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
박경주
“저는 미국 사람이 되겠습니다.” 유치원 입학식 날, 장래 희망을 말하라니 작은애가 큰 소리로 말했다. 순간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자 남편은 미국을 가겠다고 온종일 토플 카세트를 틀며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나는 미제 거버 이유식에 거버 주스를 사 먹이며 애들을 길렀다. 미국 아이들처럼 키 크고 부강하게 자라나길 꿈꾸며, 미제 커피에 미제 치즈를 구하러 그 애를 데리고 신촌시장에도 자주 가곤했다. 평소 어미 된 자의 소행이 그 모양이었으니, 아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네가 어떻게 미국 사람이 된다는 말이냐.
미국 사람이 되겠다던 그 아들은 열아홉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삼십 중반이 되도록 고생만 했을 뿐, 해외 나들이 한 번 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직장에서 기회를 얻어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 후 2 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고 몇 해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해 초겨울, 이삿짐을 꾸리다 세탁기 위에 잔뜩 쌓인 비닐봉지 뭉치를 발견했다. 아들이 미국에 갈 때 짐을 싸갔던 그 비닐봉지들이었다. 동네 시장에서 구입한 비닐봉지. 아들은 기특하게도 출국할 때 가져갔던 그 봉지들을 버리지 않고 다시 짐을 싸서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들이 2년씩이나 보관했던 그 봉지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고스란히 세탁기 위 선반에 쌓아두지 않았나. 미국에 다녀온 검은 비닐봉지. 미국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미제가 되지 못한 꼬깃꼬깃한 비닐봉지들이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 초반. 고향이 전라도인 사람들의 서울 생활은 검은 비닐봉지 같았다. 고향 선배들은 서울에서는 전라도 사투리를 절대 쓰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 택시도 태워주지 않는다고 겁을 주었다. 서울역에 내리면 지게꾼이 다가와 삯을 흥정했고 택시 정류장까지 그 짐을 운반해 주었다. 그들도 대부분 서울말을 어눌하게 쓰는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긴 줄을 기다려 겨우 택시를 타면 집보다 신경 쓰였던 것이 내 전라도 말씨였다. 나는 서울말을 쓰려고 애썼다. 본적을 몰래 서울로 옮기는 고향 사람들도 있었다. 취직을 하려면 그편이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본적을 옮겨도 그 출신이 변할 리 없는데, 나는 전라도에서 도둑을 보지 못했지만 대학 친구들은 나에게 “전라도엔 도둑이 아주 많다며?”라고 묻곤 했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서울에서도 전라도 말씨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은 전라도 사투리를 나처럼 서울에서 많이 쓰는 사람도 없긴 없을 것이다. 굳이 고향을 감출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이지만,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학창 시절 오빠의 친구 P는 나를 자주 찾아왔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행색이 옹색한 샐러리맨이었다. 그는 나를 자주 찾아왔지만 계속 웃기만 했고, 나 역시 할 말이 없었다. 밋밋한 만남이 이어지다가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세월이 흘렀고, 그의 소식을 다시 들었을 때 그는 젊은 날의 초라했던 비닐봉지가 아니었다. 큰 기업의 대표로 나름 업계에서 성공 신화를 쓴 인물이 되어있었다. 젊어서도 참 성실했던 그는 아마도 하루하루를 자신의 봉지 안에 채워갔을 것이었다.
학창 시절 단짝이었던 난희는 전쟁 중 유복녀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나를 부러워했다고 자주 말했다. 난희는 간호학교로 진학해서 의사 남편을 만났다. 남편도 참 성실해서 행복하고 유복한 일생을 보내고 있다. 난희 역시 자신이 타고난 그 초라한 봉지에 수고와 노력의 땀방울을 하루하루 담아갔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그녀를 자주 부러워한다.
메기는 미꾸라지의 천적이다.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메기와 함께 수조에 넣어두면 그 미꾸라지는 메기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도망 다닌다. 그렇게 죽어라 헤엄 치다 보면 미꾸라지의 살집은 아주 탐스럽고 통통해진다고 한다. 고통과 긴장은 분명 성숙한 삶을 만들어 낸다.
고통이 머문 자리에는 상처가 남지만 성숙의 꽃은 그 자리에 피어나곤 한다. 살다 보면 초라한 순간이 참 많다.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고 근사한 봉지로 살아가고 싶지만, 젖은 것, 마른 것, 때로는 오물들까지도 담아내야 하는 게 삶이 아니겠는가.
아들이 근무하는 회사에는 내로라하는 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인재들이 많다. 그 가운데에는 금수저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내가 시카고 있을 때 일인데….”
“내가 영국에 있을 때는….”
“내가 스페인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동료들 틈 속에서 내 아들은 어떻게 안타까운 순간을 견디고 있을까. 뛰는 놈 위에는 늘 나는 놈이 있다고 위로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메기로 대하면 너도 언젠가 통통한 미꾸라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줄 것인가. 어딜 나왔든 어디를 갔다 왔든, 지금 같은 곳에서 일하는 같은 월급쟁이. 누군가를 제압하고 장악하기보다는 주어진 쓰레기마저도 담아낼 수 있는 비닐봉지의 아량을, 내 아들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비닐봉지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첫댓글 비닐봉지로 이런 근사한 수필 한 편이 나오는군요. 거기다 미꾸라지와 메기의 비유도 참 적절합니다. 동료들을 언젠가 통통한 미꾸라지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줄 메기로 연관시키는 것도 참 재미납니다. 갑자기 추어탕이 먹고 싶네요 ㅋㅋ
박경주선생님은 제가 카페지기 하기 전 카페를 운영하셨고 글도 잘 쓰시지요.
저도 검은 비닐봉지로 살던 시절이 있어서 특히 공감도가 높기에 옮겨왔어요.
추어탕 좋아하세요? ㅎㅎ
@이복희 좋아하죠. 안 먹은지 백년은 되는 거 같네요ㅎ
반가운 문우, 정겹게 전해온 비닐봉지. 정말 달게 읽어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