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갖춘 꽃
채마밭 지면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푸르게 살고 간 그들의 생활사가 낱낱이 적혀있다. 제 이름껏 꽃을 피우고 산문産門을 여는 날이면, 푸르거나 노랗거나 붉은 비린내가 진동하였다. 뒤미처 봉긋한 핏덩이가 얼굴을 내밀고 대지는 언제나 처음인 양 희열에 빠졌다. 올봄 곳간을 열고 비어있는 지면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물외는 해마다 심는데 바닥에 뿌리만 간신히 내린다. 엉덩이 붙일 바닥도 여력도 없어서 지지대에 덩굴을 감고 오른다. 허공이 제 삶의 영역인 양 맴돌며, 흔들리며 꽃을 피운다.
꽃은 꽃에 그치지 않는다. 꽃 너머 세계를 추구하기에. 꽃 이전은 무엇이었으며 가려는 낙토는 어디에 있는지 뿌리내리고 열매 맺으며 알아간다. 단지 꽃이나 오직 꽃인 존재, 발악하듯 살아도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건 못 갖춘 꽃이다.
나의 별명은 맹꽁이였다. 두 오빠는 순둥순둥한 아홉 살을 맹꽁이라 부르고 언니는 맹추라 놀리며 무척 재미있어했다. 바락바락 대들었으면 그만두었을 텐데, 고개를 박고 우는 것이 전부였다. 세 사람은 내가 시집가는 날 저 물컹한 여자 어쩌느냐고 걱정이 많았다. 아무래도 내 속은 맹물만 들어찬 것 같다. 사람의 말부리에 걸려 자주 넘어지고 별일 아닌 일에도 눈물 터지는 습성 버리지 못하였다. 맹꽁이, 맹탕, 맹물, 맹추는 이음동의어다. 그 말이 각인되었나, 어른이 되어도 맹탕이다.
내가 못 갖춘 것은 태생적이다. 안 갖춘 이유는 노력이 부족하여서다. 색깔을 입지 못한 맹물은 출렁거려도 그것이 저인 줄 모른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거꾸로 사는 사람처럼 나를 드러내지 못하였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 한 줌, 바람 한 줌에도 취하는 무녀리. 무수하게 일어나는 잡념까지 나의 구조는 그렇게 생겼다.
안 갖춘 꽃이기에 오기가 일어났다. 끝을 맺지 못한 학벌 갖추려고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다. 텅 빈 뱃심을 채우려고 마음공부를 하고 눌변을 고치려고 말법을 배우러 다녔다. 포기했던 문학도 무작정 발을 디밀었다. 안 갖춘 무엇을 찾아 줄기차게 돌아다녔다. 애써 갖춘 하나가 나인지, 안 갖춘 그것이 나인지 몰라 헛물켜는 동안 시간이 동나버렸다. 끝내 갖추지 못한 뱃심은 고루한 가풍에 밀려 채우지 못한 사랑 탓일까. 눌변은 나의 원죄인 듯, 어눌한 말 줄기에도 진정은 들어있다.
못 갖추면 고달프다. 삶이 그 큰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위협하였다. 남편의 몸에 암적 존재가 되어버린 장기를 떼어냈다. 쌀독에는 한 줌도 안 되는 쌀이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가장이 되어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월급을 압류하겠노라고 하얀 봉투가 날아들었다. 정다웠던 이들의 아우성이 오밤중에 들이닥쳤다. 빚진 죄인이 되어 고개 숙이는 남편을 향해 그들의 삿대질과 원망이 쏟아졌다. 뱃심이었을까. 나는 그만 울컥해서 그를 뒤로 밀고 나섰다.
허공이라면 바람도 흔들리거늘, 가시를 세우고 허공을 붙잡으면 거기도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다. 허방다리 짚은 날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뜨거운 물이 범벅이 된 채 오기를 부렸다. 낯선 언어와 눈빛들이 폐부를 찔렀다. 허공에서 구를지언정 햇살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노랗게, 샛노랗게 피어오르는 물외꽃이었다.
적자생존의 원리는 살아가면서 뼈아프게 깨닫는다. 구태여 필요하지 않은 요소는 버리고 변화를 시도한다. 잎을 도태시키거나 받침을 빼거나 다른 무엇을 덜어내는 식물의 진화성은 살아남기 위해서다. 또한 종족을 번식하려는 존재의 갈망과 발버둥일 터이다. 그만큼 에너지는 덜 소모할 테니 열매 빚는데 충실하였다. 그래, 물외꽃말이 변화, 존경, 애모라 하였다. 저 불완비화, 단순 요약한 꽃말로 저를 갖추려고 극염에도 살아남았다.
꽃은 온몸으로 해바라기하지만, 저마다 다른 색깔로 피어난다. 색깔의 비밀은 빛의 스펙트럼에 있다. 굴절과 파장에 따라 빚어지는 너만의 색깔, 나만의 색깔로 가치를 부여받는다. 내가 무슨 색깔로 피든 어떤 열매를 맺든 참으로 유의미한 일이다. 샛노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는 존재했건만, 열등감에 짓눌려 나를 보지 못하였다.
참꽃의 접두사 ‘참’은 진짜보다 으뜸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떼어버리면 가짜가 아니라 그냥 꽃이므로. 공히 필요한 것은 저를 무엇으로 갖추느냐가 아니라 마음 갖춤이겠다. 한데 눈앞에서 알랑거리는 저 번쩍번쩍 빛나는 것들, 나의 시선을 참 오래토록 붙들고 있다. 이제는 마음 접어야겠다. 우린 어찌해도 태생적 불완비화가 아닌가. 반기를 드는 이 속내는 무슨 뱃심이람. 누군가 무심히 지면을 넘기다 나의 생태기에 시선이 머물 때 하나쯤은 빛나도 좋지 않겠느냐고.
무녀리의 변을 옮겨 적는다. 갖춘 꽃의 구색은 방편에 불과하다. 못 갖추어도 열매는 훌륭하다. 나누고 층을 두는 것은 시선의 오류였다. 색깔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무채색에서 나와 색색이 물들었다가 다시 물이 되고 흙이 되지 않는가.
물외가 다닥다닥 달리더니 지지대가 휘청거린다. 저 태깔 고운 존재들의 꿋꿋한 향일성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 틈에 늙수그레한 물외하나, 잔뜩 익었으나 노랑도 빨강도 보라도 아닌 황갈색 물덩어리다. 그럴지언정 냉정하고 침착하고 태연자약하다는 물성에 빠져든다. 초록 물외 하나 따서 뚝 분지른다. 맹물 같은 세포들이 수르르 쏟아질 것 같은데 촘촘하게 엉기어 있다. 독성도 저항도 없이 스며오는 저 순둥순둥한 몸 내음. 아뿔싸! 이 맹물이 쌀알 같은 외씨를 뱄다. 한입 베어 물었더니 맑은 물이 입안 그득히 고인다.
의식 저 아래 담박한 샘 하나 뉘 아니 갖추었으랴. 맹탕, 맹탕 곱씹다 보니 너나없이 모두 맹탕으로 보인다. 몸 속 7할의 물을 거르면 무거운 색깔은 가라앉고 맹물만 위에 뜰 테니. 혹, 사람의 꽃말이 맹탕, 맹물이었나.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그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라. 그도 흐르기 전에는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순수 맹물이었음을 알게 될 테니. 서로 본색을 드러내면 어울려 벗이 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사람이려니.
문득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음에, 나의 애틋한 색깔에 목이 멘다. 돌아보니 나는 영원한 빚쟁이다. 지면 한 페이지 내준 대지와 나를 익힌 햇살과 미풍과 태풍, 새의 깃털과 나를 아는, 나를 모르는 모든 그들에게.
나에게 해 주지 못한 말 바람에 일러 보낸다. “사람아, 사람아! 애썼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