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숲길] 원희룡 지사의 시조 신년사 /이우걸 한 중앙지에 원희룡 제주지사의 신년사가 실렸다. “어머니의 이름으로”라는 제하의 연시조로 발표 했는데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가 자신과 아울러 제주자치시에 세인의 관심이 쏠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우리민족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에 정성스레 자신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 시도가 참신하고 바람직하게 읽힌다. 아울러 젊은 정치가의 자기 갱신을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이 절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치인은 어떻게 보면 연예인과 같다. 인기가 없으면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시적 인기보다 원대한 비전과 통찰력 그리고 성실성을 보여주어서 국민들에게 믿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인기인과 달리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더 신중해야 한다. 시조는 그런 면에서 원지사가 선택하기에 좋은 장르였는지 모른다. 천여 년 꾸준히 불려온 우리 민족 고유의 노래인 동시에 절제와 조화의 미를 추구하는 완결형의 시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첫 발자국 기다리던 달처럼/누군가의 첫 발자국 기다리는 눈발처럼/아무도 못 가본 그길/을미년이 열렸습니다.” 첫 수는 이렇게 열었다. 신년에 알맞게 빚어낸 서장이다. 이어서 “눈보라가 혹독하면 매화향 더 진하듯/보십시오./이제 제주는 대한민국의 시작입니다./동북아 관문을 여는/시대의 합창입니다.//독새기도 둥그려야 빙애기된다 합니다./사람도 둥그려야 쓸메 난다 했습니다./자연과 문화의 가치도/키워야 보석입니다.”라는 두 수에는 본론격인 강한 메시지를 담았다. 지리적으로 중요한 제주 그리고 제주 문화와 자연의 가치를 키워야 한다는 점을 노래하고 있다. 달걀을 말하는 “독새기” 병아리를 말하는 “빙애기” 등 제주도 사투리까지 애교스럽게 활용해서 재미를 더했고 마지막 마무리로는 “그렇습니다./2015년 새해 새 아침에는/어머니 이름으로 이 땅의 꿈을 심읍시다./서로가 서로의 가슴에 새해를 선물합시다.”라고 노래했다. 이 속에는 성찰과 희망과 기원이 잘 담겨 있다. 신년사는 그 나름대로의 구성법이 있다. 또 그 구성법을 적절하게 응용했다하더라도 판에 박힌 기자회견이나 연설 등은 진부해질 가능성이 적지않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지도자의 진심을 표현하는 길이 있으면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시조는 그런 역할을 하는데 특히 그 의미가 있다. 선입감 없는 아름다운 한편의 서정시이기 때문에 잘 읽힌다. 어느 산문이 거역감 없이 이렇게 짧고도 긴 신년사를 독자의 가슴에 닿게 할 수 있었던가. 정갈한 서정시 한편을 읽고 난 뒤 우리는 정치지도자에게 시심은 반드시 필요한 자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를 화두에 놓으면 정치지도자의 조건으로 시심을 거론한 JP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정치적 낭인이 되어 배회하는 시간이 많았던 그가 한 말이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정치도 예술로 비유해서 낭만이 있어야겠다는 뜻이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시심을 낭만 때문에 정치지도자의 자격요건으로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시심이야말로 사물을 사랑하고 창의적으로 바라보고 관찰할 수 있는 여유와 발견의 눈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거론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정치지도자 중엔 작가나 시인도 있다.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 셍고르는 흑인주의를 전파하던 네그리튀드운동의 핵심 시인이었고 체코에서 민권운동을 벌려 공산독재를 무너뜨리고 뒤에 대통령이 된 하벨은 전 국민이 추앙하고 사랑하는 반체제 극작가였다. 그러나 그러한 발견의 눈이 반드시 문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에서도 그림이나 서예에서도 혹은 영화에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수상을 지낸 슈미트는 영국 로얄 필과 공연할 만큼의 수준을 가진 피아니스트였고 전 영국수상 히드는 파이프오르가니스트였으며 미국의 전 대통령 레이건은 영화배우출신이었다. 모든 정치지도자가 전문적인 예술가 출신이거나 예술적 재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고작 골프나 폭탄주 마시기에만 매달리는 사람보다는 격이 달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효과를 표로 연결하기 위해 기타 치며 노래하는 광고를 보내던 대통령후보도 있었고 가수나 혹은 영화배우 국회위원도 있었다. 지금 우리의 정치판에는 멋진 화제꺼리가 없다. 인구에 회자되는 명연설도 없고 임팩트 있는 조크도 없고 동업자로서의 끈질긴 의리도 없어 보인다. 서로 헐뜯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이렇게 메마른 정치풍토에서 바라보면 사람의 향기가 그립다. 그래서 숨 쉬고 사는 사람의 향기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아니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시급하다. 동면에서 깨어난 잠룡이거나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정치지도자들에게는 특별한 이슈가 없는 시대에 자신을 부각시키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시조 신년사는 그 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
첫댓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