됫박 막걸리
- 김상아
그는 해방촌만 그렸다
등에는 막냇동생, 머리엔 광주리,
손에는 보따리를 든 어머니의 모습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고단을 지고 돌아오는
지게꾼 아버지의 남루한 작업복
“신문이요, 석간, 석간신문이요”를
밤늦도록 외치는 신문팔이 형의 목소리를 그렸다
그는 절망을 그리지 않았다
가끔은 변두리에 가서 ‘야매 똥퍼*’를 해도
월세가 밀리고 동생들 기성회비도 밀려도
아버지 제사 한 번 제대로 못 모시고
꼬부라진 어머니 약 한 첩 못 지어드려도
그의 그림엔 어두운 따스함이 숨어 있었다
그의 화실은 삼각지에 있었다
허름하여 세가 싼 곳이지만
가난이 벼슬인 그는 가장 퇴락한 공간을 얻어
테레핀 냄새로 수리를 했다.
유난히 불빛이 많은 밤이었다.
삼각지 로타리를 돌아가는 불빛들은
죄다 이태원 쪽으로, ‘문안에’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교회 성가대들이 찬송가로 얼은 하늘을 깨고 다니는
통금 해제된 그 밤에 우리는 주머니를 털어
‘라면땅’ 한 봉지와 막걸리 한 되를 받아와 마주 앉았다
▲ ‘라면땅’ 한 봉지와 막걸리 한 되를 받아와 마주 앉았다 (그림 유주연 작가)
“아껴 마셔라. 배갈 잔에 따라라”
배갈 잔이 아니라 소주병 뚜껑에 따랐어도
어차피 모자랄 술이었다
“우린 할 수 있지? 자, 이 수돗물이 술이다.”
우린 염력(念力)으로 술을 만들어 마셨다
‘취할라. 천천히 마셔라’는 농담이 아니었다
눈을 떠보니 술 주전자의 남은 수돗물은 얼고 있었고
빈 맥주병에 오줌을 누고 나니 몸이 문풍지처럼 떨려왔다
연탄은 떨어진 지 오래여서 난로가 사람 덕을 보고 있었고
마룻바닥으로 올라오는 찬바람은 선풍기 튼 듯했다
찌든 솜이불 한 장 뒤집어쓴 우리는
서로 불알을 만져주며 아침 햇살을 기다렸다
지금은 그도 서른 평 아파트에 살고
나도 산골에 누옥이나마 짓고 살지만
이제 우리는 물을 술로 만들지 못한다
* 야매 똥퍼 – 돈을 받고 몰래 분뇨를 처리하는 사람.
7, 80년대엔 시청보다 적은 돈을 받고 재래식 화장실 분뇨를
처리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첫댓글 제가 아는 작가도 물을 술처럼 마셨다고 해요. 젊은 시절 너무나 어려워서 술이라 생각하고 물을 마셨다네요. 신기하게 이게 또 취해진다는 거죠. 이제 물을 술로 만들지 못하지만 서른 평 아파트나 산골에 집을 짓고 살 정도로 살림이 펴져서 퍽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