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무려 707마력 SUV, 애스턴 마틴 DBX 707
안진욱입력 2022. 11. 1. 10:16
그 어떤 차보다 강한 파워 유닛을 품고 있다. 이는 그리 놀랍지 않다. 그 괴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세팅한 실력이 감탄이다.
707마력이다. 그것도 SUV에 707마력이다. 슈퍼카에서 볼 법한 수치를 품고 있는 애스턴마틴의 SUV DBX다. 정확한 모델명은 DBX707. 충분히 자랑할 만한 파워이기에 모델명 옆에 당당히 707을 붙였다. 기존 DBX 엔진의 출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여러 하드웨어를 바꿨다. ECU 조율을 통해 깔끔하게 700마력으로 완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애스턴마틴과 뗄 수 없는 007 코드 때문에 끝자리를 7로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편 경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람보르기니 우루스 퍼포만테도 700마력이 넘지 않는다. 카이엔 최종 병기인 터보 GT 모델 역시 600마력대다. 출력만 놓고 보면 지금 출시되고 있는 슈퍼 SUV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난 이런 장르에 회의적인지라 타기 전부터 의구심이 든다. 과연 이 정도 출력이 SUV에 필요할까? 이 정도까지 출력을 올리는 것도 힘들지만 그 출력을 아마추어 드라이버가 손쉽게 사용하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진짜 아마추어 드라이버인 내가 한 번 타봤다.
몰기 전에 간단하게 차를 둘러보자. 애스턴마틴 특유의 디자인 언어가 잘 스며 들어있다. 우아하면서 스포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특히 측면 실루엣은 SUV라 보기 힘들 정도로 라인이 유려하다. 차체 색상은 푸른빛이 감도는 밝은 회색이다.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 되는데 정말 예쁘다. 왠지 페인트 코드가 복잡하고 비싸 보인다. 초고성능 모델의 표식을 찾는 재미도 있다. 카본 파이버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작은 기능성 파츠의 디자인을 공격적으로 완성했다. 우선 후드에는 에어덕트가 뚫려 있는데 여기에 핀까지 달아 공격적인 이미지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확실히 노멀 DBX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리어 스포일러도 근사하며 디퓨저도 레이스카에서 볼 법한 디자인이다. 머플러 커터도 대포만 한 사이즈로 이 차의 성능을 따라오는 차들에게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두툼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애스턴마틴 특유의 가죽 향이 코끝으로 전해진다. 인테리어 레이아웃이 화려하진 않지만 최고급 가죽으로 모든 트림을 감싸 호사스럽다. 플라스틱을 찾기 힘들 정도로 럭셔리 그 자체다. 시트는 쿠션감이 좋고 사이드 볼스터도 적당히 튀어나와 코너에서 운전자를 잘 잡아준다. 헤드레스트에 애스턴마틴 로고가 수놓아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SNS에 자랑하는 사진 중에서 이 로고를 배경으로 한 사진은 거의 없다. 이것만으로도 게임은 이미 끝났다. 2열로 넘어가서 앉아 보자. 뒷좌석도 예상과 달리(?) 만족스럽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앉아도 레그룸과 헤드룸이 넉넉하다. 등받이 각도도 적당히 누워 있어 장거리 이동에도 편안하다.
비가 온다. 많이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도로가 촉촉이 젖고 있다. 와이퍼가 양쪽으로 벌리는 타입이라 신선하다. 이런 것만 봐도 내가 특별한 차를 타고 있다고 느껴진다. 초광폭 퍼포먼스 타이어에 슈퍼 SUV니 조심조심하며 도로로 나가본다. 비싼 가격표까지 달고 있는 터라 정말 무섭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 차는 SUV다. 비나 눈이 온다고 지하 주차장에 박아 놓는 후륜구동 슈퍼카가 아니다. 분명히 언제나 탈 수 있는 차로 애스턴마틴이 잘 세팅해 놨을 것이다. 애스턴마틴의 이름값과 역사를 믿으니 살짝 안심이 된다. 출력이 높지만 드라이빙 모드를 GT에 두고 가속 페달에 발만 살짝 얹히고 다니면 그냥 럭셔리 SUV다. 고성능인지 모를 정도로 촐싹거리지 않고 안락하다. 타이어 편평비가 낮음에도 승차감도 좋다. 기본적으로 단단하게 세팅했지만 요철에 튀지 않는다.
강남 시내를 뚫고 막히는 올림픽대로를 지나 드디어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하늘이 도왔다. 비가 그쳤다. 이제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에 돌리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본다. 엔진 리스폰스와 변속 모두 반응이 빨라졌다. 가속력? 진짜 빠르다. 터보 엔진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물론 나보다 훨씬 예민한 이가 탄다면 약간의 터보 랙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터보 차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속도다. 순간적인 펀치력만 주고 풀이 죽는 그러한 터보 엔진이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8기통 엔진에 슈퍼차저를 단 미국 머슬카의 엔진 필링이다. 차이점은 후반 영역까지 지치지 않고 점령한다는 것! 스로틀 양에 박자를 맞추기조차 쉬워 차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탄력을 받았으니 스포츠 플러스에 놓고 달린다. 스포츠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댐퍼 감쇠력을 다 조이니 피칭과 롤링이 확실하게 억제된다. 변속기도 더욱 예민해지고 변속 속도가 빨라진다. 최고출력이 6000rpm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터보 차 중에서 고회전 엔진이라 볼 수 있다. 최대토크도 2600~4500rpm 즉 실사용 영역에서는 항상 최대토크를 쏟을 준비가 되어 있다. 최대토크가 무려 91.8kg·m다. 거의 100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토크다. 그렇기에 공차중량 2.3t이 넘는 차가 가볍고 사뿐하게 움직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3초다. 노멀 모델이 4.5초인 것을 감안하면 아예 다른 체급의 차라 할 수 있다. 최고시속은 310km에 달한다.
수치에 거짓은 없다. 시트 포지션이 높을 뿐 그 어떤 차도 이 녀석을 추월하기 어렵다. 고속안정감이 좋아 운전자가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가 노면으로 깔린다. 노멀 DBX도 고속안정감이 괜찮았는데 707은 그 이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풍절음도 잘 잡은 것도 인상적이다. 1열 사이드 윈도는 이중접합이다. 2열 윈도는 유리 하나지만 대신 엄청 두꺼워 엄청 조용하다. 슈퍼 SUV지만 최고급 차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귀가 편안한 가운데 스티어링 휠의 감도도 자연스럽게 무거워져 여유로운 고속 크루징을 즐길 수 있다. 워낙 힘이 넘치다 보니 고속으로 달리면서 속도를 줄였다 다시 가속하는 이 망나니 같은 짓을 계속하고 싶다. 이러면 안 되는지 알면서도 배기 사운드가 계속 자극한다. 사운드 역시 일반적인 터보 차와 결이 다르다. 먹먹한 톤이 아니며 부밍 음도 심하지 않다. 소리 역시 8기통 슈퍼차저 엔진과 흡사하다. 박력 있고 백프레셔는 폭력적이다.
앞서 말했듯이 차를 다루기 편하다. 코너링 맛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코너링 성향은 약간의 언더스티어를 보인다. 농도가 진하지 않고 진입 속도만 여유 있게 낮추고 코너를 진입하면 탈출 시기는 빨리 가져갈 수 있다. 만약 타이어 사이즈만 스퀘어로 세팅하면 완벽한 뉴트럴스티어 성향을 보일 것이다. 앞만 무거운 게 아니라 차가 전체적으로 고루 무거워 앞뒤 밸런스는 좋다. 스티어링 명령에 뒤가 잘 따라와 복합코너에서도 섀시가 꼬이지 않는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넘기는 리듬이 빠르진 않지만 자연스러워 대응하기 쉽다. 스티어링 피드백도 제법 솔직한 편이며 기어비는 적당히 촘촘하다.
이런 거대한 차로 와인딩 탈 때 무서운 것은 제동 때문이다. 아무리 브레이크 시스템이 좋아도 중력을 거스를 순 없으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신나게 달리는 것을 보면 브레이크 퍼포먼스가 준수하다고 할 수 있다. DBX707의 브레이크 시스템은 출력과 섀시를 채찍질하기에 충분하다. 브레이크스티어 혹은 노즈다이브 현상을 잘 잡았다.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앞은 6피스톤 뒤는 1피스톤 캘리퍼다. 앞은 모노블록 타입이고 뒤는 슬라이드 타입인데 뒤쪽 캘리퍼가 앞에 비해 비루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커버를 예쁘게 만들었다. 브레이크 페달 스트로크와 답력은 보통 차 수준이라 다루기 편하다.
짧았지만 진한 만남은 끝났다. DBX707을 타고 나니 애스턴마틴이 달리 보인다. 역사와 디자인으로 살아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브랜드지만 솔직히 그리 대단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애스턴마틴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내가 깊이 있게 알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애스턴마틴은 한정판으로 하이퍼카를 만들고 F1에 출전한다. 이는 애스턴마틴의 기술적 클래스를 알 수 있다. DBX707 파워트레인은 메르세데스에서 가져왔지만 전혀 다르게 세팅했고 그 결과물이 훨씬 훌륭하다. 엔진 회전 질감부터가 다르다. 또한 무겁고 무게중심이 높은 차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서스펜션 조율 실력도 최상급이다. 물론 대기업 산하에 있는 라이벌들과 편의장비의 완성도는 조금 떨어진다. 이 정도 약점은 이 차의 퍼포먼스와 디자인, 그리고 희소성으로 충분히 커버된다. 이러한 장르는 과시를 무시할 수 없기에 DBX707은 도산대로를 활보하기에 괜찮은 선택이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040×1995×1680mm | 휠베이스 3060mm
공차중량 2245kg |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 배기량 3982cc
최고출력 707ps | 최대토크 91.8kg·m | 변속기 9단 자동
구동방식 AWD | 0→시속 100km 3.3초 | 최고속력 시속 310km
연비 7.0km/ℓ | 가격 3억1700만원~
자동차 전문 잡지 <모터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