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하시는 하느님
요양원이나 양로원에 있는 노인들을 조사한 결과 70%가 자식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자식이 잘 살아도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를 더욱 중요시하기 때문이랍니다. 부모님을 모시면 불편하고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낳으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 낳고, 결혼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도 안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맞지 않고 손해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같이 살지 않습니다. 가족과 이웃의 소중한 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한국인의 힘이고 에너지였는데, 요즘은 개인 소유에만 집착하고, 물질을 우선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땅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둘째, 땅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과 하늘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셋째,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입니다. 넷째, 물질에 속한 사람과 하느님의 은총에 속한 사람입니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1977년에 <소유냐 존재냐>라는 저서를 통해,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참다운 자아실현을 위한 두 가지 인간상을 제시했습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인류의 불행과 고통은 지나치게 소유에 목적을 두는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은 항상 고립되어 불안, 긴장, 갈등, 대립을 동반하여 평화와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존재에 목적을 두는 삶은 항상 내 안의 내적인간을 생각하며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귀히 여기고, 부모와 형제를 귀히 여기며 살아갑니다.
소유는 끝이 없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소유하려고 할 때는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고, 최대한 친절하려고 노력하지만, 막상 자기 소유가 되면 전혀 꾸미지도 친절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소유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더 이상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유에 목적을 두는 사람은 끝없이 더 가지려고 하거나 더 올라가려고만 합니다. 그렇게 올라가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전반적으로 학교, 직장에서도 만족이 없고, 결혼을 해도 만족이 없고, 정치에도 만족이 없는 그런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온 국민이 땅의 것, 물질, 소유, 이기심 쪽으로 급속히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사람이 소유에만 집중하면 가까운 가족조차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본질을 생각하면 다릅니다. 본질에 목표를 두면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부모와 형제를 먼저 생각하며 잘할 수 있습니다.
설령 세상을 다 가졌다 해도 보이는 것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왔다가 다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높은 지위도 영원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기 주변에 철조망을 아무리 둘러도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의 것을 다 가지려는 생각은 욕심일 뿐입니다. 다 가질 수 없을뿐더러, 다 가져도 불안합니다. 가지려는 것 자체가 벌써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니 경쟁 속에서 조금만 안 되면 낙심하고 좌절하여 그만 주저앉아 버립니다.
이스라엘의 부수상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하러 한 사람이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 사람은 “축하드립니다. 부수상을 하시다가 대통령이 되시니 얼마나 기쁘십니까?” 하고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기쁘겠습니까? 다 별게 아닙니다. 그저 모든 일에 감사하고 하느님이 맡겨 주신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하느님 앞에 살면서 수상이든지 부수상이든지 상관없습니다. 부수상도 귀하고, 대통령도 귀한 것입니다. 부수상은 아무 가치가 없고, 오로지 대통령만 귀하면 이 세상에 누가 살겠습니까?
물론 소유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나의 위치와 영적인 존재를 우선하고 소유하면 부작용이 없습니다. 부모도 무시하고, 양심, 신앙도 버리고, 하느님 없이 복된 참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그분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서 43장 1-2절을 봅시다.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분, 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내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인생은 광야의 길과 같습니다.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는 험한 세상길입니다. 쉽게 살 수 없습니다. 물질만으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권력으로도 안 됩니다. 게다가 소유에 집중하는 사람은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남에게 베풀 여유가 없습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로 배려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당에 나오는 사람은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에게는 여유가 있습니다. 물질이 없어도 마음에 부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택해야 할까요? 척박한 광야의 삶일까요? 마음이 부유한 삶일까요? 누구나 가야 할 인생길이라면 소유가 아닌 마음의 부유함을, 권력이 아닌 하느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택하는 현명한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