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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17/270일차> 2012년 7월 7일(토) 플라그~베거스~킹맨~LA, 맑음, 네바다 사막 헤매기(2)
(오늘 여행기 2편입니다)
한밤중 텅빈 애리조나주 킹맨 역의 배낭과 작은 가방.
역과 대합실은 문이 잠겨 있고, 승객도, 행인도 보이지 않는 킹맨 역.
의자에 배낭과 작은 가방을 올려 놓고, 기차 시간이 되길 기다립니다.
장기여행자의 짙은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나는 듯하네요.
라스베이거스 엑스칼리버호텔에서 한참 기다려 오후 6시25분이 되니 예정대로 고투버스(Gotobus)가 도착했다. 버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엑스칼리버 호텔에서 타는 승객은 나 혼자였다. 버스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몇 개의 호텔을 더 돌며 승객을 태운 다음, 시내를 빠져나가서는 내가 자동차를 몰고 달려온 93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아까 왔던 길을 거꾸로 달려 킹맨으로 가는것이다. 라스베이거스로 올 때만 해도 맹렬한 열기를 내뿜으며 지글지글 끓던 황야가 멋진 석양에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시간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마술이 황야에 펼쳐졌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매혹시키는 매력을 발산했다. 낮에는 그저 거친 언덕에 불과했던 작은 봉우리가 살아나는 듯했다.
버스에선 영화 트랜스포머를 틀어주었다. 그런데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더빙이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1시간 30여분 달려 8시 조금 넘은 시간에 캥맨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궁금해 “이 버스가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운전수는 “애리조나주 피닉스(Phoenix)와 뉴멕시코(New Mexico)주를 거쳐 멕시코 과달라하라까지 간다”고 했다. 내가 놀라면서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36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스페인어로 더빙한 영화를 버스에서 틀어주고 라스베이거스~킹맨 버스비 20달러가 이해가 갔다.
어쨌든 킹맨을 떠난지 9시간 만에 다시 똑같은 곳으로 온 것이다. 고투버스가 정차했다가 떠나는 주유소 겸 편의점에서 물을 사 들고 쉬다가 걸어서 역으로 갔다. 작은 도시엔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 깔려 있고, 이따금 헤트라이트를 밝힌 차량이 도로를 질주할 뿐 거리엔 아무도 없다. 낮에 자동차로 이동할 때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걸어오면서 보니까 모하비 박물관도 있고, 66번 역사도로 박물관도 눈에 띄었다. 그저 적막한 도시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숨쉬는 도시였다. 역시 걷는 여행이 많은 것을 보게 하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역 주변은, 낮에도 그랬지만, 저녁이 되자 더 적막하고 썰렁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낮에 눈여겨봤던 역 앞의 레스토랑인 라팔라치오(La Palacio)에 가니 9시에 영업이 끝났다며 홀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상점도 모두 문을 닫고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은 편의점뿐이었다. 인근의 편의점 K로 가서 샌드위치와 ‘파운틴 드링크(Fountain Drink)’, 커피를 사서 역으로 왔다. 파운틴 드링크는 보통 생맥주 나오는 꼭지에서 콜라나 스파클링 같은 탄산음료를 따라 마실 수 있도록 한 것이었는데, 엄청 커다란 컵에 마음껏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도착한 킹맨 역.
저녁인데,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역사의 문도 닫혀 있지만, 적막한 도시에서 그나마 의자에 앉아 쉴 수 있는 곳은 역뿐이다. 이따금 화물열차가 어마어마한 화물을 싣고 굉음을 울리며 역을 지나갔다. 기차는 전속력으로 역을 통과해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화물열차의 칸이 얼마나 많은지 지나가는 데 한참 걸렸다. 킹맨 역은 무인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역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외롭고 고독한 여행자이지만, 허전함이 가슴 한편을 지배했다.
텅 빈 역사의 야외 벤치에 홀로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굉음을 내며 통과하는 화물열차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수첩을 꺼내들었다. 자동차를 운전해 여행하면서 메모하지 못했던 며칠 동안의 기억을 수첩에 하나씩 적었다. 이번 그랜드캐니언의 자동차 여행은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대재앙 수준이다. 렌트비가 82.49달러, 보험료가 420달러에 기름값이 49달러(기름값은 1갤런당 3.8달러 정도로 비교적 싼 수준이지만), 플래그스태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한 그레이하운드 비용 60달러, 라스베이거스에서 킹맨으로 이동할 때 들어간 고투버스 비용 20달러 등 금액이 600달러가 넘는다. 불과 3일만에 이동 비용만 이 정도가 들었으니 엄청나다. 동부지역 이동을 포함한 대륙횡단 열차 비용이 500달러가 되지 않는 데 비해 보면 확실히 대재앙이었다. 여기에다 시간은 시간대로 엄청나게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랜드캐니언을 하루 여행한 셈이고, 3일 동안은 이동하는 데 사용했다. 1일은 플래그스태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2일엔 라스베이거스에서 플래그스태프로, 3일엔 그랜드캐년 돌아보고, 4일째엔 플래그스태프에서 라스베이거스~킹맨으로 돌아다니기만 했다. 만일 그랜드캐니언 투어에 참가했을 경우 절반 정도 금액으로 노스림과 자이온(Zion) 국립공원, 모뉴먼트 밸리까지 구경하고 다른 여행자들과도 다양하게 만났을 것이다. 자동차로 황무지를 신나게 질주했지만, 이번 그랜드캐니언 여행은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름대로 좋은 경험도 했고 미국에 대해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첫째는 역시 미국은 자동차가 필수인 나라다.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왜 그토록 많은 기계가 등장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둘째는 미국의 도로와 교통체계는 모든 것이 숫자로 돼 있다. 셋째는 미국인들의 운전습관으로, 법규를 잘 지킨다. 넷째는 시골마을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미국 자동차 렌트 여행은 단순히 교통 문제가 아니라 미국사회를 이해하는 또 다른 키워드였다. 미국인들의 비만문제도 교통과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나름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불은 환히 밝혀져 있지만, 열린 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호스텔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호스텔 직원들, 미국은 1인 다역이다. 손님이나 여행자들이 많은데도 그랜드캐니언 호스텔이나 라스베이거스의 신시티(Sin City) 호스텔도 80~90명 들어가는 숙소이므로 적은 게 아닌데, 리셉션 일을 하면서 아침에는 식사도 준비하고, 청소도 하고, 시트 등을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하는 일도 한다. 일을 많이 한다. 지금까지 여러 대륙을 다녔지만, 호스텔 리셉션을 담당하는 사람이 이처럼 많은 일을 하는 것은 미국이 처음이다.
그러니 바쁘다. 리셉션을 비우는 일이 많은데, 아침엔 리셉션을 비우고 다른 일을 한다. 그랜드캐니언 호스텔에선 벨을 설치해 놓아 손님이 필요하면 벨을 눌러 직원을 찾도록 했다. 하지만 직원이 바쁜 것을 알기 때문에 해야 할 일만 빨리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편안한 숙소, 여유 있는 숙소가 아니다.
시티투어 버스도 마찬가지다. 보스턴의 시티투어는 운전수가 헤드기어로 마이크를 달고 운전하면서 가이드도 한다. 운전수가 가이드까지 하는 것도 미국이 처음이다. 그랜드캐니언에서도 셔틀버스 운전수가 가이드는 물론 승객들을 태우고 내리는 일까지 담당한다. 이것도 미국이 처음이다. 플래그스태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그레이하운드의 경우, 다른 사람이 없이 운전수가 직접 승객 표도 받고, 승객을 확인하고, 운전도 하고 다 한다. 남미에선 버스 회사 직원이 표를 받거나 승객들을 확인하는 일을 차장이 처리하고, 운전수는 운전만 했는데, 미국은 전혀 다르다. 미국인들은 열심히 일을 한다. 업무의 양과 시간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최소의 인원이 최소의 시간에 최대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게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고, 실용적이지만, 그러다 보니 서비스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인간미가 없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의자에 앉아서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습니다.
역 앞의 벤치에 앉아 메모를 하고 있는데, 기차 출발 1시간 전이 되니까 역의 직원이 도착했다. 그는 사무실을 둘러본 다음 대합실 문을 열었다. 10시50분께 대합실에 들어오니 에어컨이 시원하게 켜져 있고, 청소도 깔끔하게 돼 있다. 시간에 맞추어 문을 닫고, 문을 열고 있는 셈으로, 따지고 보면 시스템이 아주 잘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암트랙이 지나가지 않는 시간에도 문을 열어 승객이 일찍 올 경우 대합실에서 쉴 수 있지만, 미국은 암트랙이 도착하기 1시간 전에 문을 열어 ‘비생산적인’ 요소를 줄이는 것이다.
이제 대장정이 끝나가고 있다. 작년 10월 12일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9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 귀중한 시간이었고,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1999년 책을 집필할 당시와 2003~2004년 영국 연수, 2011~2012년의 희망찾기 가족 세계여행, 이 세 기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이번 여행은 삶의 새로운 힘을 부여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 서서히 여행을 정리해야 한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세상을 돌아보면서 글쓰기, 특히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을 담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여행기를 다시 차근히 정리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비록 백화점식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종합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좀 더 넓은 시야로 이런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그 기간이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 힘들고 외로운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행복한 여행으로 수렴되었다. 연말까지는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이 생겼다.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은 생각보다 참 큰 나라라는 점이다. 작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60~100마일, 즉 100~160km 정도다. 처음에는 라스베이거스~그랜드캐니언~나바호 모뉴먼트 밸리 코스를 생각했지만, 자동차로 3일 돌아다니면서 결국 그랜드캐니언 한 곳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것도 셔틀버스를 타고서야 볼 수 있었다. 트레킹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역시 큰 나라다. 나중에 지도상으로 보니 내가 3일 동안 기를 쓰고 다닌 곳은 극히 좁은 지역이다. 사실 라스베이거스~플래그스태프가 250마일, 즉 400km 정도 되므로 서울~부산 거리인데 미국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거리다. 설악산을 구경하는데,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 차를 빌려서 설악산 하루 갔다가 와서는, 부산으로 돌아와 차를 반납하고 대전에 와서 기차를 타고 광주~목포~제주도로 이동하는 셈이다. 엄청 큰 나라다.
이방인의 눈에 띈 또 다른 것은 미국인들의 비만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어마어마한 비만의 나라다. 풍요의 상징이면서 병들어가는, 건강하지 않는 나라의 상징이다. 자기관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 달콤함에 빠져 귀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사람들이다.
미국은 상업화된 체인점의 나라다. 상업주의의 극단적 모습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람 사이의 정은, 특히 비경제적인 정은 배제되는 상업주의의 극단적 모습이 보인다. 하긴 걸어서 메뉴도 보고, 가게 모습이나 인테리어도 보고, 시장도 보면서 레스토랑을 고르는 게 아니라 상당 부문이 차를 타고 가면서 찾아 가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마을 가운데 광장과 교회가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시장과 상가가 형성돼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문화가 형성되는 것과 비교된다. 유럽은 나름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있지만, 미국은 상업주의와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도널드, 웬디스, 서브웨이, 버거킹 등을 비롯해 브랜드가 지배하는 나라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새로 뭔가 창업하기는 무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대도시로 몰릴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 비만도 이런 패스트푸드와 브랜드 식당 문화의 반영이 아닐까. 건강을 생각한 식단보다는 편리함을 좇는 미국인들이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이 있어야 창업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나라, 영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빅 브랜드보다는 토종이나 전통식당 등 로컬(지방화)이 강한 것과 미국의 내셔널 브랜드 위주문화는 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아직도 킹맨 역에는 적막감만이....
암트랙은 예정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차가 여기서 30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시카고에서부터 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착은 불가피할 것이다.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시카고가 있는 일리노이주의 옥수수생산자협회(Illinois Corn Grower Association) 부회장인 폴 테일러(Paul Taylor) 씨였다. 풍채가 좋고 얼굴도 두툼하게 살이 올라 있지만, 비만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예의를 갖추고, 품위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전형적인 미국 중상류층의 중년 신사라 할만 했다. 어린 손녀와 함께 애리조나 일대를 여행한 다음, 농장이 있는 일리노이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폴은 일리노이주 옥수수 생산 1번 구역 대표(District 1 Director)를 맡고 있지만, 내년에 회장이 될 예정이라고 했다. 자신이 생산하는 옥수수 전량을 수출하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이 주요 시장이다. 내가 한국의 언론인이며 주로 경제를 다루고 있다고 소개하니 무척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시카고 북서부 에스몬드(Esmond)에서 대대로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주로 비GMO(Non-GMO) 농사를 한다고 했다. 생산품을 카길과 같은 메이저가 아니라 비GMO 농산물과 유기농산물을 취급하는 로컬기업을 통해 수출한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가뭄으로 30% 정도 감산이 예상되며, 2주내에 비가 오지 않으면 생산 차질 규모가 50%로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암트랙으로 미국 중서부를 통과하면서 건조하다고 생각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테일러 부회장과는 옥수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진지한 의견교환이 이뤄졌다. 나는 한국의 경제신문에서 20년 이상 취재기자로 활동해 나름대로 경제흐름을 보는 안목이 있는데다 테일러 부회장은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어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관심이 통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이 쇠고기 수출 문제로 한때 홍역을 치른 데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양국 교역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해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테일러 부회장은 한국인들의 정서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나는 GMO 옥수수를 생산하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인들은 GMO에 대해 매우 민감한 것 같아요. 과학적으로 GMO 옥수수는 해롭지 않다고 입증됐는데도 말이죠.” 테일러 부회장은 우려스런 얼굴로 말했다.
“네. 그것은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인들은 GMO의 안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아직 없다고 생각하고 있죠. 유전자를 변형한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인간이나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하죠.”
“이해할 수 있어요. 미국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테일러 씨가 비GMO 옥수수를 생산하신다니, 아주 기쁩니다. GMO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앞으로 비GMO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 소비자들은 GMO와 비GMO 제품을 어떻게 구분하죠?” 테일러 부회장은 한국의 상황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자신의 주요 수출대상국이 한국이기 때문이었다.
“농산물을 판매할 때 GMO인지 비GMO인지 표시하도록 돼 있어요. 수입 옥수수나 콩을 원료로 한 스낵이나 식료품 등 가공식품도 포장지에 GMO 농산물의 포함 여부를 표시해 식별하도록 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큰 글씨로 써 놓도록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러면 소비자들이 GMO 제품을 기피하나요?”
“글쎄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비GMO 제품이나 유기농산물을 찾고 있어요. 특히 유기농산물의 경우 건강이나 환경에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건강과 식품 안전에 대한 불안이 확대되면서 이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죠.”
테일러 부회장은 나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의 경제상황이나 FTA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설명했다. 아무래도 한국을 떠난 세계를 떠돈 지 9개월이 넘어 최신의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르지만, 나름 열심히 설명했고 테일러 부회장도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나도 농산물 가격이 궁금했다. 옥수수와 밀 등 국제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세계 곳곳에서 인플레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뭄으로 수확량이 줄어 옥수수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예상이 많아요. 그런 예상 때문에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는 측면이 있죠. 생산도 늘어나고, 가격이 내리면 모두 행복하겠죠.” 하고 테일러 회장은 활짝 웃었다. 옆에 있던 데보라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나와 테일러 부회장의 진지한 대화가 계속 이어지자 대화 주제를 슬그머니 여행으로 돌려 나의 여행과 미국에 대한 생각에 대해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테일러 부회장 부부는 매우 합리적이고 목표 의식이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대대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시장의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생각을 요령 있게 펼치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얻으려 했다. 항상 여유를 잃지 않고 상대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자신이 알고 싶은 것에 대해선 거리낌 없이 질문했다. 명함까지 주고받으며 그들과 대화하는 나 자신도 즐거웠다.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드디어 대륙횡단 암트랙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시카고행 암트랙이 먼저 도착했다. 테일러-데보라 부부와 손녀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테일러 씨는 혹시 미국의 옥수수 농업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과 함께 열차에 올랐다. 그들은 내가 30시간 걸려 왔던 길을 되짚어 시카고로 돌아간다. 애리조나와 뉴멕시코의 황무지, 콜로라도의 산악지대를 거쳐 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의 중부 대평원을 질주할 것이다. 손을 흔들어 아쉬움을 표시했다.
테일러 부부와 헤어져 조금 있으니 새벽 1시께 LA행 암트랙이 도착했다. 육중한 기차는 캄캄한 어둠 속을 힘차게 달렸다. 아침에 플래그스태프에서 출발해 라스베이거스로, 라스베이거스에서 다시 킹맨으로 와서 한밤중에 암트랙을 탄 긴 하루가 지나갔다. 대륙횡단의 마지막 노선인 킹맨에서 LA까지 8시간의 암트랙 여행으로 한국에서 출발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세계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느낌이다. 여행계획을 세울 때부터 골치가 아팠던 그랜드캐니언과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대륙횡단도 무사히 마친 기쁜 마음으로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의자를 눕히고 잠에 빠져들었다. 기차는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를 힘차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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