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이민자 정착기
-백동흠의 “Heavens 지금 여기”(에세이문학출판부.2021)
方 旻
수필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백동흠 수필집을 읽으면서. 그간 수필을 읽고 쓰면서 자문한 게 한두 번이 아닌 처지라 백 작가에게까지 전이한 셈. 20여 년 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삶터를 새롭게 마련했던 그에겐 아마도 수필이 없었다면 이민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지금과는 엄청 다른 삶을 살았을 거라 추정한다. 수필은 뿌리가 애초에 없는 곳에서 고단한 이민자 삶을 견뎌낼 수 있게 한 무엇. 이게 없었다면 현재와 달리 결코 바람직한 모양새는 아니었을 터. 그에게 수필은 이민자로서 나름 성공하게 한 중요한 결정 인자가 아니었을까?
글을 시작하면서 수필이 무언지 묻게 한다고 말했다. 마치 인생에 대한 물음처럼. 필자가 경험하는 바, 수필은 인생 항로를 무사하고 안전하게 목적지로 가게 하는 나침반 역할, 혹은 돛대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한다고 믿는다. 다른 작가는 모를지라도 이 백동흠에겐 분명 이게 필요하기도 했지만 충실히 작용했다. 만일 백 작가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어쩌면 수필가로서 삶은 그 인생에 없었을지 모르겠다. 한편으론 수필 쓰기 맞춤한 이민지移民地 직업이 글쓰기에 호재로 작용했다. 이민 초기에는 건축일로 시작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중단했고 택시 운전으로 전환한 셈이니 말이다. 만일 사고 없이 처음 시작한 일을 계속 유지했더라도 수필가가 되었을까? 속단하기 이르지만 쉽지 않았을 거다. 그 일은 운전하는 것과 다른 일, 글쓰기에 절대 필요한, 멍하게 시간 보내면서 사색할 수 있는 직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시절 베스트셀러였던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이걸 입증한다. 물론 이건 문학 수필집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던 택시 기사일과 글쓰기 상관성을 확인시킨다. 한 편 글이 출현하기 위해선 얼마간 사색하며 숙성시킬 수 있는 시간, 시쳇말로 멍 때리는 시간이 필수 동반 사항이기 때문이다. 사색 없이 글은 이루어질 수 없다. 값싼 감정이 넘치거나 재미나고 특별한 사건이 있다고 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수필은 불가하다. 만일 그런 글도 가능하다면 그건 잡문이거나 단순 기록물 이상으로 비상하지 못한다. 즉 문학 수필이 될 수 없다. 바로 말하면 백동흠에겐 우연이건 필연이건 택시 일을 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고, 프롤로그에서 확인 한 바 수필 나라에 산다.
『Heavens 지금 여기』에서 오클랜드에 정착하게 된 실태를 읽는다. 6개 스토리에 각 9편씩 총 54편을 실었다. 각 6부 표제작이 이민 스토리를 대표한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Heavens 지금 여기, Pleasure!, 셀프기프팅(Self-Gifting), 나마스떼(Namaste), Margaret 어머니, 트랜스포머(Transformer)”다. 영어권 국가 특징이 책명과 각부 명칭, 글 제목과 사용 단어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작가가 영어를 집밖에선 통상어로 사용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우리나라 수필집 관례에서 보면 낯설지만 현장성을 살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을 거다. 혹 누구든 이 책 전모를 빨라 파악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대표작만을 골라 읽으면 된다. 그러면 그가 어떤 이민자 삶을 영위하는지 단박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작가 관점일 뿐 독자가 이에 무조건 동의하고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서 이유도 간략하게 밝히면서 다른 작품을 각 부별로 하나씩만 들어보자. 제1부에선, 예약 손님을 기다리는 25분 짧은 시간을 불평하거나 자조에 빠지지 않고 관찰과 사색에 활용한다. 주변에 날던 갈매기를 관찰하며 자성 시간을 갖는 <갈매기를 닮은 사람들>에선 그가 이민자로서 부닥친 여러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제2부에선, 표제작인 <Pleasure>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글은 백 작가 대표작이라 보겠는데, 왜냐하면 백동흠이란 인간 실체와 문학성과 진실한 인생 핵심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 한 편을 더 든다면, 뉴질랜드 이민 애환사가 사실대로 드러나는 <오클랜드 한국학교>다. 현재 교민 수가 3만여 명인 오클랜드 이민 20년을 그대로 압축한 감동 스토리다. 제3부에선, <눈물이 난다>를 고른다. 백 작가 특징인 단문 위주 간결한 문장 속에 자연물을 보조 관념으로 삼아 다난한 이민자 삶을 코코화이(Kōwhai)처럼 예쁘게, 태평양처럼 넓고 깊게, 활화산 용암처럼 뜨겁게 풀어낸다. 그가 응어리진 사념을 헤치고 정돈하며 들려주는 인생관, 세계관, 자연관에 따른 의미를 해석하고 부여하며 가치화하는 수필을 만난다. 제4부 <에드먼드 힐러리 발자국을 따라서>는 체험 사실 기록에 충실한 글이다. 역사와 신화, 문학 관계망을 생각하게 한다. 사실을 스토리 그대로 기록하면 실화나 역사요, 스토리를 신비화하면 허구나 신화이며, 예술성을 조화시키면 문학과 수필이 된다. 이 점에서 따져보면 스토리텔링에 치중해 예술성이 스며들지 못해 문학 수필로 보기 어려운 작품을 다소 발견한다. 책 차례에서도 6개 스토리 순서로 분류했다. 그만큼 그는 스토리성을 내세운 것인데, 이 스토리텔링만으로는 문학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을 확인케 하는 작품이다. 제5부에선, 특별하게 꼽을 게 없다. 돌보던 개와 이웃 할머니 자녀 사돈에 이르기까지 백 작가 가족 이야기, 극히 작가다운 삶을 기록한 거라서. 기록가치(실화)와 표현가치(문학)가 다투는 인생 현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하다. 제6부에선, 특히 뉴질랜드식 다양한 스토리를 접할 수 있어 어느 한 편만 꼽기 어렵다.
어디서건 누구나 택시를 운전한다고 글 쓰거나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글쓰기에 유용한 직업 조건에 속한다는 것일 뿐, 물고기가 많은 낚시터라고 아무나 월척 하는 건 아닌 것. 거기엔 남다른 노력과 열정이 반드시 필수 사항으로 따라붙어야 한다. 이 말은 백동흠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는 그다운 비범함이다. 그는 여러 차례 탁월성을 입증하여 수상 영광을 차지한 바 있다. 이민지에서 택시업은 그에겐 필요조건이었지만 충분조건은 문학 열정, 글쓰기 경쟁력이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 수필집 『Heavens 지금 여기』를 들고 책을 펼쳐 한 줄 두 줄 읽을 수밖에 없다.(『좋은 수필』 ,2021-7, 180-184면)
첫댓글 백동흠선생님, 수필집 출간 후, 조용하셔서 궁금하네요. 이민생활, 그리고 직업, 뉴질랜드라는 나라....
다양한 삶에서 건져낸 엑기스를 놓치지 않고 작품에 녹여내는 열정을 가끔 카페에도 전해주셨는데..........
2022년 새해에 인사드립니다. 이글을 오늘에야 보았네요.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 다른 책 6권 쓰느라 정신 없었어요.
제 책을 평해주신 방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저를 이끌어주신 이복희 선생님께도 고개 숙이네요.
2022년 에세이문학 가족님들 가정에 기쁨과 평화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