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꼬막 (박노해)</p><p> </p><p>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식이가</p><p>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p><p> </p><p>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p><p>이 섬세한 남도의 살림 성사는</p><p>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p><p> </p><p>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p><p>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p><p> </p><p>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p><p>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p><p> </p><p>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p><p>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p><p> </p><p>친구야 고맙다</p><p>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p><p>감사 전화를 했더니</p><p>찬 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p><p>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p><p> </p><p>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p><p>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p><p>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p><p>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p><p>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p><p>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p><p> </p><p>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p><p>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p><p>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p><p> </p><p>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p><p>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p><p>이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p><p>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p><p>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p><p> </p><p>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p><p>―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2010)</p><p> </p><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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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친구사이가 참 짭조름, 쫄깃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