, 언제 내가 아버지를 흡족하게 해드린 적이 있었던가. 새삼 내가 무엇에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친 것이 불효라는 것도 알았다. 절절하게 후회가 되었다. 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다 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 해주, 시집가는 걸 꼭 보고 싶구나.”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사귀던 사람과의 결혼을 서둘렀다. 결혼날짜가 정해지자 그때부터 아버지는 쫄쫄 굶으셨다. 단식을 하면 암 세포가 더 이상 전이가 되지 않는다고 믿으셨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결혼만은 꼭 지켜보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마지막 염원은 눈물겨웠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점점 아버지의 생명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집안이 어수선하고 경황이 없어서 내 혼수는 뒷전이었다. 3년 전 언니의 결혼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녀가 시집 갈 때는 혼수가 넘쳐 앞집의 방을 한 칸 빌릴 정도였다. 그 속엔 값비싼 외제 피아노도 들어 있었다. 내 결혼식은 단출했고 언니의 혼수 중에 안 가져간 것만으로 우선 살림을 차렸다. 집을 구할 여유도 없어 아버지가 병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비워 둔 친정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곳에는 지난날 한 번도 온전히 내 차지가 되지 못해 나를 빌빌거리게 했던 피아노가 있었다. 그것은 내 어린 날의 결핍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아버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은밀한 약속의 징표이기도 했다. 늦게나마 이제 내 것이 되려니 기대했다.
아버지는 그해 겨울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오빠와 함께 살기로 하고 집을 헐값에 급히 팔았다. 집을 비워주기로 한 전날, 오빠가 인부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인부들은 어머니의 자개농과 우리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장식장과 아버지의 책장을 들어냈다. 그 외에 자잘한 짐들을 다 옮긴 다음 마지막으로 피아노로 몰려들었다. 피아노까지 가져가려나? 갑자기. 심장이 세차게 고동쳤다. 난 그 피아노가 무척 갖고 싶었다. 오빠는 내가 그 피아노를 치면서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서러움을 달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짐을 옮기는 인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부들은 피아노를 잡고 큰 바퀴가 달린 판자 위로 들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제발 이것만은 내게 남겨 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아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 마음을 알아챈 듯이. 그들이 하나! 둘! 하고 구령을 부치며 몇 번인가 힘을 모은 뒤에야 피아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설움에 북받쳐 흐느꼈다. 가만히 서서 지켜보던 남편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우리도 곧 이사를 했다. 보일러도 고장 난 낡은 연립주택이었다. 살림살이라야 이불 보따리와 그릇 몇 가지뿐이었다. 텅 빈 벽에 기대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이제 비로소 남편과 단 둘만의 보금자리가 마련되었지만 이 세상에 내편이 되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이 허전했다. 우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고 시댁에서는 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좀더 공부를 해서 큰 포부를 펼쳐야 할 아들이 일찍 여자에게 빠져 인생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신혼의 달콤함은커녕 밀려드는 공허를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이든지 해야만 했다.
절망과 공허를 메우려고 텅 빈 거실을 매듭 재료로 가득 채우고 흰색의 실을 사다가 자연 염료로 나만의 색을 내어 물을 들였다. 차가운 방바닥에 두꺼운 요를 깔고 앉아 매듭을 엮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노리개와 발걸이 등의 장식품을 만드는 데 매달렸다. 부지런히 매듭을 엮을 때면 옛 여인들의 삶이 얼마나 굴곡이 졌으면 이런 복잡한 것을 고안했을까 싶고 얽히고설킨 매듭은 그들의 기구한 삶을 닮은 것 같았다. 내 운명도 이러려나 싶었다. 그러나 맺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내 침묵의 손놀림은 꿈을 안고 있었던가보다. 이웃 사람들이 찾아와 구경을 했다. 작품이 아주 특별해요, 혼이 담겨 있어요, 그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한두 점씩 사갔다. 많은 친구들의 요청으로 나는 전시회를 열었고, 열자마자 작품은 동이 났다. 그 돈으로 장롱과 세탁기와 냉장고 등 새 살림을 장만했다. 오랜만에 오빠 집에 들렀다. 피아노가 그곳에 있었지만 아직 어린 조카들은 피아노를 배우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피아노를 장난감으로 여기는 듯했다. 뚜껑은 송곳자국인지 여러 군데 작은 홈이 패었고 몸체는 낙서투성이였다. 내 몸에 생채기가 난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오빠에게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오빠, 저 피아노 내게 팔면 안 돼?”
그렇게 해서 피아노는 다시 내게로 왔다. 그러나 가지런하고 깔끔하던 상아 건반은 누르스름하게 변했고 소리도 엉망이었다. 이름난 조율사들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피가 커서 자리만 차지하는 걸 왜 가져 왔는지 후회스러웠다. 그것은 낡아빠진 고물에 불과했다. 상당히 솜씨가 좋다는 조율사를 소개받았다. 그에게 한번만 더 맡겨 보고 어떻게 처리해버릴지 결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중히 현을 들여다보던 그 조율사는 포기한 듯 손바닥을 두어 번 비비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피아노가 20년이 넘으면 거의 수명을 다 한 거라며 자기에게 팔면 수리해 쓸 테니 돈을 조금 보태어 새 것을 사라고 권했다. 난 망설였다. 그는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며칠 후 그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생각지도 못한 큰 액수를 제시하였다. 곰곰이 생각했다. 이 고물 피아노에 별다른 애착을 갖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동안 착실히 부은 적금도 만기가 되니 이 기회에 새 피아노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하지 않고 팔아버렸다. 피아노는 또 다시 내게서 떠났다.
가게 주인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며 단호히 말했다. 그것은 비매품입니다. 난 이미 그것이 내가 판 바로 그 피아노임을 알아차린 뒤였다. 이게 어떻게 여기 와 있지? 게다가 그 고물 피아노가 이렇게 말끔히 새로 태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내 몸 속 세포들이 먼저 알고 일제히 환호했다. 언니와 동생이 길들이고 나와 함께한 소리였다. 이 피아노를 사고 싶어요, 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애원하고 있었다. 돈을 더 주고라도 꼭 그것을 사고 싶었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 피아노는 사연이 있답니다. 전씨 집안의 가보예요. 그 집 딸들이 이걸로 전국 콩쿠르에서 온갖 큰 상을 다 휩쓸었어요. 이걸 제가 소장하다니 참 운이 좋았지요.”
운운하면서 내 앞에서 우리 집 역사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는 피아노의 소리를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 집의 역사를 더 흠모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가 흠모하는 우리 집의 역사 속에는 언니와 동생의 명성만 언급될 뿐 둘째딸인 나는 끼어 있지 않았다. 나는 피아노를 판 당사자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벌써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 피아노가 지금도 그곳에 있으려나.
첫댓글 소설 한편 읽은 느낌입니다. 진솔한 얘기가 감동을 주네요~
에그~~
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