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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IC 경남지부에서 매년 '영우'라는 회지를 발간하는데 회원들에게 원고를 청탁한다. 금년의 특집 주제는 '내 안의 작은 행복'이다. 그래서 '내 마음의 옹달샘 산호정 카페'와 나의 까페 바른삶의 길 273에 실려 있는 '진주 남강(南江)의 발원과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수정한 원고 두 편을 보냈다. 보낸 원고는 이러하다.)
내 마음의 옹달샘 ‘산호정’카페
156기 김상민
1. 생각을 열며
‘퇴직’을 영어로 ‘retirement’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이해 보면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운다.’는 뜻이다.
그 의미를 나에게 결부시켜 보았다. 과연 나는 지금까지 타이어를 몇 차례 교체를 했고, 교체한 타이어는 어떤 용도로 사용했으며,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첫 번째 타이어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달리면서 세상을 살아갈 능력과 힘을 기르는데 사용했다. 두 번째 타이어로는 청년기와 장년기를 운행했는데 나의 힘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사회와 국가에 기여한 공으로 받은 보수로서 가족을 부양하는데 진력했다. 퇴직을 하면서 세 번째 타이어로 갈아 끼웠다. 이 타이어로는 철저하게 나의 주관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사용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우선을 두었다. 다음으로 가정과 가문의 문제로 확대하여 범위를 차츰 넓혔다. 가능하면 조직에 얽매어 행동의 구속을 받는 일은 삼가 했다.
2. 지향점(指向點)을 설정하며
나는 2010년 8월 31일에 양산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진주로 돌아왔다. 퇴직 후 몇 달은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3개월이 지난 후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여야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보람을 느끼고,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인가를 생각했다.
심사숙고(深思熟考) 끝에 ‘조상의 혼이 깃든 재실(齋室)과 정자(亭子)에 기록된 현판(懸板), 전해오는 가첩(家牒), 비문(碑文), 행장(行狀) 등을 한글로 번역하여 일족과 후손들에게 전하여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기저(基底)에는 보수적인 가정에 자라면서 부모님의 행동 모습을 보고 감화된 것이 나도 모르게 잠재의식(潛在意識) 속에 각인(刻印)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 생각을 펼칠 준비를 하며
내가 생각한 이러한 일을 수행하려면 먼저 내 자신이 두 가지 전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만 했다.
첫째는, 컴퓨터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습득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문을 공부하여 독해 능력을 높이는 일이다.
전자(前者)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컴퓨터를 이용하여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 내 힘으로 만든 홈페이지에 조상이 남긴 한문으로 된 기록물을 해석하여 원안과 함께 탑재하여 두면 가족이나 일가친척이 정보를 열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글들을 필요에 따라 읽다보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正體性)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숭조(崇祖)의 정신이 생기고, 나아가서는 가족과 일가친척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길 것이다.
후자(後者) 즉 한문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실질적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한글세대다. 한글세대는 한자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러므로 과거 신문 지면에 자주 사용되었던 상용한자(常用漢字)를 겨우 음(音)으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능력밖에 갖추지 못했다. 그것으로는 한문으로 된 문장을 이해한다거나 해석을 할 수가 없다. 한자의 문장에 자주 등장하는 글자와 상용한자와는 차이가 있다. 거기에 같은 글자라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고, 또 어조사의 뜻 변화가 다양하기 때문에 쉬운 글자로 된 문장도 해석을 하려면 헷갈린다. 그리고 한문의 표현 기법 중에 전주(轉注)와 가차(假借)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글자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암시적으로 표현해 놓은 경우가 있다. 그런 기법의 글을 찾아내어 해석할 수 있어야 번역을 원활하게 수 있다. 그러한 경지에 까지 도달하려면 젊었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4. 생각한 일을 착수(着手)하며
나는 컴퓨터 활용 기능을 연마(硏磨)하기 위해 KWIC를 방문하여 ‘컴퓨터 기초교육’수강 신청을 했다. 그리하여 2010년 12월 1일부터 2주간 기초교육을 받아 156기생이 되었다. 그 후 문서작성, 정보탐방, TAG, 프리미어, 인터넷, Vegas, SWiSH Max, 홈페이지 제작, 카페 제작, 무비메이커, PHotoshop, PowerDirecor, 스마트폰 활용, SWiSH Max 그림그리기 연수를 수차례 반복하여 받아 혼자의 힘으로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기능을 익혔다. 그것을 바탕으로 ‘산호정’이란 다음 카페를 만든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문에 대한 소양을 제고(提高)시킬 목적으로 진주 향교에서 운영하는 ‘경서반’에 2011년 9월 초순에 등록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7년 3개월 전이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사서(四書)인 대학(大學), 중용(中庸), 맹자(孟子), 논어(論語)를 일순(一巡)하여 배웠다. 경서반(經書班) 외(外)에 원전반(原典班)에도 참여하여 소학(小學), 통감절요(通鑑節要),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삼국사기열전(三國史記列傳)도 수강했다. 또, 컴퓨터를 이용하여 인터넷 강의 명심보감(明心寶鑑) 30강, 노자(老子) 84강, 장자(莊子) 100강 2회, 주역(周易) 159강 2회를 인내심을 가지고 시청을 했다.
결정적시기(決定的時期)를 지난 공부이기에 노력을 해도 학습 효과는 미미(微微)하다. 한자의 글자를 한 자를 익히면 두 자를 잊게 된다. 그렇다고 허송세월만 보낸 것은 아니다. 강의를 들으면 한문의 글자는 몰라도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문을 공부하다보면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사찰(寺刹)을 방문했을 때 주련(柱聯)의 글을 보고 아마 이러한 내용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마음속으로 빙그레 웃음을 짓는 경우도 있고, 서원(書院)이나 재실(齋室) 정자(亭子)의 현판(懸板)에 눈이 머무는 것에서 스스로에게 대견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이가 들어도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여 도전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등산을 하여 산의 정상에 오르면 또 다른 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그 봉우리에도 오르고 싶은 것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의 공통된 마음이다. 한문 공부도 그와 비슷한 경향을 갖고 있다. 어떤 한 영역의 공부를 하면 다른 영역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경서를 공부할 때 시경을 자주 인용한 글을 접한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시경의 내용이 궁금하여 시경을 구하여 읽게 된다. 유가(儒家)에서 이단시(異端視)하는 도가(道家)의 사상이 궁금하면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를 읽게 되고, 교수님께서 주역(周易)을 인용하여 이야기 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되니 자연히 주역 공부에도 도전하게 되더라. 요즈음에는 한시 짓기에 도전하고 있다. 선생님으로부터 체계적인 지도를 받은 적이 없어도 한시 작법 책을 구하여 그 이론에 따라 도전하고 있다. 미숙하고 체계에 맞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20여 편 지어 보니 나름대로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차후에 한시를 잘 짓는 사람을 만나 지도를 받으면 그것이 자양분(滋養分)이 되어 쉽게 익히게 되리라 여겨진다.
5. 사업을 수행하며
이러한 일련의 수련 과정은 결국 내 마음의 옹달샘인 카페를 운영하기 위한 수단(手段)에 불과하다.
나의 하루 생활의 시작과 끝은 나의 다음 카페 ‘산호정’을 열어보고 닫는 것이 출발점(出發點)이고 종결점(終結點)이다. 이러다 보니 카페에 애착이 간다. 자주 나의 생각을 글로 쓰거나, 사진을 촬영하거나,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다.
‘산호정’카페에는 우리 가족의 지난날 생활 모습과 현재의 생활 모습을 담고 있고, 또 미래를 예견해 볼 수 있는 기록과 자료도 많이 수록되어 있다. 선조의 행적 기록과 제례의식의 기록도 충실하게 조직하여 안내해 두었다. 자유게시판, 정보자료실, 역사이야기에는 지인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메일 내용이나 인터넷에서 얻은 유익한 정보를 올려 공유를 할 수 있게 했다. 또, 한문을 공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를 직접 만들거나, 옮겨오거나, 다른 사이트와 링크를 시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나의 ‘산호정’ 카페를 구성하는 게시판 조직은 이러하다.
산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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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맺는 말
사람의 얼굴 모습이 모두 다르다. 그 얼굴 모습이 같지 않은 것처럼 생각 또한 다르다. 사람은 그 생각에 따라 각자 다른 삶의 궤적(軌跡)을 그리면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 지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나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이 있다. 부(富)를 추구하는데 관심이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에 관여 하는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내면을 다지면서 내공을 쌓는데 주력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삶이든지 자신 스스로가 만족하면 그 삶은 가치 있는 삶이다.
나는 나의 자녀들이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에게 이 세상을 쥐고 흔들 부(富)와 명예(名譽)를 다준다고 해도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너희들의 엄마와 너희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라고....
가족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했던 말이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때로는 활동공간을 넓히고, 교류하는 사람을 확대해 가지만 결국 마지막을 지키는 것은 가족뿐이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접하는 것이 가족이고 마지막을 같이 하는 것도 가족이다. 그러므로 가족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이다.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 중의 하나가 가족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다.
가족 카페를 만들어 글을 공유함으로써 가족 간의 생각을 얽어매고, 과거를 공유함으로써 정을 깊게 하고, 의사를 소통함으로써 영감(靈感)을 공유하면 사고가 진취적으로 변해 미래 지향적인 생각도 갖게 된다.
나의 가족 카페 ‘산호정’은 나에게는 샘과 같은 존재다. 그 속에 새로운 글을 올리기 위해 지혜의 샘물을 퍼내면 또 다른 새로운 물이 채워진다. 고여 있는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신선하기 마련이다. 내 생각이 진부(陳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도 나의 카페 관리에 심혈을 기우려 나아갈 생각이다. 거기에 내가 존재하는 가치의 한 영역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사람은 자기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서 자신의 가치를 자리매김 하여 가는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가 그 중심에 서고 싶을 따름이다.
진주 남강(南江)의 발원과 그 속에 내포된 의미
156기 김상민
우리 선조들은 산 이름 하나 강 이름 하나를 지어도 허투루 하게 짓지 않았다. 그 이름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반드시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문을 공부하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우리 고장을 관통하는 남강(南江)의 명칭은 진주의 옛 관아가 있던 진주성의 남쪽으로 흘러서 얻은 이름이고, 낙동강(洛東江)은 고대 사벌국 도읍지(경북 상주) 이름인 '낙양(洛陽)'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라 붙은 이름이다.
남강(南江)의 명칭은 진주에서 창녕 남지 두 물머리까지의 강을 말하고, 그 후 낙동강 본류와 합류하고부터는 낙동강이 된다.
남강(南江)의 경우 덕천강(德川江)과 경호강(鏡湖江)이 진양호에서 만나는데 이 때부터 남강으로 불러지게 되는 것이다.
덕천강(德川江)의 ‘덕(德)’은 인간이 스스로의 수양을 통해서 덕(德)을 얻게 되고, 그것이 다시 실천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유학의 정치사상인 덕치주의와 예치주의를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論語)〉 위정 편에는 ‘백성을 인도하는 데 덕(德)으로써 하고 백성을 가지런히 하는 데 예(禮)를 가지고 한다면 백성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바로잡힐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덕천(德川)은 그 덕(德)이 냇물처럼 흐른다는 의미다.
덕천강(德川江)의 발원은 지리산(頭流山) 천황봉 해발 1,915m의 바로 아래에 있는 천왕샘과 1,806m의 제석봉에 있는 제석천, 1,750m의 장터목 아래 있는 산희샘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법천계곡을 이룬다. 한편, 지리산 중봉과 써레봉 사이에서 흘러내린 물은 순두류계곡이 된다. 이 두 물줄기가 합류하여 중산리계곡을 만들면서 강의 면모를 띠기 시작한다. 여기에 다시 세석산장의 샘과 영신봉 아래 음양수샘에서 발원한 내대천이 더해지고, 이어 고운동 계곡에서 흘러온 반천이 합류해 덕산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대원사계곡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면서 화살처럼 빠른 시천(矢川)이 된다.
지리산 새재와 왕등재에서 시작한 대원사계곡 물은 유평을 지나면서 수량을 더해 웅석봉 밤머리재에서 흘러온 물과 합치면서 강폭을 넓혀 내원골과 장당골의 물이 만나는 대포에 이르러 강만큼 넓은 들을 펼친다.
중산리계곡에서 흘러온 물과 대원사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만나는 지점이 양단수다. 물이 얼마나 맑고, 주변 경치가 아름다웠으면 무릉도원이라 했을까?
남명은 일생토록 벼슬길에 나가지 아니하고 지리산이 올려다 보이는 양단수 언저리에 산천재(山天齋)를 열고 ‘안으로 바른 마음을 기르며 밖으로 그 옳음을 실천한다.’는 경의학(敬義學)을 몸소 행하며 가르쳤다. 그가 지은 시조 두류산 양단수는 이러하다.
두류산 양단수
두류산 양단수를 녜 듯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겨 세라.
아희야, 무릉이 어듸오 나는 옌가 하노라
덕산을 지나서는 웅석봉 아래 마근담에서 흘러온 물과 덕산에서 하동을 넘는 갈치재에서 흘러온 중태천이 물을 보태면서 자양 들을 일군다. 자양보 아래로 내려오면 백운계곡 물이 합류하게 되고 이 물은 하동 옥종으로 흘러간다. 옥종을 거쳐 진주 수곡으로 또 사천 본촌을 마지막으로 진양호에서 합류한다.
경호강은 남덕유산 남쪽기슭 참샘이 발원지다. 거기에 북쪽의 바른골과 삿갓골 샘이 합류하고 화림동 계곡을 거쳐 백운산(白雲山:1,279m) 계곡수와 만나 위천이 된다. 수량이 더욱 풍부해 지는 것은 지리산 주릉 북쪽계곡인 심원계곡, 뱀사골, 백무동, 칠선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합류하면 임천강이 된다. 이 강이 산청군 생초면에 이르면 경호강으로 부른다.
경호강(鏡湖江)이란? ‘경(鏡)’은 거울을 뜻한다. ‘호(湖)’는 호수다. 경호(鏡湖)는 거울 같은 호수다. 이 명칭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물이 잔잔하게 흘러 산수가 투영됨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명경지수(明鏡止水) 즉 ‘마음이 고요하고 잡념과 가식, 허욕이 없이 아주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경호강이 생비량면에 이르면 황매산에서 발원한 양천강을 만나 더욱 큰 물줄기로 완성된다. 이 강이 진주 대평을 거쳐 진양호에서 덕천강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덕천강의 발원은 지리산 즉 두류산(頭流山)이다. 두(頭)는 백두산을 뜻하고 류(流)는 흐른다는 뜻이다. ‘두류(頭流)’의 의미는 백두산(白頭山) 천지(天池)에서 형성된 천기(天氣)가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따라 흘러 이곳 두류산으로 흘러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천기(天氣)’가 흐른다는 것이다. ‘기(氣)’는 ‘만물의 생성, 성장, 소멸을 지배하는 원천적인 힘’을 뜻한다.
경호강의 발원지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덕유산(德裕山)이다. ‘덕유산(德裕山)’의 의미는 ‘덕을 넉넉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두 강물이 합쳐진 진주 남강은 기(氣)와 덕(德)의 기상(氣像)이 합쳐져 이루어진 강(江)이라고 할 수 있다.
천기(天氣)가 강하게 흐른다는 강, 덕천강(德川江) 상류 시천(矢川)에는 조선중기(朝鮮中期)의 위대(偉大)한 유현(儒賢)이며 뛰어난 실천(實踐) 도학자(道學者)였던 남명선생(南冥先生)이 만년(晩年)에 강학(講學)했던 곳이다. 선생의 고고(孤高)하고 강의(剛毅)한 기상(氣象)은 여기에서 발원한 것으로 사료된다.
남명(南冥)의 학풍(學風)은 최영경(崔永慶), 정인홍(鄭仁弘), 정구(鄭逑), 김우옹(金宇옹) 등 발군(拔群)의 여러 제자(弟子)들을 통해 전승(傳承)되었다.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때에는 곽재우(郭再祐) 김면(金沔) 정인홍(鄭仁弘)등 경상우도의병(慶尙右道義兵)의 주축(主軸)이었는데 이 문하(門下)에서 군기(群起)하여 국난극복(國難克服)에 크나큰 공덕(功德)을 세운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천기(天氣)의 발로였을 것이다.
덕(德)이 넉넉하다는 경호강 상류의 인물은 사림학파(士林學派)의 거두였던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선생이 있다.
조선 전기 사림파(士林派)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훈구파(勳舊派)가 일으킨 사화(士禍)로 희생된 인물이다.
일두 선생은 일찍이 지리산에 들어가 5경(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했다. 1490년(성종 21) 효행과 학식으로 천거(薦擧)되어 소격서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예문관검열·세자시강원설서·안음현감 등을 역임했다.
그는 유학적인 이상사회, 즉 인정(仁政)이 보편화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자(治者)의 도덕적 의지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주자학적 세계관을 우주론적으로 해명하는 이기론과 함께 개인의 도덕성 확립을 위한 심성론(心性論)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던 성리학자였다.
덕천강이 덕산을 지날 때 시천(矢川)이라 한다. 시천(矢川)은 물이 화살처럼 빠름을 나타낸다. 그래서 래프팅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은 반면, 경호강은 그에 비해 유속(流速) 조금 느리다. 래프팅 장소로 적합한 곳이다. 덕유산(德裕山)의 넉넉한 은덕을 입은 것이겠지?
남강이 흐르는 진주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기(氣)와 덕(德)이 응결(凝結)된 지역이다. 그 음덕에 힘입어 많은 충신과 선비를 배출했다. 그래서 옛날부터 ‘삼남 인재 반 진양’이라 했던 것이다.
개천예술제와 병행해서 열리는 남강 유등축제는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최우수 축제다. 진주성과 촉석루를 배경삼아 남강 위를 수놓은 다양한 유등에서 내 뿜는 물과 빛과 형의 조화는 가히 예술이다. 그것도 남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주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흘러가는 남강은 진주시민에게 있어서는 생명 줄과 같은 강이다. 그 강의 원류(源流)와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남강을 보면 더욱 애착을 갖게 되리라 여겨진다.
첫댓글 모든생이 계획적이고 치밀한 계획아래 행동해온 친구가 무한히 존경스럽네
가족관계는 수평적이고 사랑과 대화로, 교사로서는 계획적인 교육관으로 제자들의 진로까지 생각하는 참스승
부모님께는 효를 형제에게는 우애가 돈독하고 벗에게는 진실을 실천하는 우리 벗님이 내게는 존경스런 스승같아 보여
성인군자에 근접한것 같아...
등재된 글 늦게나마 아주 감명 깊게 읽것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