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크랙판’의 시대, 게이머 소비 습관이 바뀌었다.
스팀 등 게임 유통 플랫폼 이용 문화 확산...불법판은 번거롭고 위험해 ‘외면’
게임 콘텐츠 이용량은 늘었는데 불법복제물 이용은 줄어 게이머의 저작권 인식이 개선되고 과거에 비해 정품을 더욱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올해 1월 발간한 <저작권 보호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음악, 영화, 방송, 출판, 게임, 웹툰을 합한 불법복제물 이용률은 20.5%에서 19.1%까지 조금씩 감소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게임은 2019년 24.8%에서 2024년 2.3% 감소한 22.5%의 불법복제물 이용률을 보이며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기관의 <2024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게임 콘텐츠 이용량은 2020년 48,324개로 조사된 후 2024년 61,096개가 되며 무려 26.4%가 상승해 이러한 상승률과 대비했을 때 불법복제 이용률의 감소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게임의 불법복제물 이용률.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
(출처 = 한국저작권보호원)
이러한 통계에 대해 한국저작권보호원은 국민들의 저작권 보호 인식 수준의 개선이 불법복제물 이용률의 감소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저작권 보호 인식 수준은 2020년 3.12점을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4년 3.24점을 기록했다.
게임 불법복제물 이용량의 감소는 앞서 언급한대로 사람들의 저작권 인식이 개선돼서가 있다. 하지만 불법 복제 게임의 이용량이 감소하고 정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인식 개선뿐만이 아닌 게임 소비의 행동 문화가 변화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모(25)씨는 과거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등 콘솔 게임의 불법복제 버전을 즐겼지만, 지금은 정품만 이용한다. 그는 “불법판은 다른 사람과 게임 상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싱글플레이만 가능하고 일부 기능이 제한돼 불편하다”며 “스팀은 세일이 잦아 기다렸다가 구매하기도 하고, 값을 지불하는 게 창작자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법판 게임은 현재의 정품 시장에 비해 너무 번거롭고 제한되는 것이 많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었다.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마인크래프트 등의 게임에서 불법복제 버전을 즐겼던 양모(22)씨 또한 이씨의 답변에 공감하며 “요즘은 스팀과 같은 게임 유통망이 잘 구축돼있고 세일 행사를 워낙 많이 하다 보니 불법판의 메리트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씨와 양씨 모두 불법판 게임은 스팀과 같은 게임 판매 플랫폼의 유행으로 과거에 비해 그 메리트가 크게 떨어졌으며,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도 없어 지양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불법판의 번거로움이 게이머들의 소비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팀은 미국의 비디오 게임 개발사인 밸브 코퍼레이션이 개발하고 운영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유통망이다. 게임 시장 분석 서비스인 스팀DB에 따르면, 스팀은 2025년 최대 동시 접속자 수 4,000만 명을 돌파했으며, 18,588개의 게임이 지난해 스팀을 통해 출시되었다. 2023년 14,129개의 게임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전자게임 유통망 스팀의 최다 동시 접속자 수 통계. 2025년 4,100만 명을 돌파했다.
(출처 = 스팀)
스팀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통계를 통해 일정 부분 체감된다. 스팀에서 제공하는 세계 다운로드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 스팀 트래픽 비율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트래픽은 어떤 네트워크를 통해 일정 시간 동안 전송되는 데이터의 양을 뜻한다. 미국의 게임 전문지인 GameDiscoverCo는 이러한 통계 결과에 따라 한국은 일본과 같은 양의 데이터를 사용하며 세계 9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트래픽 순위는 전체적인 데이터 양에 대한 지표를 보여줄 뿐, 정확한 실제 이용자 수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구를 생각했을 때, 한국은 타 국가에 비해 많은 이용자가 스팀과 같은 플랫폼을 사용해 정품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게임 유통 플랫폼을 점점 더 많이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양씨는 편리함, 제작자에 대한 존중 외에도 새로운 의견을 냈다. 양씨는 “과거에 비해 요즘 불법 다운로드는 바이러스와 같은 문제가 워낙 심각해서 두렵다”며 “랜섬웨어 같은 바이러스는 과거의 바이러스보다 훨씬 치명적이기에 위험한 공짜보다 안전한 싼값을 더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인터넷 보안업체 카스퍼스키(Kaspersky)에 따르면, 2024년 4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마인크래프트나 GTA 등 인기 게임으로 위장한 악성 파일을 사용자가 무심코 다운로드하려 한 시도가 전 세계적으로 약 1,900만 건에 달했다.
과거엔 불법 게임이 일종의 ‘이익’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게이머들 스스로가 불편함과 위험을 피하며 합법을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위험한 공짜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싼값을 선택한 이들의 선택은 결국 창작자의 결과물을 존중하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