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리
아버지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외지外地로 자식을 보낼 수 없다는 할머니의 뜻대로 고향에 남았다고 했다. 농사꾼이 되었지만 일은 별채에 사는 막둥이 아저씨가 맡아 했고, 아버지 자리는 낮은 책상 앞이었다.
늦은 밤 운율에 맞춰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나는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뭔가에 마음이 쓰일 때 금강경을 붓글씨로 옮겨 적었다. 붓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날듯이 빠지면서 풍기는 진한 먹 냄새를 나는 좋아했다. 겨우내 고심하는 아버지 곁에서 막내 자격으로 내가 먹을 갈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아버지는 고향에 남았다. 그리고 어느 해 봄, 아버지는 막둥이 아저씨와 일꾼들을 시켜서 우리 포도밭을 갈아엎었다. 원두막이 일꾼들에 의해 부서져 잔해더미로 쌓여갔다. 나는 원두막 기둥을 붙잡고 “그냥 두라!”며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해 여름 포도밭에서 수박이 자랐다.
다음 해에 아버지는 ‘모종 하나 값만 해도 상당하다’는 알로에를 그 땅에 심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장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뿌리부터 썩었다. 그 후 오랫동안 부모님은 새벽까지 얘기를 나누셨다. 나는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귀를 쫑긋 세우고 애써 잠을 쫓으며 몸을 뒤척였다.
우리 식구는 서울로 이사를 왔다. 우리 밭이며 논이며 가축들과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이 다른 사람 것이 되었다는 걸, 어린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서울에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시도는 해보셨지만 뜻대로 안 풀렸을 것이다. 우리 식구는 삼사 년 동안 서너 번 이사를 했다.
천장이 낮아 장롱을 마루에 눕혀놓은 집에서도 엄마는 의연했다. 보잘것없는 밥상에도 아버지 밥그릇과 국그릇에 언제나 덮개를 올렸다. 우리 형제는 그게 공경의 표시라는 사실을 알았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버지가 먼저 수저 들기를 기다렸다. 더 못한 상황이었더라도 우리 앞에서 ‘당신 남편’을 탓하지 않으셨으리라.
엄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든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아버지께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다. 언니들은 그 뜻을 이해했는지 줄줄이 사춘기를 거치고도 별 일 없이 어른이 되었다.
내가 문제였다. 잘못도 없는데 빌 수는 없다며 끝까지 버텼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아버지가 우리에게 공자, 맹자 말씀을 설교하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자장가처럼 듣기 좋았던 책 읽는 소리에 귀를 막았고, 어릴 적에는 코를 대고 맡았던 먹물 냄새도 짜증났다. 아버지가 ‘달’이라고 말하면 ‘해’도 있다고 따져들며 어떻게든 아버지의 화를 돋우었다.
그때의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형편없는 상황에도 철옹성 같던 아버지의 자리를 흔들고 싶은 못난 자식의 자격지심이었을까? 아니면 ‘너울 쓴 거지’ 처지가 된 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길, 그리하여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리에 다시 앉아주기를 바라는 욕망의 다른 표현이었을까?
시간은 지나갔다. 달궈진 팬 위의 콩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던 내 감정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부모 자식’이라는 범주 안에서 가장 끝자리로 밀어냈다. 아버지와는 의례적인 말 외에 한두 마디도 더 나누지 않았다. 웃고 우는 내 모든 감정은 엄마를 향해서만 움직였다. 굴곡진 서울 생활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식구들을 감싸 안은 엄마였다. 그렇기에 측은한 마음이 앞섰고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매니큐어를 처음으로 사 온 날, 엄마의 발톱을 깎았다. 힘줄이 볼록하게 솟은 발등을 마주하고 앉아 엄마의 발톱 끝을 부드럽게 다듬은 다음 연분홍 매니큐어를 바랐다. 내 솜씨가 서툴러 붓이 발톱을 벗어나 그림을 그려도 엄마는 색이 참! 곱다며 좋아했다. 나는 등지고 앉은 아버지가 거기에 없는 것처럼 엄마한테만 다정하게 굴었다.
식구들에게 아프다는 말 한 번 없었는데 아버지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의사는 진단했다.
복수가 차기 시작한 건 집에 온 지 두 달도 안 된 뒤였다. 무슨 말이든 나누고 싶었지만, 첫말을 찾지 못해 매번 그만두고 말았다.
“오전에 이발사가 다녀갔단다.”
엄마의 얼굴이 수척했다. 아버지와 무슨 말이든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방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내가 들어오는 걸 아셨지만 스스로 몸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나는 그냥 앉았다. 조금 뒤 입안이 바싹 말라 겨우 끄집어낸 목소리로 아버지가 부탁하셨다.
“발톱 좀 깎아줄 수 있 수 있니? … 우리 막내가 손대면 … 반들반들해지더구나.”
따뜻한 물에 비쩍 마른 아버지 두 발을 담그고 발가락 사이를 닦았다. 스르르 허물이 벗겨졌다. 발등에서 발목에서…. 복받치는 감정을 눌러보려 했지만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아버지, 미안해요.”
“아냐, 아냐. 아버지가 미안해…. 고맙다.”
불안한 내 어린 영혼이 고향에 있는 원두막을 찾아간다. 아버지가 우비를 입고 포도밭 사이를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후두둑 후두두두둑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단숨에 뛰어와 비에 젖은 채로 내 곁에 걸터앉는다. 장대비를 맞고 튀어 오른 흙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달큼한 포도향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 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꿈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다.
첫댓글 조금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작품속의 아버지 같은 책상물림 가장들이 있었지요.
삶은 냉혹해서 그런 분들은 이겨내지 못했어요.
작가는 어린시절의 초심을 왜 잃었을까요.
회한의 글 잘 읽었습니다.
결미 부분에서 울컥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