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1. 약 한 달 동안에 『교의와 교리사』를 살펴보았습니다. 한 하나님을 믿고 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사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믿음의 내용은 결코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큰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님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일도 있는 것을 봅니다. 과연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잠시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목숨을 바치면서도 자기가 믿는 바를 굳게 붙들고 포기하지 않는가를 보면서 진리는 진리가 증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2천 년의 긴 시간에 다양한 가르침들이 나타났지만 기본이 되는 믿음의 내용은 통일이 되어 받아들여졌고, 그 믿음이 교회를 세우고, 교회는 그 믿음을 전파해 오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도 신비하고, 기독교 신앙도 신비하기만 합니다.
2.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면서 먼저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신 거룩한 뜻을 가르쳐 주신 다음에, 그 큰 사랑을 잘 깨달은 자답게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주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도’ ‘하나’라는 것까지 강조하여 말해줍니다. 이런 사실을 알진대 어찌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권면을 가볍게 여기고, 다투며 분열하며 이름만 교회이고 실상은 교회의 적이 되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가르침을 기억해 봅니다.
제 55 문 ‘성도의 교통’이라는 말에서 당신은 무엇을 이해합니까?
답: 첫째, 모든 그리고 각각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와 교통하며, 그분의 모든 보화와 은덕들을 함께 나눕니다.[1]
둘째, 각 사람은 자신의 선물들을 다른 회원들의 유익과 안녕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2]
[1] 고전 롬 8:32; 6:17; 12:4-7, 12, 요일 13; 1:3.
[2] 고전 롬 12:4-8; 12:20-27; 빌 13:1-7; 2:4-8.
문 55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답 : 첫째, 모든 그리고 각각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의 모든 부유하심과 은사에 동참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자들입니다.
둘째, 각 성도는 주께서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이익과 복지를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사용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첫째 답변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신앙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결국 믿음의 대상이 동일해야 하고, 믿음의 대상에 대한 신앙이 동일해야만 서로의 신앙이 동일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첫 만남인데도 오래 사귀어온 사람들처럼 하나 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살펴보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믿고 있는 내용은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분명히 예배 시간의 설교나 성경 공부 시간의 요리문답을 함께 듣고 배웠는데도 받아들인 것은 자기 나름의 선입견과 경험에 의해 걸러진 것을 보면서 마음을 완전히 열어놓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적당히 맞춰 반응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정말 갈수록 모두가 선생이고, 선지자요, 심지어 주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4. 믿음이 하나가 되면 일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도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던 실라가 그렇고 아리스다고가 그렇습니다(골 4:10). 바울처럼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인해서 에바브라 역시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습니다(몬 1:23). 바나바의 생질 마가는 믿음이 같을 때는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했지만, 뭔가 문제가 생겨서 이탈했던 마가와 2차 선교여행을 함께할 수 없던 바울은 바나바와 다투기까지 하고, 바나바 대신에 실라와 선교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약 12년이 지난 후에 이 바나바의 생질 마가는 바울 사도와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마가복음’을 쓰는 큰일도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위하여 사람을 쓰시는 방법의 신비한 면을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믿음이 하나가 되어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골로새서(골 4:14)와 빌레몬서(24절)에서 문안하였던 바울의 동역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데마는 나이가 많은 바울이 쓴 디모데후서에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라고 말합니다. 당시 로마의 심한 박해 때문인지, 아니면 당시 마게도냐 지역의 제2의 수도로 번영과 명성이 있는 도시인 데살로니가를 좋아하여 떠났는지 잘 알지 못하겠지만 바울은 ‘이 세상을 사랑하여’가 떠난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이제는 바울의 믿음과 데마의 믿음이 같지 않아서 데마는 바울의 곁을 떠나 버리는 것을 봅니다.
5. 지난 30년이나 40년 동안에 한 교회를 이루고 한마음으로 교제하며 예배하던 분들이 불과 10여년 전부터 오늘에는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슬픈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간절한 기도를 잊어버린 탓일까요?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주님의 기도와 달리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보면 너무나 부끄러운 이유들이 대부분입니다. 지도자들의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가장 큰 이유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 되어 있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는지 끔찍합니다. “God”과 “Gold”는 “l”이라는 철자 하나가 차이인데 그것이 기독교와 세상 종교를 구분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he will be devote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평소에 강단에서 설교할 때는 참으로 경건하고 세상을 등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오직 ‘돈, 돈, 돈’을 추구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에서 교회를 비판하는 큰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종교적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모습도 많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5-28)”
최근에 부목사 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담임목사의 여러 ‘갑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신학교 교수가 되기 위하여 벌어지는 부끄러운 일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섬기는 자’라는 위치로 부름받은 분들이 처음 부름받은 시간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장차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을 기억하기를 소원합니다.
혹시 돈과 권력의 장애물에 얽매여서 자기는 물론 자기 교회까지 바로 서지 못하게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는 말씀을 귀하게 알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교인들이 그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와 교인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교인들 서로도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믿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여 교회를 떠나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사소한 문제는 다양성을 인정하며 서로를 용납하되, 근본적인 핵심 신앙에 대해서는 한마음으로 믿고 순종하며 교제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바울 사도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7-10)는 가르침을 바르게 깨닫고,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