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9일(수요일) 소포 한개를 받았다.
겉봉에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3동 314~27호 김미덕(조현아 선생님 제자)올림 으로 적혀 있었다.
뜯어보니 김미덕 선생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록한 책한권과 마른김 한상자였다.
우리가 미국에 사는 현아네 집을 매년 한두번씩 다녀오니까 다음에 갈때 전해 달라고 우리집으로 붙여 준것으로 여겨젔다.
우선 신여사가 소포의 주인공인 현아에게 소포의 도착을 알려주는 한편 김미덕 선생님에게도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는 말과 더불어 고맙다는 인사말을 했다.
신여사가 전화기를 내려 놓으면서 " 김미덕 선생님은 신안군 도초면이 고향인데 현아가 서원대에 강의 나갈때 가르친 제자로 가정형편 관계로 뒤늦게 대학을 다니고 박사학위 까지 획득한 훌륭한 분이라고 하네" 라고 말하였다. 또 현아는 보내준 메일에서 "과거 현직에 계실때 도초면과 좋은 인연을 맺으면서 김등 선물도 받고 하셨던것이 기억난다 "며 도초에 관한 나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일깨워 주었다.
이에 자극받아 이제는 까마득한 20여년의 과거사가 되어 희미하게 기억속에 가물거리는 신안군과 도초면에 얽힌 옛 추억들을 더듬어 적어본다.
내가 도초면이 속한 신안군과 인연을 맺은것은 1975년 10월 10일 충청북도청 에서 내무부로 영전되어 올라와서 새마을교육과와 민방위기획과에 근무하던 중 직속상관인 최종호 민방위국장님(경남지사와 보훈처장과을 역임하신분)이 재정국장으로 영전되실때 따라 올라와 재정국장실에 몇달 근무하고 있던 중 국장님께서 "아무래도 조군은 일을 하는것이 좋겠다"며 행정과 행정계로 보내 주시어 몇일 근무하는 중에 최인기 지방기획과장님(농수산부장관과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신후 지금은 국회 중진의원으로 활동)과 박찬무 기획1계장님(충남의 시장군수를 거처 청주시장과 인천광역시 부시장 역임)이 불러서 앞으로 내무부에서 클려면 기획업무를 다루어야하니 지방기획과로 와서 같이 일하자고 하여 1978년3월2일 지방기획과로 발령 받으니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시도 시군구의 국과계등의 조직과 공무원 수를 다루는 조직관리 업무였다.
위성소님 이강웅님의 업무지도를 받으며 근무하던 1980년대 초 어느날 신안군청에 근무한다는 안경을 쓰고 작달막한 키의 꽤 영리하게 생긴 공무원인 최명씨가 찾아왔다.
최명씨는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신안군은 우리나라에서 섬이 가장 많은 도서군 이라는 것과 그럼으로써 섬과 섬간의 교통이 아주 불편하여 주민들의 고통이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 등등을 설명 하면서 각섬마다 면출장소를 설치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최명씨가 건의하는 사항은 행정체계상 도에 건의하고 도가 검토한후 내무부에 승인요구 해야 되는 사안 이었는데 무엇보다 주민들을 생각하는 일선 공무원인 최명씨의 열정과 용기에 감명받아 내가 전남도에 신안군 각 도서의 출장소설치 필요성을 검토해서 승인요구를 하라고 거꾸로 이야기해서 큰섬부터 하나씩 하나씩 출장소설치 승인을 해주었다.
그러면 최명씨는 전도서민들이 출장소 설치를 반기며 개청식 축제를 갖고서는 기념타올을 보내 주었다. 신안군 특산물이라면서 김등 해산물도 보내 주었는데 한번은 큼지막한 홍어를 보내왔으나 고향이 충청도인 우리는 홍어에 대해서 상식이 전무하고 요리할 줄도 몰라서 전곡시장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후에 이사실을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니까 " 아이고 그 홍어가 얼마나 귀한 고기인데... 더구나 그렇게 큰 홍어는 정말로 귀한것인데, 좀 썩혀서 요리하면 둘이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고기인데 " 하면서 안타까워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내준 신안주민들과 최명씨에게 무한히 감사하면서 미안스러웠었다.
특히 김미덕박사님의 고향인 도초면과 인연을 맺으며 이루어진 여러 아름다운 추억들을 더듬어 보면
도초면에 대한 출장소설치 등등의 행정적인 인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도초면과 깊은 인연을 맺은것은 장안동 전곡시장 입구에서 종로지물포를 경영하는 전원길씨가 있었는데 이분의 고향이 나와 신여사의 고향인 청원군과 인접한 보은군 마로면 갈전리여서 이심전심으로 친동기간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이 전원길씨가 동생처럼 절친하게 지내는 신석철씨 와도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신석철씨의 부인으로 당시 장안동에서 진주미용실을 경여하고 있는 권여사님의 고향이 도초면 이라고하였다.
당시 공무원들은 7월말이 되면 5일정도씩 휴가를 떠나는데 그간은 강원도며 수안보 화양동 등으로만 다녔으니 이번에는 권여사의 고향인 도초면으로 가보자고 합의가 되어 1989년에 우리가족 다섯명과 전사장네 가족 네명 그리고 신석철 내외분이 도초면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목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2시간 반정도를 가서 도초선착장에 도착하니 권여사님의 삼촌으로 도초면총무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권계장님과 그의 조카분들이 차를 가지고 와서 같이 권여사의 친정집으로 갔다.
권여사의 아버님 어머님과 동생들 사촌들 모두가 반겨주고 맛있는 밥상을 안겨주는데 마치 처가집을 온것 같이 포근했다.
우리는 이틋날부터 권계장네가 경영하는 염전도 가보고,갯벌에서 고기도 잡고, 동네 뒤에 돌아가신분의 시체를 안치해 놓았다는 거적시설(5년후에 토장으로 옮긴다함) 에 대한 유래도 들으며 휴가일정을 보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도초면으로 떠나면서 도초는 섬이라 산과 어촌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가서보니 논이 마치 육지의 평야같이 드넓게 펼처저 있고 이곳에서 나는 쌀도 그품질이 아주 우수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곳은 따스하여 사시사철 푸른채소를 길러서 서울로 올려보내고 노루며 꿩도 많고 철새들도 많이 찾아오며 사람들의 인심도 좋아 아주 살기 좋은 곳이라 하였다.
우리는 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목해수욕장을 찾아갔다.
시목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펼쳐저있고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에 위치하여 물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였는데 주변에 감나무가 많다고 해서 시목 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이 해수욕장은 길이가 2.5km에 폭은 약100미터정도가 되었는데 군데군데 모래성이 쌓여저 주변의 산들과 어우러저 한폭의 기림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애들은 모래사장에서 씨름도하고 달리기도하는가 하면 파도타기도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권계장님과 그의 조카분들이 마련해간 음식을 지지고 볶아서 소주를 곁들여 맛있게 배불리 먹으니 모두가 무릉도원에 온양 마음껏 즐거웠다.
또 한해는 신여사가 인연을 맺은 수영장 모임인 산수회 회원분들과 신석철씨 내외분 그리고 전원길사장 내외분 이렇게 대부대가 도초면을 찾아가서 오리사냥, 꿩사냥을 하는등 평생 잊지못하는 추억을 만들어 오기도 하였다.
우리가 돌아 올때면 신세만 지고 오는 서울 손님들이건만 " 또 놀러 오세요 "라고 말하며 이것 저것 챙겨 주시던 두분 어르신들과 슬하 자녀분들 이었다
무언가 도와 줄것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권계장이 선착장에서 마을로 들어 오는 길이 좁아서 불편하다는 말을 듣고, 신안군에 부탁하였는데 년차별사업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분들의 은혜에 다소나마 보답한것 같아 반가웠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후로는 더는 도초면을 가보지 못했고 같이 갔던 전원길 사장과 신석철씨는 고인이 되어 마음이 아프다. 권계장은 후일 부면장으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직한 후 목포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20여년이 흘러간 지금은 말그대로 그곳 도초면과 인근 도서간에 다리도 놓여지고, 마을길도 넓혀지고, 초가집은 기와집으로 탈바꿈하는등 많이 변했을것이다.
1980년대초에 고인이 되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애들과 함께 홍도여행을 하였던 추억들도 생각나면서 그 명승지 홍도와 도초로 여름휴가를 가곺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이 다음에 가게 된다면 전에 신세젔던 권계장네 식구들을 만나보는 한편, 김미덕 박사님네 가족들도 만나서 김박사님과 우리 현아와 맺은 인연이며, 김박사님의 훌륭한 인품도 치하드리며 또하나의 인연을 맺고 오고자 한다
자칫 잊고 지낼뻔 했던 아름다운 섬 도초면과 맺은 잊지못할 추억들을 일깨워준 현아와 김박사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2011년 3월 12일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