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가 컴퍼니를 이끈다
부서·직급·연령 칸막이 허무는 유대관계 형성
취미 동호회서 봉사단체 스터디그룹으로 진화
지역주민·불우이웃과의 행복네트워크에도 기여
건설산업은 수주산업이라는 특성상 그 어떤 업종에 비해 갑·을 관계가 분명하다. 조직내 상하관계 구분도 엄격하고 기업문화 역시 보수적이다.
건설업계의 보수적 기업문화는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건설현장을 원할히 가동하고, 방대한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상명하복’의 딱딱한 구조 속에서는 미래사회가 바라는 창의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또 신입사원 등 젊은층의 감성도 묻히기 쉽다.
이에 따라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동호회, 즉 커뮤니티다.
커뮤니티(cummunity)란, 본래 사전적 의미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연발생적 공동체를 말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커뮤니티란 지연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가능한 공동체란 뜻으로 확장, 사용되고 있다.
대중소 기업규모를 막론하고, 모든 건설사에는 수많은 임직원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취미나 특기에 따른 동호회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업무적으로도 연결이 가능한 스터디그룹과 지역주민과 잠재 고객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커뮤니티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기업과 커뮤니티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존재한다. 돈을 벌지 못하면 임직원들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물론, 직원들이 무조건 기계처럼 일만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 수백년전 기업이 생겨나면서부터 증명된 명제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직원들은 끊이없이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생산활동의 효율성을 높여 가야 기업도 생존을 넘어 지속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업내 소통채널인 커뮤니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동호회다. 등산, 낚시, 바둑 등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업무 이외의 이유로 모여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활력을 얻고 행복을 느끼며 동시에 업무능률도 끌어 올리고 있다.
행복의 최대 적이라 할 수 있는 직장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도 이런 커뮤니티는 특효를 가지고 있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주고,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대화”라면서 “직장내라면 같은 취미,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크게 완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동호회내에서는 긴장이 없는 상태에서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공통의 목적으로 육체적 활동까지 겸비한다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는 최적의 치료약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대다수의 기업들은 직장내 동호회 활동에 적극적인 권장 직원들의 커뮤니티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건설사와 커뮤니티
최근 건설업계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우수 인재 확보다. 능력있는 사람들을 많이 채용해야 지속성장할 수 있는데, 젊은이들이 건설산업을 기피하고 있어 문제다.
기피 사유는 크게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산업 및 기업의 불확실성과 오지나 해외현장 근무 등 열악한 근무여건, 그리고 딱딱하고 보수적인 조직문화 등으로 압축된다.
실제 업체마다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쉽게 녹아들이 못하는 신입사원이 상당수에 이르고, 그에 따라 여타 업종에 비해 이직률이 높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건설업계도 이같은 조직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주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임직원들의 자율적 의사에 따라 소통할 수 있는 사내 커뮤니티가 있다.
대형건설사는 물론, 중견, 중소건설사에 이르기까지, 사내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임직원들의 다양한 교류 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직급과 세대를 뛰어넘는 조직의 유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임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여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대관계 형성을 돕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건설경기가 침체된 시기, 사내 커뮤니티는 기업의 또다른 형태의 고객이라 할 수 있는 임직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최근에는 마라톤이나 야구대회 등 개별 업체간 동호회끼리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아, 작은 커뮤니티가 회사 전체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본보가 주최하는 빌더스리그에 참여하는 STX건설 야구동호회 관계자는 “공통관심사로 직원들이 함께 땀을 흘리는 기쁨과 타 업체 동호회와 경쟁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업무활동에서 느끼는 보람과는 또다른 행복”이라며 “이제는 가족과 더불어 전 직원들이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는 터라 책임감까지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진화하는 커뮤니티
건설업계의 조직문화를 바꾸고 있는 커뮤니티가 양적인 팽창과 더불어 질적인 진화도 거듭하고 있다.
단순히 취미활동을 같이 하는 수준의 동호회가 아니라 기업 업무나 각종 사회문제와도 연관된 스터디 그룹이 급증하고 있다,
본인의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더라도, 타부서의 업무를 경험하고 개인적인 상식과 교양을 위한 커뮤니티들이 대거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스터디그룹은 특정 주제에 대한 학습, 연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성과가 있고, 그 성과는 때로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SK건설 홍윤희 상무가 SK케미컬이란 화학기업에 입사해, 지구환경오염과 보전에 관한 스터디그룹 활동을 하다 SK건설 환경사업추진실장을 맡게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홍 상무는 “환경문제에 대한 작은 관심을 갖고 스터디 그룹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본래 전공과는 상당히 떨어진 직책과 업무를 맡게 됐다”며 “하지만 이 또한 새로운 기회로, 작은 커뮤니티 활동이 이처럼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업계는 건설사내 스터디 그룹은 해외시장 공략이 가속화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8년 이후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그 이전 활동하거나 지원을 시작한 기업도 있지만, 경제적인 이슈에 민감한 시기에 주머니 사정까지 나빠지면서 업무 또는 업무 연관 주제에 대한 학습열의가 크데 높아진 것이다.
대형사들은 사내 스터디 그룹만 30~40개가 넘는 곳도 있고, 이들이 제시한 학습성과를 실제 업무에 반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삼성물산의 경우에는 회사차원에서 스터디그룹을 관리, 각종 포상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스터디그룹은 딱딱한 업무공간과 직급간 경계를 넘어,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서로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는 커뮤니티”라며 “조직문화와 업무스타일을 소프트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장되는 네트워크
건설사의 대표적인 커뮤니티는 임직원들의 취미활동에서 출발한 동호회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네트워크의 범위를 무한 확장하고 있다.
회사차원이 아닌 동호회가 고아원이나 노인복지관과 자매결연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완수에 기여하는 한편, 건설현장을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림산업 ‘민들레 봉사단’은 지난 2005년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만들어진 커뮤니티다.
이주할 곳을 찾지 못한 장애우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임직원들의 정성을 모은 것이 사내 커뮤니티로 발전했고, 어느새 매달 1~2차례씩 복지관을 찾아 봉사활동을 벌이게 됐다.
서홍 대림산업 상무는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진 커뮤니티가, 이제는 임직원들의 마음을 이어지고 불우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며 “봉사활동을 통해 직원들은 물론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행복의 기운이 전파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관내 75개 국도 건설공사를 추진 중인 건설사들은 이달부터 모든 현장사무실을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방음벽에 둘러싸여 고립됐던 건설현장이 주민들의 영화관람 및 장터, 견학장소가 되고 현장과 주민들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한 브랜드마케팅 전문가는 “사내 커뮤니티의 사회공헌과 네트워크 확장성은, 회사 또는 브랜드 차원의 직접 마케팅에 비해 임직원들의 만족도 및 고객의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몇 배의 효과를 낸다”면서 “이는 또 잠재 소비자를 향한 기업의 이미지 경쟁력을 높이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