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방영했던 MBC 제5공화국에서도
3화에 걸쳐 방영되었죠.
동영상제5공화국 - [E27] 큰손 장영자 ①MBC (2005-07-23 방송)www.youtube.com
△MBC 정치 드라마 제5공화국 27화
큰손 장영자 .
동영상제5공화국 - [E28] 큰손 장영자 ②MBC (2005-07-24 방송)www.youtube.com
△MBC 정치 드라마 제5공화국 28화
큰손 장영자 .
동영상제5공화국 - [E29] 큰손 장영자 ③MBC (2005-07-30 방송)www.youtube.com
△MBC 정치 드라마 29화
제5공화국 큰손 장영자.
워낙 이슈를 몰고다닌 희대의 사기꾼이라
(이제는 사기 중독병에 걸린 늙은 여자지만)
몇개나 드라마화 되었죠.
1995년 ~ 1996년 방영된 제4공화국에서는 김서라가,
2005년 방영 제5공화국에서는 이혜숙,
대한민국 정치비사에선 오지영이
연기.
1990년에 방영된 KBS
주말연속극 <야망의 세월>에서는
이휘향이 직접적으로 장영자라는
이름으로 출연하는 건 아니지만
장영자를 모델로 한 인물로
등장했다.
부동산업 및 사채업 쪽에서
큰손으로 활동하다가
1980년대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대규모 사기사건으로
잡혀들어간다는 내용으로 묘사.
1982년 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장영자가
인맥이 탄탄했죠.
■장영자 인맥.
먼저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인
이철희.
이 사람은 육군방첩대에 부대장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이며
정보 관련 업적이 대단했다.
대북 작전에도 어느 정도 개입했고,
김대중 납치사건을 비롯한
대규모 공안사건에도 많이 끼어들었다.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장영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언급된 장영자의 형부 이규광은,
전두환 마누라
당시 5공화국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의 숙부다.
또한 당시는 야당 지도자였으며
훗날 대통령이 된 김대중 대통령도
장영자의 사촌형부다.
왜냐하면 김대중의 첫 부인
차용애가 장영자에게는
고모의 딸,
즉 고종사촌 언니였다.
이건 약간 오해가 있는데
김대중과 장영자는
인척관계는 아니다.
차용애의 사망후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와 재혼했기
때문에 기존의
처가와의 인척관계는
소멸된다.
따라서 김대중과 장영자는
법적으로 완전 남남이다.
■이철희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1982년 당시 대통령 전두환의
인척이었던 장영자와 그의 남편
이철희가 일으킨 거액의 어음사기사건.
경과
1982년 5월 4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외국환관리법
위반혐의로 이철희·장영자
부부를 구속했다.
검찰은 이들이 명동 암달러시장과
캘리포니아에서 80만 달러를
모았다고 발표했다.
검찰 조사가 이루어질수록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사기행각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
규모임이 드러났다.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의 처제였던
장영자는,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와 함께
권력을 배경으로 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에 접근하였다.
부부는 이들 업체에게 조건이
좋은 자금조달을 제시하였고,
그 담보로 대여액의 2∼9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약속어음을
할인해 또 다른 회사에 빌려주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어음을 유통시키고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를 통해 이철희·장영자 부부는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7,111억 원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냈고,
총 6,404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조성하였음이
수사 결과 밝혀졌다.
결과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사건’이라 불린
이 사건으로 인해 구속된 사람은
은행장, 기업체 간부들을
포함해 30여 명에 이르렀고,
당시 철강업계 2위의 일신제강과
도급 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은
부도가 났다.
청와대 배후설이 나도는
가운데 집권 초기부터
정통성과 도덕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전두환 정권에
큰 오점을 남겼다.
재판 결과 이철희·장영자
부부에게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이 선고되었고,
10여 년 복역 이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대 사기사건 기록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이 깼지만요.
1982년 경제 규모로 보면 엄청
큰 사건입니다.
5공화국 신군부가 3공화국,
4공화국의 대표적 부정축재자로
지목한
10명의 부정축재액 총액이
853억원이었는데,
장영자 부부가 받아낸 어음
총액은 7,111억원이다.
지금 현재 시점에서도 7,111억원이면
대기업조차 쥐락펴락하는데,
저때는 이루 헤아리지도 못하는 거액이었다.
서민용으로 지은 개포동 주공아파트
18평짜리도 분양가가
600~700만원이었다.
지금의 환율로 따지면
대략 약 7조원 내외고
거기에 당시 GDP의 1.4%,
당시 한국정부 예산의 10%를 차지했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