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맛 캔디가 비닐 안에서 말간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비닐은 투명하지만, 엄연히 존재하기에 기밀氣密의 기능으로 청포도의 향도 사탕의 맛도 느낄 수는 없게 한다. 성급히 다가와서 주민등록증 대신 쥐여 주던 담당 주무관의 고운 눈이 겹친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을 대신하는 건 주민등록증이 아닌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같은 시한부 신분증이었다. 여권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 폐기되었다. 운전면허증도 적성검사를 받지 못해 곧 말소된다고 했다.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주민이지.’
코로나19의 창궐로 문밖출입조차 꺼려지는 상황이었지만, 마스크로 무장하고 주소지 발급기관을 찾았다. 분실신고도 재발급 신청도 당사자가 직접 와야 할 수 있단다. 돌아와서 정보를 검색하다가 인터넷으로도 신청이 가능하다는 글을 찾아냈다. 정부24 사이트에 접속한 후 병실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영상 전화를 걸었다. 자료를 주고받아 입력하며 분실신고와 재발급 신청 절차를 마쳤다. 접수 후 몇 달 같은 며칠을 견디고 주민등록증이 재발급되었으니 찾아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제 됐다 싶었다. 그러나 본인이 아니면 신청 접수가 불가하다던 주무관은 이번에도 본인이 아니라서 교부할 수 없단다. 잘 아시잖냐는 말이 너무나 차가웠다. 줄줄이 연결된 튜브와 산소통을 끌고 오란 말인가. 이미 발급된 남편의 주민등록증을 내어주지 않는 담당 공무원이 야속하기만 했다.
오미크론이라는 변이바이러스는 정점을 향해 확진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신청하면 대리 수령이 가능하다는 정보에 매달려 다시 발급 신청을 시도하기로 했다. 지문을 채취해야 하니, 입원 병원과 가까운 행정복지센터가 낫지 싶었다.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다. 다행히 젊은 주무관은 기꺼이 도와주겠다며 몇 가지 서류를 확인하고 이것저것 적더니 일주일쯤 후 연락이 갈 것이라 했다. 그사이 남편의 숨은 한 차례 리듬을 깨트렸다.
약속한 날짜가 되어도 소식이 없어 전화했더니, 담당 주무관이 오미크론에 감염되어서 닷새 후에나 업무 복귀가 가능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닷새를 다시 견디고, 그제야 출근한 주무관은 방호복 차림으로 남편의 병실로 들어가 재발급 신청 절차를 마무리 지어 주었다. 기다리는 나에게, 선생님은 건강하시다고, 지문 채취도 잘 마쳤다고 위로했지만 초조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능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고. 나는 남편에게 주민등록증이 필요한 줄로 알았다.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아 주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의무인 줄로만 알았다.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주민등록증은 영원한 그의 숨이었기에 그동안 허투루 보낸 시간이 안타깝기만 했다. 처음부터 ‘젊은 주무관’을 찾아 현장 접수를 했더라면, 코로나19가 그 직원을 덮치지만 않았다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상황은 점점 악화하였다. 남편의 산소포화도 수치는 미끄럼을 타고, 옥죄어 오는 정부의 방역 수칙으로 면회조차 할 수 없었다. 건물 밖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단편적인 근황만을 살폈다. 20여 일만 더 견디면 주민등록증이 나온다. 그러나 불규칙하게 잦아들던 남편의 숨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멎고 말았다.
며칠이 허둥지둥 가고 그런 와중에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미 기능을 상실했지만,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회수하는 게 원칙이란다. 못내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나를 세워두고, 상사인 듯한 직원에게 가서 자문하고 온 주무관은 더욱 단호하게 내어드릴 수 없다고 했다. 만져보기라도 하자는 체념의 소리가 울림을 일으켰다. 더는 소용이 없어진 남편의 주민등록증, 손 안에서 그가 도리질하며 반짝거렸다.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으로 담았다. 그러고는 남편을 그랬듯이 주민등록증을 돌려보내야 했다. 내 몸이 녹아내리는 듯 바로 설 수 없었다. 황급히 다가온 주무관이 음료 권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며 손에 무언가 쥐어졌다. 캔디 두 알이었다.
남편에게 주민등록증이 더는 필요 없을 거란 생각을 차마 하지 못했었다. 잠시 후의 일을 모른 채, 일 년을 신어도 모양이 변치 않고 실밥이 터지지 않는 가죽 장화를 주문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인물, 그 신사였다. 신사는 구두장이조차 처음 보는 최고의 가죽을 구해 왔지만, 장화를 주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서 떨어져 최고급 장화는커녕 아무 장화도 신을 수 없게 되었다. 나 역시 예후가 좋지 않다던 담당 의사의 서늘한 눈빛을 진즉에 읽었어야 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러기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힘겹게 버티던 그의 모습이 채찍으로 다가온다. 영상으로만 존재하는 주민등록증 대신 캔디 두 알의 실체를 본다. 비닐을 벗겨내고 입에 넣으면 새콤하고 달콤하려나.
[출처] 청포도 맛 캔디 두 알 / 김용순|작성자 장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