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맹유감(英盲有感)
전성옥
"우리는 지난 한 해를 '긴강'하게 잘 지냈습니다." 가이드북을 제작하러 온 업체 관계자가 웃으며 한 말이다. 이유인즉 지난해 가이드북의 표지에 '건강한 OOO!'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는데 그만 '긴강한'으로 잘못 찍혀 나왔다는 것이다. 디자인이 통과되자 다른 부분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작업을 한 우리나 교정을 본 업체 관계자나 내부의 잔잔한 내용만 눈이 빠지도록 살펴보았지 설마하니 대문짝만한 메인 카피가 틀릴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던 까닭이다.
얼마 뒤, 진행 중이던 또 다른 업체의 관계자가 씩씩거리며 전화를 해 왔다. 기관명에 '제일'이라는 다어가 들어가는데 영문표기를 'Jail'로 해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Jail이 감옥을 뜻하는데 그걸 몰랐냐고, 도대체 상식이 있냐 없냐 했다. 감옥이라면 생각나는 단어는 Prison뿐이다. 이나마도 한때 인기 있었던 탈옥소재 미드 덕분에 겨우 기억하건만…세상에 Jail도 감옥이란다. 살면서 형법을 위반해 본적 없는 '선량'한 사람이, 영문과 출신도 아닌 사람이, 그렇다고 법과 관계된 직종도 아니다 보니 영어 단어 하나까지 세세하게 알 턱이 없다. 그 관계자는 상식 없고 무식한 우리에게 철자를 바꾸라고 했다. 발음표기상으로는 'Jail'이 맞지만 의미상 문제가 있으니 A를 E로 바꾸던지 I를 Y로 바꾸란다.
의아한 일이다. 살면서 한글을 잘못 쓰면 오타를 내었구나, 혹은 실수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간다. 그런데 영어를 잘못 쓰면 그만 곧바로 무식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역으로 다른 무엇이 많이 부실해도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면 사람이 달라 보인다.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할 이유가 없다. 우선 나부터 그러하니까.
면피라고밖에 볼 수 없겠지만 나의 영어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중학교 들어가며 영어를 처음 접했는데 하필이면 후두에 이상이 있는 분이 선생님으로 오셨다. 목소리의 볼륨이 작은 데다 바람이 새는 듯 한 발성을 가진 그 선생님은 수업마다 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다니셨다. 휴대용이라고 하지만 기술적으로 소형화가 힘든 시절이라 검정색의 그 스피커는 라면상자보다도 더 컸다. 수업을 진행하다 마이크 줄을 옮기고 삑삑거리는 스피커를 조절하는 등 선생님의 부산한 행동은 집중력을 흐려놓았고 이내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더욱이 그즈음의 나는 한참 책에 빠져있었다. 중 · 고등학교가 같이 있던 학교 도서실은 천국이었다. 규모도 컸고, 없는 책이 없을 만큼 온갖 책이 다 있는 데다 대출까지 가능했다. 공부보다 책을 읽으러 학교에 갈 정도였다. 6교시 수업을 마치면 도서실의 내 지정석에서 사서선생님이 퇴근할 때까지 책을 읽다가 또 몇 권의 책을 빌려 집으로 오곤 했다. 나는 재미없는 영어수업보다 몰래 읽는 소설책을 선택했고, 마이크로 수업을 해야 했던 선생님은 그걸 다 알았지만 나를 제지할 의사도 여유도 없었다.
삼학년이 되었다. '앤드, 밧뜨, 오알, 포, 소!', 당시 오십 초반의 싱글이었던 3학년 영어 선생님은 아주 정직한 발음으로 선창을 했고 60여 명의 우리들은 큰소리로 따라해야 했다. 운을 맞추느라 손바닥까지 딱딱 두들겨가며, 이 선생님은 작고 땅딸막한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동그란 칼라가 달린 어두운색 투피스들만 줄곧 입어 패셔너블하게 다니시던 다른 여선생님들과 늘 비교가 되었다. 게다가 유독 짜증이 심해 우리가 붙인 별명이 '짠숙이'였다. 짠숙선생님은 무조건 외우라고 했다. 학기 초에는 교과서의 본문을 통째로 외우라고 했다.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한지 'Gate Street is Cleveland in Ohio……'로 시작하는 3학년 첫 과 'New blue dress'의 본문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무조건 외우는 영어수법이 절대 진리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상업고로 선택했다. 그와 동시에 영어는 사소한 과목이 되었다. 학교의 지상 목표는 주산, 부기, 타자였다. 그 셋은 천국문을 여는 황금열쇠라 칭송받았고, 나머지는 부가 과목 정도로 격하시켜도 문제될 것이 없다 했다. 뿐만 아니라 영어가 이토록이나 세상을 지배할 지 미래를 보는 안목이 당시에 나에게는 없었다. 세상이 바뀔 거란 비밀을 알려주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숫자머리를 타고나지 못한 나는 천국문을 여는 황금열쇠도 손에 쥐지 못한 채 세상으로 그냥 내던져졌다.
나는 점점 도태되고, 낙오되고, 영역을 박탈당했다. 그럼에도 좁디좁은 내 발밑을 지켜내느라 다른 무엇을 넘겨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저 한발 물러서면 되었고, 남이 먹는 그 열매를 먹지 않으면 되었으며 무엇보다 모르는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세월이 많이 지났다. 그리고… 느린 강물에 모래섬이 옮겨 가듯 지금의 나도 세상의 외곽으로 밀려나 있다. 물론 인생의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되어가는 상황이긴 하다. 영어 역시 당연히 그러하다. 아니 다른 무엇보다 그 거리가 더더욱 벌어졌다. 체급과 영역을 키운 영어는 앞을 향해 쾌속질수를 하고 있고, 나는 그 상대성만큼 더 뒤로 밀려나고 있다. 급기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상식 없는 자가 되고, 기어이는 무식의 감옥에 갇히고 마는… 이 딱한 처지까지 와 버린 것이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런데 극복할 방법이 묘연하다. 하지만 영어라는 것이 지금 다시 시도를 한다 하여 해결될 그런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시기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현명한 자가 달리 현명한 것이 아니다. 제 시간에 적합한 일, 그 일을 열심히 하는 자가 현명한 자다. 현실도 감당 못하면서 과거를 소급완료 하려는 것은 어리석음의 탈을 한 겹 더 쓰는 것이다. 이제는 옮겨진 모래섬에서 뙈기밭이나 열심히 가꿀 일이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절실해질 때가 있다. 이 나이에 와서 절실할 다른 이유는 없다. 삼시 세끼 밥 하는 일에 영어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번처럼 일을 하다 생기는 에피소드들은 그냥 웃고 넘기면 되는 ㅇ리이다. 이유는 딱 한 가지, 바로 여행이다. 물론 이 역시 영어를 못해도 가능한 일이다. 패키지에서 깃발만 보고 따라가도 되고, 혹 자유여행을 한다 해도 알고 있는 몇몇 단어에 손짓발짓을 보태면 어지간한 것은 해결된다 듣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천천히 찾아다니고, 안내문들을 꼼꼼히 읽어볼 수 있고, 식당에 앉아 차분히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여행, 그런 언어적 호사를 누리는, 말 그대로 '자유여행'이 간절한 것이다.
강물에 떠내려가며 나는 오늘도 궁금해 한다. 닿지 못할 곳에 있는 포도는 신 것이라며 마음을 단속하고 돌아선 여우의 지혜를 배워야 할지, 어여쁜 탱글함에 천상의 것인 듯한 향기까지 지닌 그 포도를 아직도 탐해야 할지 세상을 내려다보는 현자에게 물어보고픈 요즘이다.
첫댓글 저는 배움에 때가 없다고 봅니다.
매일 자기 전 다문 오분이라도 영어 공부를 하지만 회화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도 포기는 안 합니다. 한 번 더 시도해보는 것으로 도전한 만큼 그만큼 나아간다고 믿습니다.
달팽이 걸음이 느려보여도 제 할일을 하는 것처럼.
포도를 탐하면 욕심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포도를 딸 방법을 터득하겠지요. 끝내 포도를 손에 쥘수는 없어도 노력한 만큼의 수확은 분명 있을 겁니다.
제가 관심이 많은 분야의 내용이라 잘 읽었습니다. ^^
수필습작 시절, 인생 처음으로 춤을 배운 이야기를 글로 써서 냈습니다.
제목이 'Shall we dance?',
그런데 결정적 실수 'Shell we dance',
a를 e로 무식함을 드러내 선생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오타도 아니고 내 머릿속 오류를 확인도 해보지 않고 그대로 적은 탓이었지요..
그 후로 애매한 단어는 영어나 한글이나 일일이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특히 영어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