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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애린이 서울. 입성했습니다.
편지 왔고 답 했습니다.
1994년 5월 7삭 동이로 어렵게 세상에 나온 딸이 드뎌 사회라는 정글로 나아가는 출발점에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요?
사부님이 말씀하신바
이 세상 온갖 꽃들을 피워내는 부드러운 흙이 되라고 할까요?
아니면 싸우고 부딪히고 타협하고 어찌됐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
결국은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느니라…….이리 할까요?
후자의 생을 견뎌보지 못했던 애비로서 수도 서울로 유학을 오는 딸에게
이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한다고 해야 하는지…….먹먹합니다.
사부님
애들 졸업식장엘 처음 가 보았습니다. 제 자식 할 것 없이 모두가 조각을 해놓은 것처럼
아름답고 예쁘고 무엇보다도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그들에게는 앞으로 닥쳐올 어떤 시련이나 고난도 단숨에 녹여 버릴만한 긍정적 힘이 태생부터 타고 나지 않았나.
착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게 옳은지? 어떤 게 그른지?를 판단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그 당돌함에 저으기 당황도 했습니다만…….
그들에게 졸업식이 슬프거나 아쉽거나 하는 것은 사치입니다.
그래
그리 해야 된다 하고 보았습니다.
사부님
내 삶은 너를 통해서만 가치가 있다.
내 꿈이 아니라 네 꿈이 이루어지는…….더불어 사는 삶이 가치가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부드러운 흙이 되어라
오랫동안 너는 모난 돌맹이었다.
온갖 색깔로 꽃들이 네 가슴에서 피어나게 하려거든.
한번만이라도. 시험 삼아서 흙이 되어 보아라!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을 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이렇게 아침 일찍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네.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 많이 고단하고, 피곤했는데도 잠을 자지 못했어.
이런 저런 생각, 이런 저런 것들 하면서 밤을 새버렸네. 헤헷.
오늘로 엄마 없이 지낸지 딱 삼일 째 되는 날이야. 그저께처럼 지하철에서 길을 잃었다거나, 텅 빈 기숙사 방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 가끔 울컥울컥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씩씩하게 잘 견뎌내고 있어. 엄마하고는 멀어진 대신 아빠하고 가까워 졌잖아. 이제 남도학숙에서 경희대 가는 건 일도 아니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길 한번 잃어버리고 나니까 이제 경희대에서 남도학숙 오는 것도 겁나지 않아.
남도학숙에서 만나게 된 룸메이트 언니는 경희대학교 무역학과 4학년이야. 성격도 굉장히 밝고, 친절해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고, 또 배울 점도 많아. 어제 밤에는 언니가 사귄 남자친구들에 대해서 말해줬어. 사실 조금 졸렸지만, 맞장구를 안쳐줄 순 없으니ㅋㅋ 언니는 현재에도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글쎄 타워펠리스에 살고 아우디 차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부자라는 거야. 짱이지? 자수성가한건 아니고 집안이 돈이 많은 것 같아.
크크크
아!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연세대학교 신방과 언니하고는 연락이 닿았어. 경희대 언론 13학번 동기들 중 한명이 그 언니를 소개시켜 준 거 있지! 내가 남도학숙 산다고 페이스 북에 올렸는데, 거기서 알게 됐어. 다행이 언니가 먼저 친구신청도 걸어주고, 담벼락에 글도 남겨줘서 몇 마디 말도 나눠봤어.
오늘은 새터(새내기배움터)에서 같은 조였던 친구 2명과 점심을 먹었어. 한명은 남자 아이고(김현수, 전주), 또 다른 친구는 여자야(박수진,울산). 조원이 열 명이었는데 ,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 이었어. 새터 끝나고도 입학식 전까지 가장 자주 연락했던 것 같아. 수진 이는 워낙 나와 비슷한 성격이고, 현수는 그냥 여자 아이 같아. 그래서 우리 셋이 모이면 말이 말끼리 충돌해서 이리저리 튕겨져 나가. 서로 할 말이 많아서 ㅋㅋㅋㅋ 둘 다 막내고, 내가 첫째이다
보니까 그나마 내가 제일 점잖은 편이랄까. ㅋㅋㅋㅋ조금 우습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사실 걱정 많이 했었거든.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도 무척 힘든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부담이 컸어. 두루두루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생겨서 참 다행이지 뭐. 그래서 오늘은 부모님 직업을 공개하기로 했는데, 현수 아버지는 내과의사시고, 어머니는 음악선생님 이셨는데 5년 전에 그만두시고 아버지 병원 사무장으로 일하신데. 그리고 수진이 아버지는 은행 부지점장, 어머니는 일반 회사원이시래. 나는 아빠는 화가고, 엄마는 미술 강사라고 말했지. 얘들이 뜨헉! 하더라. 괜히 으쓱해서 나중에 아빠 작업실에 데려간다고 말해버렸는데. 초대해 줄 거지??
저녁은 우리 조 조장이었던 남자 선배가 사줬어. 수진이랑 나랑. 현수는 자취방 짐 정리하러 먼저 갔거든. 경희대 맛집 지도를 나눠줬었는데 그중에서 골라 양식집을 갔어. 파스타랑 스테이크 시켜서 먹었는데 피자를 서비스로 주더라. 선배가 밥을 사면 후배는 돈을 나눠 딸기빙수를 산다. 이게 하나의 공식이라고 하셨거든. 그래서 수진이랑 돈 나눠서 딸기 빙수도 먹었지롱~ 나중에 아빠 회기 근처에 오면, 딸기 빙수집 데리고 갈게. 딸기가 정말 산처럼 쌓여 있다니깐. 그런데 아빠가 먹기에는 너무 달수도 있겠다. 새터 뒤풀이부터 해서 입학식 뒤풀이 까지 꽤 많은 맛집들을 다녀봤지만, 아빠가 나 경희대 면접 끝나고 사줬던 양고기 집이 제일 맛있는 거 같아! 크크크크
아빠, 서울은 참 시끄러운 것 같아. 노안 우리 집은 아주 작은 촌이었잖아. 그래서 밤이 되면 차라고 해봤자 밤늦게 목욕하고 돌아오는 우리 엄마 차 소리, 또 여름에는 개구리 소리, 겨울에는 바람소리, 아주 가끔 마을의 역을 통과하는 기차소리, 소 울음소리, 개 짓는 소리, 들 고양이가 우리 담장 넘어오는 소리 뭐 그런 것뿐이었잖아. 근데 서울은 너무나 달라. 서울의 밤은 차 경적소리, 음악소리, 불닭을 굽는 지글지글 소리,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 소리로 가득차 있으니까. 예를 들면, 아주 오랜만에 만난 벗에 대한 반가움이라던가, 밤을 새도 모자랄 이야기를 가득 남겨두고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이라던가, 대학생활의 낭만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던가, 술로만 달랠 수 있는 슬픔이나 절망, 뭐 좌절 같은 감정이라던가. 그런 많은 소리들 말이야. 언제나 항상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 시끄럽지만 시끄럽다고 느끼지 못하는 그런 소리들 말이야. 나는 오늘도 그런 소리들 틈에 낑겨서 회기역 까지 걸어왔겠지? 그런데 아빠, 회기역 앞 인도에서 수화로 대화를 하시는 아주머니 두 분을 봤어. 저녁을 안 드셨는지 길에 세워진 메뉴를 가리키시며 무언가 말하고 계시더라고. 너무 빤히 쳐다보기는 죄송해 슬쩍 지나치고, 몇 걸음 더 가서 내 귀를 두 손으로 막아봤거든? 근데 들리더라고. 그래서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서 맨 손으로 꾸욱 귀를 다시 눌러봐도 들리는 거 있지. 그 모든 소리들이 말이야.
내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안 들린다는 것을 경험해 보고 싶었을까?
아빠, 안 들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또 들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가 어떤 소리를 기억할 수 있고,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되는 하루였어. 우리 마을에서 들리던 개구리 소리나, 기차소리, 서울에서 음악소리나 자동차 경적소리, 또 엄마 아빠 목소리, 할머니 목소리 그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정말 고마운 거야. 그래서 아빠 목소리 빨리 들으려고 지하철 타자마자 전화 걸었지! 아마 두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거야. 그렇지?
오늘은 룸메이트 언니가 새벽에 보드 타러 스키장 가는 바람에 혼자 있었어. 이제 곧 언니 돌아오겠다. ㅋㅋㅋㅋ
아마 내가 일어나 있는 걸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내가 배게에 머리만 대면 잔다고 엄청 놀라워했었거든.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ㅋㅋㅋ 아빠, 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모든 구속이 다 사라질 줄 알았어. 근데 아닌 것 같아. 고등학교 보다 더한 구속이 있는 것 같아.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그런 구속. 그래서 고민이 더 많아진 것 같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기소개서에 쓰여지기 위한, 그래서 만들어진 내 꿈이 아니라 진짜 내 꿈을 찾아야 하니까. 그리고 그런 것보다도 나는 이 복잡한 서울 생활에 적응해야 하니까. 캬캬캬캬.
아빠! 오늘 강화도에 갈까?? 메일 보면 연락해줘!
아빠가 바쁘다면 친구랑 놀러가야지! 헤헷!^^
사랑합니다.
p.s 어저께 엄마아빠 20주년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엄마 생각 많이 했어? 돈 생각 말고??
사랑스런 딸 김애린에게
이제. ‘사랑하는 딸 애린’에서 ‘사랑스런 딸 애린’으로 바꾼다.
그 의미는 애린이 잘 알 것이다.
애린을 사랑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시대에는 식민지의 총칼과 전쟁이 있었고
애비의 시대에는 채 끝을 못 본 혁명과 피의 눈물이 있었지만
애린의 시대에는 즐거운 자본과 네트워크가 늘 있다.
즐겨라!
글 잘 받았고 감동적이었다.
애린의 기숙사생활이나 학교. 수도 서울입성 3일째 생활이 궁금하던 차에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들음’이라는 부분이 참 좋았다…….듣는 거다 .
기도 역시 말하는 게 아니라 들음이다. 끊임없이 ‘침묵’의 소리에 귀를 세워야 한다.
꼭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더라도 귀 열고. 나의(애린) 꿈이 아니라
너의(친구들) 꿈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해라.
명심해라 ‘겨울의 침묵’으로부터 '봄'이 오고 있다.
우선하여
1-감무공파의 정식파명은 "감무공 익경파"(김익경)할아버지로 부터 시작되며 별칭(별명)이 "4군파" 이다. 고로 감무공파와 4군파는 같은 파 이다. 우리는 김해를 본관으로 하는 김해 김가로서 아빠는 시조 김수로왕으로 부터 71세손이며 족보상으로는 중시조 감무공파(사군파) 21세손이다.
하여 누군가 ‘무슨 김가냐’고 물어 본다면 애린과 세형은 ‘김해 김가 감무공파 22세손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
김해김씨가 아니라 김해 김가라고 말해야 된다. 혹시 파가 어찌 되냐고 물어보면 감무공파 라고 하면 된다.
지금은 의미가 없다지만. 우륵선생 대 가락국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우리의 시조는 인간이 아니라 신화이다. ㅎㅎㅎ.
판타스틱하게 즐겨라.
김해 허 씨와 인천 이 씨는 우리와 한 족보이므로 남자친구를 사귈 때 각별히 참고하고.
안동김씨는 경계해라. ^**^ ㅎㅎㅎ.
2-아빠의 직업은 화가가 맞고 부연 설명을 하자면 ‘나랏일을 한다고 해라’.
3-이번 주 부터는 아빠 작업실이 봄맞이 준비로 정신이 없다. 조만간 아빠가 시간을 내서 서울로 가던지(양고기 때문에) 아님 김애린이 강화로 입성해라. 아빠가 연통 넣겠다.
4-학교 근처 술집' 밥집. 하나 챙겨라...잘 얻어 묵고. 긴급할 때 갈 수 있는. 어쩔수 없이 한 턱 쏘아야 될 때를 위해서.
조만간 학교 근처로 아빠가 간다. 가서 주인하고 이야기 하겠다. 돈 계산 걱정말아라. 아그들이 묵으면 얼마나 묵겄냐. 그 정도 능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5만원 이하).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이 처럼 그림자(이정재)가 있다는 걸 은연중 보여라.ㅋㅋㅋ
촌년이 서울 생활 하려면 가우다시가 필요 할 것이다.
4-메모지 챙기고 기록해라.
사랑스런 딸 애린.
엄마가 몹시 슬플것이다. 전화 잘해주고....
서서히 혈연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세상과 힘 있게 맛 짱을 트는 애린을 기대하며.
아빠가 큰 포옹을 보낸다.
2013. 3. 2일 흙날 아침에
몽피화실에서 애비가 쓰고 보낸다.
첫댓글 아... 좋다!! 멋진 몽피와 애린
새복 두시까지 잠 안자고 머하요
미인은 잠이 많아야 되요....해바라기 보세요
얼굴이 탱탱하잖쏘!
찐한 이 느낌!!
넘 좋당
내가 남도학숙 1긴데..
그라고 공부를 잘 했다고...
설마.
^**^
ㅋㅋ
내놓고 딸 자랑하시는 듯..
애비 노릇 지대로 하셨네요
애비 지대로 해야 될것 같은 마음이요. 현재는....
봄 나물...택배는 어찌 준비되고 계신지?
애린하고 묵을라고 하는디...
봄은 진작 보냇는디ㆍㆍ
배움터오면 뭐든 적당히 해결 됩니다~
형님 애린이가 저 페북 친구 입니다.
고맙고 감사하다...
좋은 글 많이 올려줘라
나는 아직 아날로그인지라 페북인지? 폐북인지?도 모른다.
부녀의 정이 오가는 편지를 참 오랜만에 봅니다. 슬기롭게 성숙해가는 애린이가 대견스럽고 옆에서 함께 자라는 애비애미가 고맙습니다 그려^^
八不出 부럽다. 애린이 본 느낌.... 혁명가의 기운이 느껴지던데.....
ㅋㅋㅋ 집사람과 연해할때
나의 20대 별명은 '몽피'가 아니라 '핵맹'이었수다...
마음은 푸근, 얼굴엔 웃음, 두 눈에 찰랑이는 물결
사랑스런 딸과 아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