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 star의 유래
최근 가장 빈번한 뉴스는 론스타와 우리 정부와의 소송건에 대한 판결 뉴스이군요.
1824년, 치열한 독립투쟁 끝에 스페인 통치로부터 벗어난 신생 독립국 멕시코. 독립 당시 멕시코의 북부 영토는 지금의 텍사스, 네바다, 유타, 캘리포니아州를 포함하는 광대한 영역이었다.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해서는 거주자들이 정착해야만 했는데, 신생 독립국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정착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것이 화근이었다.
텍사스는 아주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지만, 비어 있는 땅이었다.
멕시코는 미국 사람들이 텍사스에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1822년 스테판 오스틴(텍사스주의 주도인 오스틴은 이 사람을 기리기 위해 명명됐다) 이 처음으로 텍사스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식민지의 각 가정은 80헥타르 씩의 대지를 소유할 수 있었고, 목장을 원하면 2천 헥타르 씩의 대지를 분배받았다.
텍사스 거주자들은 거의 공짜로 대지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로마 카톨릭을 믿어야 했고, 멕시코 법을 따른다는 조건을 지켜야 했다.
미국인들은 적은 돈으로 넓은 토지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텍사스로 이주했다.
텍사스 지역 거주자들은 대부분 남부 테네시나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노예를 가지고 있었고, 그 노예들을 텍사스로 데리고 왔다.
미국인들은 땅 값이 싼 텍사스에 많은 투자를 했다.
첫 이주 때엔 3백여 가족이었지만, 1830년엔 텍사스 목화 재배지에 미국 백인 2만명 , 노예 2천명 이상이 살게 되었다.
곧 텍사스 내에서 미국인의 수는 멕시코인의 수를 앞질렀다.
1834년 오스틴은 멕시코 당국에 텍사스를 멕시코에서 분리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체포되어 구금 당했다.
멕시코를 재 정복하려는 스페인의 시도(1829년)를 잘 막아낸 바 있는 멕시코 대통령 산타 안나(Santa Anna)
는 텍사스를 포함한 멕시코 전체 영토를 포괄하는 헌법을 공포했다.
그러나 텍사스의 미국인들은 멕시코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하고, 1836년 3월 1일 텍사스는 ‘자유롭고 독립된’ 공화국이라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산타 안나는 6천 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텍사스의 미국인들을 응징하러 나섰다.
3천명의 멕시코 병력이 산 안토니오로 접근하고 있을 때, 알라모(Alamo)에는 미국인 187명이 계속 저항하고 있었다. 독립을 부추겼던 미국은 지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이게 '홀로 외롭게 싸운 별(Lone star)'의 유래다.
미국 수비병들은 알라모 성당의 담을 등지고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이 소수의 병력은 산타 안나 대군을 맞아 열흘을 버티며 멕시코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혔지만, 미국 병사들의 시체는 모두 기름에 적셔서 불태워졌고, 흑인 노예 한 명,15개월 된 신생아 한 명,병사의 아내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몰살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전투는 멕시코 입장에서는 크나 큰 실수였다. 6천명의 멕시코군 주력이 13일동안 알라모 요새의 미국인들과 싸우고 있을 때, 텍사스 독립국의 지도자 샘 휴스톤은 2천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텍사스 미국인들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텍사스 독립운동에 참여하면 승리 후 텍사스 땅을 나누어 주겠다”고 선전공세를 폈고, 이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미국인들이 몰려 들었다.
수적으로 크게 밀리는 텍사스군은 “알라모를 기억하라!"는 전쟁 구호를 외치며 낮잠을 즐기고 있던 멕시코군을 급습했다.
18분간의 전투 끝에 멕시코군은 수백명이 사망한 반면 텍사스군의 사망자는 9명에 불과했다.
멕시코군 수백명이 포로가 되었는데, 이 중엔 대통령 산타 안나도 있었다.
살아남은 멕시코군은 리오그란데 강 너머로 퇴각했다.
텍사스군 사령관 Sam Houston(미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고 텍사스에서 가장 큰 도시인 휴스톤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됐다)은 안나에게 텍사스의 독립을 약속하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휴스턴은 이 제안을 받아들인 산타 안나(멕시코 대통령)를 워싱턴으로 보냈고,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텍사스 독립을 약속 받은 후 그를 멕시코로 돌아가게 했다.
5월 14일 체결된 Velasco조약으로 이제 텍사스는 독립 공화국이 되었다.
텍사스인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헌법을 제정하고, 휴스턴을 새로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독립 직후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에 병합을 신청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텍사스의 미국인들은 텍사스를 미국에 합병시키기를 바랬지만, 멕시코는 독립은 허락하되 미국에 텍사스가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였다.
국제적으로 모양새가 애매해진 텍사스는 어영부영 9년을 존속하며 5명의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동안 유럽 각국에서도 실질적인 국가로 승인을 하였다.
1836년 독립 후 1845년까지 독립국가로 존재하던 텍사스는 1846년 기어코 미국의회의 승인을 받아 미국의 28번째 주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