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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새끼 보단 개새끼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한다. 만약 쥐가 고양이를
문다면 얼마나 큰 데미지를 줄수 있을지..또한 막다른 구석으로
몰린 그 자그마한 쥐가 과연 고양이를 물려는 어이 없고도, 무모하기까지 한 짓을 도모 할수 있을런지. 영필은 차라리 최후에 순간 고양이 앞에서 자위 행위라도 하며, 그리고 고양이를 향해 조소를 보내며 잡혀 먹히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건 막다른 골목에
다달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점점 무거운 삶의 짐들이 하나씩 올려지고 이젠 지푸라기 하나에라도 다리가 접힐수 있는 상태로 까지 와서 더이상 빠져 나갈 길도, 빠져 나가려고도 하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다.. 인생의 반 -아니 어쩌면 벌써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을지도 모를 그런 그의 인생에선 미래나 희망 따위는 젖비린네 나는 단어처럼 여겨졌다.
" 어디까지 왔을까.."
" 오늘이 며칠이지.."
" 내가 길을 나선지 얼마나 됐을까.."
아무런 목적지도 없고 꽁치 통조림 유통 기한처럼 정해진 시간도
없었던 그의 지금의 무료한 여행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왜 였는지.. 영필은 여행중 늘 땀에 젖은 몸과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늘아래 눕게 되면, 마치 허공속에 여행의 감독관이나 기록관이라도 있는 양 그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자기 꾀에 넘어간 자신이였다. 이제
영필에게 남은 건 고작 낡은 배낭과 색이 바랜 옷가지들 고물 소형차 그리고 약간의 은행 잔고가 다 일뿐 사람이건 동물이건 모든 생명력을 가진 실체들은 모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여행이 시작 된 때는 정확히 7개월 하고도 21일 전이였다. 그리고 정확히 1년전만 해도 그는 지극히 평범한 한 집안의 가장이자
한 기업의 일원이였고 1개월후 궁지에 몰린 쥐꼴이 되고 말았다.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를 지탱해줄 것은 어디에도 없었고 심지어 막다른곳에 있어야 할 작은 구멍 조차도 찾아볼수 없었다. 투자는 투자로써 끝나야 했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정말이지 역겨울 정도로 썩은 냄새를 풍긴다. 한계를 넘어선 영필은 마치 자기 자신과 가정을 그리고 인생을 걸고 일생 일대에 도박을
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패했고 모든 것을 도박의 댓가로 잃고
말았다. 비단 영필 뿐만은 아니였다. 그 해 겨울은 아이가 무심코
던진 얌체공 처럼 들쑥 날쑥한 주가 지수 때문에 영필뿐 아니라
많은 도박꾼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고 대개의 도박꾼들이 이런
막다른 궁지에 몰린 쥐처럼 만들었다. 그 막다른 벽을 뚫고 나온
쥐들은 많지 않았지만 영필은 용케 작은 구멍을 찾아 나오긴 했다. 하지만 그에게 남겨진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옷가지, 배낭
그리고 은행 잔고 뿐였다. 집도 아내도 자식도 모두 판돈으로 잃어버린 것이다. 먼저 시작한 것은 영필이였고 중간에 있었던 것도 영필이다. 그리고 결과도 영필의 몫이였고 변명할 기회조차,
여지조차 없었다. 영필은 한동안 마지막 실낱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였는지 여의도를 어슬렁거리는 부랑자가 되어 보기도 하였고 이런 그의 소식을 안타까워 하던 친구의 집 지하방에서 실어증세를 보이며 틀어박혀 있기도 했다. 그리고 정확히 7개월 하고도 21일전 그 지긋 지긋했던 고양이와의 싸움을 마감하고 자신의 인생과 그리고 도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개새끼가 되기로 맘 먹은것이다. 그때 그의 은행 잔고에는 정확히 칠백칠십이만오천이백원이 남아있었고 96년식 고물 프라이드
승용차. 그게 다였다. 충분히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만한 여력이
있었지만 그는 더이상 이런 냄새나는 고양이 굴에 신물이 날 정도 였다.
그늘 아래에서 잠시 잠들었던 영필은 땀이 마르면서 생기는 오한
때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의 얼굴 위에는 햇살 때문인지 눈부시게 강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던 청년이 마치 실신한 사람을 깨우듯 무슨말을 연신 퍼붓고 있다.
" 이봐요. 아저씨 정신차려요. 이봐요..."
" 누구시죠...여긴 어디죠..."
그늘 아래에서 잠시 잠들었던 영필은 땀이 마르면서 생기는 오한
때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의 얼굴 위에는 햇살 때문인지 눈부시게 강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던 청년이 마치 실신한 사람을 깨우듯 무슨 말을 연신 퍼붓고 있다.
" 이봐요. 아저씨 정신차려요. 이봐요..."
" 누구시죠...여긴 어디죠..."
" 어디긴 어디예여... 정신 차려여."
한참을 멍한 상태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듯한 그런 느낌 이였다. 아마도 영필을 깨운 이의 목소리가 아니였다면 그는 깊은
카오-자기 관념, 아니 어쩌면 죄의식일지도 모를 그런 잠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오히려 영필은 싸늘함을 느낄 정도였다. 영필이 그의 곁에 앉은 청년을 의식한 것은 아마도 이마에 맺힌 땀이 다 식을 정도의 바람이 불고 나서 였을것이다 . 청년은 한참을
영필의 곁에서 그의 행동 하나 하나를 물가의 어린이를 보듯 예의 주시하더니 안심이 되는 듯 나무 밑 한자리를 자신의 영역으로 차지하기 시작했다. 영필은 조금 전의 상황으로 인한 멋쩍음
이였는지 그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어쩌면 멋쩍음이라기 보다는 아직까지도 자기 망상 속에 있는 게 아닌지, 청년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허상 이였는지 구분이 안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영필의 생각이 깨어진 것은 그가 꺼낸 한마디 때문
이였다.
" 피곤 하셨는지 잠이 깊게 들었네요."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사이로 영필의 눈에 들어 온 것은 그의 하얀 이뿐 이였지만 그 하얀 이를 따라 미소를 접하게 되자 영필은
순식간에 자기의 생각을 비울 수 있었다.
" 예....(사이) 여행 중이신가 보죠.."
" 예"
청년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영필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청년의 모든 것을 알려 하던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알고 또 다른 질문을 하려 했지만 청년이 책을 꺼내드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 걸기를 포기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둘 사이에 침묵들은 바람들로 메워 졌고 그 덕에 둘 사이의 침묵은 더욱더 참을성 있게 전개되었다.
청년은 20대 중반의 180센치 정도의 키에 체격이 건장했고 록가수처럼 긴 건 아니였지만 약간은 긴 듯한 금발의 염색한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또한 영필과 같은 여행자 인 듯
보였고- 사실 그의 배낭뿐만 아니라 생김새로 보아서 전혀, 도대체 이런 촌구석에 살 것 같지 않는, 시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 그리고 금발로 염색한 머리 밑으로 보이는 검은머리가 얼마 동안이나 안식처와 떨어져 지냈는지
예상하게 끔 했다. 그는 잠시 더위를 피하기 위해 우연히 나무 밑을 찾은 것 같았다.
" 어느 쪽으로 가시죠. 어두워지기 전에 잠잘 곳이라도 찾아야 할텐데 .."
책을 배낭에 넣으며 그가 말했다.
" 어디로 가시는데요.."
" 글쎄요..아까 도로 표지판 보니까.. 저 위쪽으로 가면 경주라던데 거길 들릴까 하는데.."
나의 반문에 대한 그의 답이었다.
" 그럼 그리로 갑시다.. 저쪽 도로 가에 차를 세워 뒀는데... 같이
가도록 합시다.. 괜찮죠..."
" 저야 고맙죠.."
영필은 중학교 때 수학 여행을 제외하고는 경주에 가본 적이 없다. 회사를 다니며 가끔씩 부산이며 울산이며 출장을 내려오면서
가끔 경주쪽 톨게이트를 본적은 있었지만 경주가 그곳에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긴 영필의 여행은 그 흔한 한 장짜리
전국 관광지도도 없이 시작했으니 그렇다 해도 별 무리가 아니였고 어차피 그가 즐긴 건 여행 자체였고 어떤 도시나 목적이나 그런 것 따위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문제는 그의 잔고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였고 그의 차 또한 서서히 수명을 다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영필에겐 경주도 남은 잔고도
늙은 차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그의 모든 신경은 아까부터 옆자리에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눈을 반쯤 감고
기대어 있던 그 청년에게 가 있었다.
" 음악이라도 들을 까요.."
" 아~~예 그러죠"
영필이 라디오를 켜자. 팝송이 흘러 나왔는데...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그 선율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이로써 둘 사이에 공간의 침묵은 깨어지기 시작했고 음악 때문인지 둘에게는 웬지 모를 여유로움과 유연함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영필은 청년에게 간단히 이름과 나이 그리고 지금은 여행중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전의 상황을 얘기 할 만큼 청년을 친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말하진 않았으나 내심 마음으로 이 청년이 헤어지면 얼마 정도나 나를 기억할까..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기에 말하기가 훨씬
쉽고, 어차피 헤어지면 잊혀질 거라는 생각에 속 편하게 털어놓을까 순간적으로 고민하기도 했다.
"음....그냥 부르기 편한대로 불러주세여..나이는 형보다 어리니까 편하게 말 놓으시고여..이왕이면 멋진 이름으로 불러주면 더
좋겠군여"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하마터면 핸들을 놓을 뻔했다. 이때까지 조용하던 그의 갑작스런
형이란 말에 당황스러웠지만 더 놀란 건 옆집 똥개도 아니고 이름을 부르기 편하게 부르라니, 하지만 그의 웃음에 따라 웃을 수밖에는 없었다.
"뭐 형이 절 이름보고 태워준것도 아닐테고 난 나 일뿐이지 내 이름이 내가 될 수도 없고 또 뭐랄까 이름 따위가 날 대표하는 건
그리 달갑지 않네여 이름말고도 전 가진 게 아직 많으니까여. 예를 들어 맑은 눈동자랄까 염색한 금발머리랄까 ..하하 그런 거 말이예여. 그렇다고 날 맑은 눈동자, 금발머리... 그렇게 부르는 건
사양합니다. 웬지 인디언이나 미개인이 된 기분이니까요..... 하하.... 음...뭐가 좋을까 어떤게 편하겠어여... "
그는 이미 열려진 입을 주체 할 수 없는 듯 계속해서 말을 내뱉었고 난 그의 말에 점점더 당황스러웠지만, 불쾌하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크게는 아니였지만 잔잔한 미소까지도 저절로 흘러 나왔다.
" 어.. 그래 ..그럼 말 놓을께...근데 자네를 어떻게 부를 던 그것
또한 하나의 이름에 불과 하지 않을까.. 자넬 대신하는 뭐 상징적인 암시랄까..."
영필이 되물었다. 모처럼 만의 논쟁거리였다 . 회사에 다닐 때에는 몰라도 아는 척 언제 달아날지 모르는 목을 내놓고 의견이나
반문을 제기 할 수 없었고, 가정에서는 그런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피곤거리 였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후 이렇게 속시원하게 논쟁을 유도한 적은 거의 없었었다. 영필은 웬지 자신의 말에
신중함을 부여하려 했다.
"음...그건 다르죠..처음부터 개똥이라고 이름이 정해진 거라면
나를 아는 모든이가 날 개똥이라고 부를 테고 그게 나를 대표하는 명사처럼 되어 버리고 날 개똥이라 부르는 사람이 하나 늘어가는데 불과하지만....형이 다르게 부른다면 그것도 형의 의지로...그렇다면 날 그렇게 부른 사람은 오직 한사람일거고 그건 단지 기호에 불과한 거죠.....자 어떻게 부를래요.."
" 글쎄 난 아직도 그 차이를 모르겠는데..."
결국 이해시키려는 한사람과 의문을 제기하는 또 한사람은 오랜
논쟁 끝에 합의에 도착했고 영필의 의지대로 그 청년은 화니로
부르기로 했다. 영필은 단지 그의 유쾌한 논쟁에 따른 미소로 인해 청년을 화니로 부르기로 했고 청년도 화니-약간 여성스럽다고 불평하긴 했지만- 라는 자기기호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듯 했다. 이렇게 둘은 단지 이름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 뿐이였지만 서로에 대해 무척이나 많은 것을 알게 된 듯 친근함이 배어 나왔고,
화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영필은 이때까지는 없었던 어떤
영적인 힘을 느끼게 되었다.
시간은 시속 180km고속 열차의 차창 너머에 소나무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고 둘 사이에 오고간 수많은 글조각 덕에 시장기가 감돌기 시작했고 날 또한 점점 어두워져서 이미 자동차에
헤드라이트를 켜논 상태였다. 그리고 좁은 2차선 도로 끝으로 서서히 간판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많은 빛과 많은 색을 발하는 간판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경주였다.
그들이 나무 밑에서 경주에 도착하기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되었고, 영필과 화니는 10여년을 알고 지내던 사이가 되어 버렸다.
물론 둘 사이 오고간 건 자신들의 과거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
이젠 헤어질 시간 이였다. 그전에 우선 둘은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와 에어컨 바람을 쇠기로 했다. 편의점안은 시원했다....시끄러운 음악이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한 여름밤 열대야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을 해서 였는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 이제 어디로 갈꺼야.."
에어컨 바람에 몸이 식을 때쯤 영필은 물었다.
"글쎄여..뭐 뚜렷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그냥 여행이라고나
할까여..하하...그냥.."
화니는 대답은 애써 영필의 시선을 외면 하는거처럼 보였고 분명
'이녀석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 들게끔 표정
지었다. 그 둘은 오래된 형제 같기도 했지만 20년 만에 우연히
만난 친구처럼 반가워하면서도 자신을 감추는 그런 모습이 더 지배적이었다.
" 음..오늘 여관에서 묵을 거면 우리 같이 묵을까..이것도 인연인데 하루쯤이야..."
" ...그럴까요..."
약간은 망설이는 듯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계산이 선 듯 화니는 대답했다. 그들은 근처에 그리 현대식으론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두사람이 불편 없이 자기엔 충분한 여관을 잡고 여행에 지친 배낭을 풀었다. 화니가 샤워를 하는 동안 영필은 카운터에 세탁을 할곳을 알아본 후에 뉴스를 보려 티비앞에 앉아서 배낭에서 이리저리 세탁 거리를 꺼내었다. 보통은 여행지 숙소에서 세탁을 해결하지만 오늘은 둘이 쓰게 됐고 무엇보다도 화니에게 그런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화니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영필은 화니에게 세탁거리를 내놓으라고 말하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땀에 젖었던 몸이라 그런지 샤워의 즐거움은 황홀감 마저 들 정도 였다. 영필은 물줄기를 맞으며 느긋하게 생각을
즐기고 있었다.
' 화니... 재미있는 친구야..이 친구랑 함께 여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일단 무엇보다 든든하고 같이 있으면 덜 외로울
거고 하긴 처음부터 외롭자구 시작한 여행이지만...그래도 고민거리를 혼자 해결하려다 범하는 실수는 줄일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경비 또한 줄일 수 있울지도 몰라....그리고 그리 귀찮을 것
같지도 않고...하지만 저 친구는 내 생각과는 다를 지도 모르지..
한번 넌즛이 말이나 해볼까.. 아니야..그냥 지금처럼 혼자 하는
게 좋겠어....그게 오히려 속편할 것 같아 저 친구한테 나 나한테나..그냥 우연히 만나 하루를 보내고 그냥 잊혀지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근데 저 친구 진짜 이름이 무척 궁금한데. '
느슨해진 마음으로 갖가지 생각을 해댔고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에선 웃음이 절로 흘러 나오기도 했다. 둘은 일단 세탁물을 가지고 나가 맡긴 후 내일까지 해달라고 신신 당부를 한다. 그리고 영필은 오랜만에 만난 이 친구- 사실 여행중 친구는 처음 이였다-에게 술을 한잔 사고 싶었고 들은 근처 대학가에 있었던 조그마한 생맥주 집에 들어갔다. 한창 방학중이라 그런지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영필은 간단한 안주와 오백 두잔을 시켰고 안주보다 먼저 나온 거품 가득한 시원한 맥주를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잔을 들고 의미 없는 건배를 한후 단숨에 들이켰다. 영필이 여행중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늘 마시는 거라곤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를 들고 시원한 곳을 찾아 혼자 마시는
것 뿐이였지 도저히 혼자 빠나 술집을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혼자 마시는 술은 늘 빨리 취기가 돌았다.아마도 뇌에서 술 이외에는 집중할 것 별로 없어서 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나주 에서 였나 그 근처에선 너무 과하게 마시고 운전을 하다 세상을 등질 뻔 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영필은 아직도 오싹해지곤 한다.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만들어 내는 편이였다. 술이 한잔 두잔 횟수가 더해지자 화니의 입은 토크쇼 진행자처럼 능수 능란하게 움직였고 그의 말에 영필은
계속 웃음을 터드렸다.대개는 화니가 여행중에 겪은 밑기지 않는
로맨스나 로맨스의 대상이 됐던 여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이 전부였지만 어찌나 그 표현을 적나라하고 실감나게 하던지 단지 그의 말로 사실을 모두 인정하게 될 정도 였다. 화니는
여행을 시작한지 서너 달쯤 되었고 원래 집은 인천이였다. 영필은 대개 그의 얘기에 호응하며 듣는 편에 속했다. 그가 하는 말의
거의가 '그래서''어떻게 됐는데'에 불과 했다. 그리고 영필은 점점 더 이 젊은 탕아 화니에게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술만큼 사람 사이의 벽을 저절로 무너지게 하는 마력을 지닌 것은
없었다.
" 이봐 우리 같이 여행 할까...."
술이 지긋이 취 할 때쯤 영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
흘러 나와 버렸다.
" 첨부터 그럴 줄 알았어여....어차피 전 형때문에 높은 분이 보내신 그런 놈 이니까여.."
" 하하 .. 화니 자네가 무슨 천사라도 된다는 그런 말이군..근데
어떻하지 난 믿는 신도 없는데.."
" 한번도 살아가면서 신 탓을 해본적이 없나요?....아님 신에게
애원 해본 적이 없었나요...한번 두여..!!"
그의 둥딴지 같은 대답에 또다시 영필은 어이가 없어졌고 웃음이
쏟아졌다.
" 하하하...그래 자네가 천사라고 하자구...그럼 좀전의 그무수한여자 여행얘기는꾸며낸 얘기들였나..그리고 그럼 나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겠구만..어디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
" 전 점쟁이는 아닙니다.. 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올꺼라 생각하죠.전 멋진 휴가중이였어여. .그리고 형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가져오지 못했어여..."
그는 자신이 원래는 지금쯤 휴양지에 도착해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망할 놈의 천사하나가 세속의 여자와 눈이 맞아 파계되는
바람에 긴급히 파견됐고 그런 이유로 사전에 아무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말을 곁들였고..영필이 반박하자 가끔 하늘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영필은 혹시 그가 무슨 정신병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런
생각을 금새 지울 수 있었다.
" 걱정마세여..전 미치거나 정신병자는 절대 아닙니다..하하.."
둘의 대화는 그 후로도 계속 되었고 또한 웨이터의 움직임도 무척이나 바빠졌다. 가끔 주위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청년들과
여자들이 화니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둘이 술자리를
일어섰을 때 화니는 이미 만취상태로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에 영필은 조금 전의 대화들을 생각하면서 실없는 웃음이 연신 흘러 보냈다. 여관에 도착해 화니는 시장 터에 걸려진 닭같은
모양을 하며 인사불성으로 꼬꾸라졌고 영필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다시 샤워실로 들어갔다.
" 천사가 뭐 저래...하하하 ..웃기는 친구야..."
담에 게속.....
자전적 소설은 아닙니다...단지 영필과 화니에게 저의 관념을 약간씩 나누워 줬을 뿐입니다........아직 초고 이기 때문에 거친게 많으니 이해 바랍니다....퇴고가 되는대로 수정해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