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친다. 집어삼킬 듯 파도가 포악스럽지만 배는 흔들릴 뿐 침몰하지 않는다. 오른 쪽에서 밀려오면 왼쪽으로 몸을 돌려 세우고, 왼쪽에서 밀면 오른쪽으로 중심을 잡는다. 앞에서 달려들면 뒤로 물러서고, 뒤에서 몰아치면 맞서지 않고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맞서지 않고 견뎌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배는 물에 뜰 수 있어야 하고, 화물을 싣고 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에 띄운 바가지에 약간의 무게 나가는 물건을 올려놓으면 뒤집어진다. 허허바다에서 사람을 싣고 수십 톤의 물건을 실은 배가 물바가지처럼 되지 않으려면 균형을 중심으로 모으는 힘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제구실을 하려면 골격이 튼튼해야 한다. 집으로 보면 대들보이고, 사람으로 보면 척추다. 척추가 망가지면 사람은 일어 설 수도, 굽힐 수 도 없듯 집안은 기둥이 있어야 한다.
배의 척추로 하단의 중앙부를 앞뒤로 가로지르는 중심축을 용골이라 부른다. 배를 만들려면 먼저 골격을 세우고 말뚝과 고임목으로 지지대를 고정시킨다. 첫째, 배 밑을 앉히는 일이다. 배가 기울이지 않게 균형을 잡아 지면을 잘 다져주어야 한다. 둘째, 잘 다듬어진 목재로 배의 바닥과 옆 부분을 앞쪽에서 용골에 갈빗살을 휘어붙이는데 2주일이 넘게 걸린다. 나선형으로 목재를 구부린다는 것은 나무의 마음을 얻어야 하므로 나무가 전신을 틀어 휘어지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나무가 심통을 부리면 모든 작업이 중단된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배 만들기가 시작되면 배 목수는 나무의 성질을 다스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중요한 부분에 사용되는 나무는 강도가 달라야 한다. 숯불을 지펴 나무에 열을 가하거나, 짚 가마니를 덮고 뜨거운 물을 붓거나, 양잿물을 데워 붓기도 한다. 나무를 달래기도하고 협박하기도 해서 성질을 죽여 놓는다.
나무와 대화를 하는 것은 노 목수만이 할 수 있다. 나무와 타협을 할 때 몸가짐에 소홀함이 없도록 한다. 평생 나무를 다루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바친 그에게서 수행자의 기품마저 느껴진다. 수십 년간 땅 속에 뿌리내리고 흙과 물, 햇빛과 바람으로 몸피를 키워낸 나뭇결을 어찌 대수롭게 다룰 수가 있겠는가. 사철 기후를 담아 낸 목리는 영묘한 힘이 있어 집채만 한 파도나 암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용골을 다듬어내는 대목수는 대들보를 올릴 때의 진중함을 보여준다. 목숨이 촌각에 달려 있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스를 들고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비장함도 보였다. 너울 파도의 등을 잡아타고 포구로 돌아오는 노수부의 노련함마저 묻어난다. 수십 년 동안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으로 배는 단순히 나무가 아니라 노목수의 집념이요, 나무 부림이다.
배를 물속에서 쳐다보면 용골이 하늘로 향한다. 그 모습은 갈대로 덮은 초가집처럼 보인다. 그곳은 고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집안 대대로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집이다. 그들은 매일 아침이면 노를 들고 바다로 나갔다. 살아 있는 뱃사람들은 목숨을 용골에 맡기고, 죽은 어부들은 그들의 영혼을 바다에 맡긴다. 어부들은 죽고 사는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배가 때로는 무덤처럼 보인다.
어릴 때 척추를 다쳤다. 목만 삐죽 내놓는 전신을 깁스하는 대수술을 했다. 할머니 등에 업혀 고집을 부리다 허리를 뒤로 넘겼다 한다. 어부였던 아버지가 섬에서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뱃사람이라면 평생 배 한 척 가져보는 게 꿈이었다. 바다위에 떠 있는 시간이 누구보다 많았던 아버지는 소망했던 작은 어선 한 척을 마련했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 배를 팔아 가장의 책임을 다해야만 했다. 그 배는 집안 대주의 자존심이고, 가족의 목숨 줄이나 다름없었다. 용골이 아들의 생명을 살린 셈이다.
험한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삶의 굴곡에 쉽게 무릎 꿇지 않았다. 때로는 바다 날씨 같이 성격이 거칠고 불같고 종잡을 수 없지만 용골을 타고 파도를 넘는 아버지는 배와 한 몸이 되어 한 없이 부드럽고 너그러워진다.
십대 후반에 배를 타다 야반도주한 아들이 철공소 보조 일을 하면서 검정고시를 거처 대학교수가 된 것도 아버지의 이런 강단진 성격을 물려받은 덕분일 것이다.
배가 높은 파도에도 뒤집어지지 않은 이유는 배가 둥글이기 때문이다. 용골을 안고 있는 배 밑창을 보면 여자의 버선코처럼 둥글다. 둥근 선에서 나오는 곡선은 버티고, 부딪히고, 앞으로만 나아가려는 힘보다 잠시 멈추고, 수용하고, 물러서는 힘이 배를 견디게 한다.
용골이 단단하면 배가 태풍을 만나도 쉽게 전복되지 않는다. 사람이 세상 풍파에 휩쓸려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척추가 꼿꼿해서다. 누구나 용골 같은 기개를 가지고 있다면 급격히 변하는 시류(時流)에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사교성이라도 괜찮고, 어려운 고비를 참아내는 인내심이라도 괜찮다.
뱃사람은 대들보가 있는 초가집에서 태어나고, 용골을 타고 바다에서 살아가고, 다시 초가지붕 무덤으로 돌아온다. 어부는 용골을 떠나 살수 없다. 배는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출처] 용골(龍骨) / 이치운 - 제13회 천강문학상 우수상|작성자 장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