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트러지게 피어나고
연분홍 얼굴로 수줍게 노래하는데
갑자기 세찬 비바람 불고
꽃잎은 눈발이 되어 차갑게 떨어지던 때
구 년 전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캄캄한 바닷속으로 잠기는
객실 유리창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몸부림치던 청춘들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의 별이 되어
초롱초롱한 눈망울 반짝이고 있는지
진도 동거차도 인근
소나무의 이슬이 되어
눈물로 맺혀 있는지
세월호 가라앉은 바다 위는
봄 햇살에 윤슬만 무심하게 반짝입니다.
살았더라면
멋진 옷을 빼입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그대가
가수가 되어 티브이를 휘젓고 다니며
스타가 되어 있을 그대가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가서
삼겹살을 열심히 굽고 있을 그대가
단원고 단짝 친구를 치킨집에서 만나
맥주잔 부딪치며
수다를 떨었을 그대가 생각나
가슴이 장미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옵니다.
뻥 뚫린 하늘을 자꾸만 쳐다봅니다
“지금 배가 가라앉고 있으니
얼릉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서 나와 구명보트를 타세요”
안내방송만 했더라도
빤스 바람으로 황급히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이
살려 달라 살려 달라 울부짖는 자식 같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만 않았다면
해경 함정이 세월호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선원들만 태우고 떠나지 않았다면
꽃처럼 아름다운 생명들
더 살 수 있었는데
더 살 수 있었는데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과 민간선박이
촌각을 다투며 생존자 172명중
절반 이상을 구조할 때
해경과 해군은 무엇을 했나요
청와대에 현장 영상 찍어서 보내는 게
그리도 중요했나요
청와대 해경 해군 해양수산부
누구 하나 “내 책임이요”
나서지 않는 어두운 시대에
비열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7명의 의사자들을 보며
옷깃을 여밉니다.
“선원은 마지막에 나간다며”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건네고
마지막까지 구조활동을 했던
22살 박지영 승무원이여
“걱정하지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학생들을 구출했던 25살 최혜정 교사여
세 아이의 아빠이기에
앞이 10Cm 밖에 안보이는 깊은 바닷속을
목숨 걸고 들어가
25명의 시신을 수습했지만
잠수병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4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관홍 잠수사
세월호 청문회에서
당신은 피맺힌 목소리로 외쳤지요
“나는 당시 생각이 다 난다
잊을 수도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고위 공무원들은 왜 모르고 기억이 안나냐”
처음에 기레기 언론 방송은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내서
유가족들을 희망고문 했는데
죽어서 돌아온 299명의 희생자들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몸에 생채기가 나서
사랑했던 가족 품에 안겼고
미수습자 5명은
아직도 캄캄한 바닷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지요
가족들은 지워지지 않는 파랑 멍을
가슴에 안고
절벽에 손 하나 걸치고
힘겹게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은
진도 앞바다에서
인양되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진실을 밝히는 첫걸음은
잊지 않는 것
기억 하는 것
물망초 한 송이
눈 감지 못하고 죽어간
304명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엎드려 바칩니다.
*물망초 꽃말 :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 개화시기: 5~6월
첫댓글 오늘이 세월호 9주년이네요
추모시 썼을때가 4주기였는데
참 슬픈입니다
어린 꽃들이
시는 너무 기네요 아무리 길어도 짧겠지만요
낭송시라 길게 좀 길게 썻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