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이
시인 이용하
다랑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다랑이는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만든 작은 논들이다. 남해 가천마을이나 동남아 농촌의 다랑이를 보면 내 어릴 적 추억이 영화처럼 돌아가기 시작한다. 내 고향은 산골 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가운데로 개울이 흘렀다. 다랑이는 개울부터 산의 턱밑까지 숨가쁘게 올랐고 논두렁은 추상적인 곡선들을 자유자재로 그려놓고 있었다. 벼들이 잘 자란 가을에 뒷산에서 바람이 일면 황금빛 물결이 논두렁들과 개울을 펄쩍 펄쩍 뛰어넘어 앞산까지 오르곤 했다.
논두렁은 점점이 흩어진 마을의 집들을 하나하나 이어주는 길이었다. 그 길은 개구리가 뛰어넘고 까투리가 기어가고 우리집 송아지가 어미소를 졸졸 따라다니는 꼬불탕길이었다. 광주리 인 어머니가 가는 듯이 집으로 오고, 지게 진 아버지가 오는 듯이 멀어져가는 이상한 길이었다. 아침이면 책보를 두르고 볏잎에 쓸리며 요리조리 달려서 앞산 너머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최단 경로를 찾아서 뒷산에 올라가 싱아를 따고 칡뿌리를 캐던 추억이 현장이었다.
먼 윗대로부터 내려온 가계도家系圖만큼이나 유구했던 내 고향의 다랑이는 경지정리耕地整理 등으로 인해 사라졌다. 기계영농에 편리하도록 크고 반듯한 모양으로 개량한 것이지만 산촌의 정경이 사라진 것은 한편으로 아쉽기만 하다.
이제 다랑이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가천마을 다랑이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였고, 필리핀 코르딜레라스와 인도네시아 자띠루위 등의 다랑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다랑이는 그 모습 그대로 내게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이다. 이호우(1912~1970) 시인의 「살구꽃 핀 마을」처럼 다랑이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같다. 어느 집에서나 옛 친구가 뛰쳐나와 반길 것 같다. 다랑이는 내 가슴을 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