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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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와 이상과 쥐스킨트. 그중 이상의 책에 대해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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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
백지상태에서 본문을 읽으면 상당히 난해하지만, 작품마다 뒷장에 적힌 권영민 교수의 끈질긴 해설을 읽어보면, 이상을 천재라 단언하게 된다. 슬픈 천재 이상. 일상의 생각을 천재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삶을 예술이라는 베일로 흥미롭게 둘러놓았다. 누구나 흥미로운 생각을 하지만, 혹은 그런 생각이 언뜻 스치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그저 사라지는 법이다. 예술은 표현에서 시작된다. 어떠한 형식으로든 표현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움이 생기지 않는다. 이상의 독창적인 자아 발현에 경의를 표하고, 이 책을 엮은 권영민 교수에게도 이상 못지않은 경의를 표한다.
이상의 문학이 경이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을 쓸 당시 이상의 나이이다. 각자 그 나이에 어떤 글을 썼는지 생각해본다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시대적 상황 때문일 수도 있는데, 이상이 살던 시대에는 자연적으로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의 정신이 조용한 들판을 유유히 거닐 때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어떤 정보를 얻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고,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수많은 메시지를 받는다. 그렇게 쉬운 만큼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된다. 수많은 정보는 정신없이, 사색 없는 취합으로 정형화된 틀을 갖게 된다. 싸구려 시대정신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디어를 통해 강요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최고의 행복이며, 최고의 삶이라고 세뇌당한다. 우리는 사방이 액정으로 가득한 이름 모를 방에 갇혀 똑똑한 바보가 되었다.
우리가 돈과 섹스와 권력에 몰두할 때 이상은 세상을 진중하고, 세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의 섬세한 감각기관을 통한 느낌은 작문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되게 했다. 그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방법으로 아름답게 발현했다. 그리고 그는 작은 신이 되었다. 그러나 너무 부러워하진 말라. 우리도 누구나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아를 발현하게 되면 작은 신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이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책이다. 자신의 독창적인 마음이 아닌 기득권의 이기적인 마음에 따라 사는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 안에 숨어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기탄없이 꺼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권영민 교수에게 참으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때론 너무 난해하여 비약되기도 하지만 그 끈질긴 노력은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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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필
4권 [수필]에 수록된 3부(部)는 우연한 일로 발견된 이상의 습작 노트를 정리한 것인데, 이상을 좋아하는 이연복이라는 학생이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친구의 백씨(伯氏)가 친지의 고서점에서 휴지로 얻어온 노트를 그 집에서 말 그대로 휴지로 사용되고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100면 정도의 노트 중 90면 정도는 이미 휴지로 사용되고, 남은 10면을 정리해서 실은 것이다. 아, 이 일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10면이라도 건진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상의 소중한 글이 90면이나 휴지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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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에 쓰러져 까마귀밥이 될지언정 이상에 살고 싶구나.
-동생 옥희에게 보내는 편지 中
첫댓글 산다는건 좋은겁니다.. 뭐가 어찌 되든 까마귀밥 이상이거든요.. 살아만 있으면.
그저 살기보단 이상에 살아야겠지... 요즘 자주 느낌...
추천버튼 꾹 누르고 싶다 잘읽었어요 나머지 전집 빨리 읽어야지 ㅎㅎ책장에 보이는 좀머씨 저도 짱짱 좋아해요 ~~
전집 어디꺼 샀어? 내가 산 건 안타깝게도 절판된 것 같던데.
@몽타베라 가람기획? ㅎㅎ
엄청 비싼 휴지 쓰셨네ㅠ / 카뮈는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 신화 봤는데 나머지는 어떰??
전락은 읽은 지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소설 내내 한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사람에게 떠들어. 내가 좋아하는 실험적인 소설이지. 은유가 가득해서 절반 이상이 해설이다. ㅎ 하지만 추천할만한 작품이야.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읽는 내내 '오... 카뮈...'를 읊조렸던 기억은 난다.
바흐 음악은 맨델스존 이 구조했는데, 김해경씨는ㅠ. 이상전집 더 탐나는 거 권영민이 새로 냈더라. 그런데 난 이미 사진 본 포함 이상전집만 세질 있어서 포기함. 중고 엄청 싸게 나오면 산다.
너도 이상을 참 좋아하나보구나. 새로 나온 거 찾아봐야 겠네. 좋은 정보 생유!
@몽타베라 뒤에 나온 것이 두질인데, 김주현 증보판 이상전집과, 언급한 권영민 판임. 권영민 판은 증보까지는 아니고 개정은 한듯한데, 표지만 바꾼것일지도. 하여튼 확인해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