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띄어쓰기 제대로 하려면, 이것부터
띄어쓰기는 왜 필요한가? 띄어쓰기를 하는 목적은 독서의 능률을 높이고 문장의 중의성을 해소하여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띄어쓰기 때문에 한국어 맞춤법이 더 어렵다고 할 만큼, 띄어쓰기에는 까다로운 점이 많다.
한글 맞춤법 규정을 다 외운다고 하더라고, 띄어쓰기에 대한 해결 능력이 별로 향상되지 않는다. 띄어쓰기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띄어쓰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어사전에서 문법적·의미적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띄어쓰기에 관한 규정은 매우 단순하다. 몇 개의 허용 조항은 일단 제외해 두고 큰 원칙만 보면, ‘조사를 제외한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가 전부다. 단어는 품사와 같은 개념이다. 9개 품사(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조사)가 단어다. 이 가운데 조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띄어 쓰면 된다. 조사는 몇 개가 중첩되든 붙여 써야 하고, 품사의 자격이 없는 어미나 접사(접두사, 접미사) 등도 당연히 붙여 써야 한다.
얼마나 간단한가. 그런데 왜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가. 띄어쓰기가 어려운 것은 띄어쓰기의 단위인 단어의 경계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 어사가 한 개의 단어인지 둘 이상의 단어인지, 품사의 자격이 없는 어미와 접사인지 등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동네/학교/가족’의 경우부터 생각해 보자. 모두 띄어 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하나의 단어로 간주하여 붙여 쓰도록 하고 있다. ‘새+자동차/해/순’의 경우는 어떠할까. 형태는 모두 같은데 ‘새해’와 ‘새순’은 하나의 단어로 굳어져서 붙여 써야 한다. ‘보잘것없다’, ‘큰코다친다’, ‘가는귀먹다’ 등은 관용어로서 하나의 단어로 인정되므로 붙여 써야 한다.
이처럼 형태적으로는 단어의 경계를 판단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단어로 간주하여 붙여 쓰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HWP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 교정 기능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인가? 이 교정 기능이야말로 정말 쓰잘머리 없다. 그렇다면 (부산대)한국어맞춤법검사기에서는 다 해결될까? 이 역시 완벽하지 못하다. 당장 시험해 보면 안다. ‘이 들이 얼마나 푸른가.’를 실수로 ‘이들이 얼마나 푸른가.’로 띄어쓰기하였다고 치고 이들 프로그램에 넣어 보면 아무런 오류가 없다고 나온다. 띄어쓰기가 올바르지 못한데도 오류가 없다니 어찌 이 검사기를 믿겠는가.
해결 방법은 없을까? 있다. 확실하지 않고 알쏭달쏭 하다고 생각된다면 사전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사전에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으면 한 단어다. 사전마다 단어 인정 여부가 다른 경우도 있는데,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
다음 단어들은 띄어 써야 하는가, 붙여 써야 하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가?
전주비빔밥, 함흥냉면, 춘천막국수, 영광굴비, 띄어쓰기, 띄어쓰다
‘전주비빔밥’과 ‘함흥냉면’은 한 단어로 굳어진 것이어서 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으므로 붙여 쓰고, ‘춘천 막국수’와 ‘영광 굴비’는 한 단어로 인정되지 않은 두 개 단어이므로 띄어 써야 맞다. 같은 이유로 ‘띄어쓰기’는 붙여 써야 하고, ‘띄어 쓰다’는 띄어 써야 한다.
많은 이가 틀리고 있는 다음 문장을 다시 연습해 보기로 하자.
(a) 우리에게는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집밖에 없었다.
(b) 그 여자의 집밖에 어떤 남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a)는 ‘집만 있다’는 뜻이고, (b)는 ‘집 바깥에’의 뜻이어서 의미상으로도 구분이 된다. 이와 같은 의미 차이를 염두에 두고, 사전을 찾아보자.
‘밖’은 ‘바깥’의 뜻을 지닌 명사인 경우가 있고, ‘밖에’도 또 표제어로서 품사는 조사인데 “체언 뒤에 붙어 ‘그것 말고는’, ‘그것 이외에는’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a)는 ‘집(명사)+밖에(조사)’의 구조이고, (b)는 ‘집(명사)+밖(명사)+에(조사)’의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정도 알고 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a) 우리에게는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집밖에 없었다.
(b) 그 여자의 집√밖에 어떤 남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다음 문장의 띄어쓰기를 바로잡아 보자. 약간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띄어쓰기의 원칙을 상기하면서 해결하면 크게 어렵지 않다.
(a) 우리는 안싸웠다.
(b) 우리는 아니싸웠다.
감각적으로 판단해 보면, (a)는 붙이는 것이 맞을 것 같고, (b)는 길이가 좀 기니까 띄우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안/아니’가 품사인가 아닌가, 어떤 품사인가를 알면 문제는 해결된다. 문맥의 의미로 보아, (a)의 ‘안’은 ‘둘러싸인 가에서 가운데로 향한 곳이나 쪽’의 뜻을 가진 명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아니’는 용언 위에 붙어서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고, ‘안’은 ‘아니’의 준말이다. ‘안/아니’가 모두 동일한 어사로서 부사임을 알 수 있다.
(a) 우리는 안√싸웠다.
(b) 우리는 아니√싸웠다.
그러면 ‘아니하다’가 ‘아니+하다’와 같은 두 개의 단어일까, 복합어로서 하나의 단어일까?
(a) 우리는 싸움을 아니했다.
(b) 우리는 싸우지 아니했다.
하나의 단어라면, 한국어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다. 둘 이상의 단어로 된 이은말도 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수 있지만, 이때에는 띄어쓰기가 된 형태로 올라 있을 터이므로 문제가 안 된다.
한국어사전에 찾아보면, 기본형으로 ‘아니-하다’가 실려 있다. ‘아니하다’는 보조동사 또는 보조형용사로서 ‘용언 아래 붙어/어미 -지 아래에 붙어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사전에서 표제어로 올라 있되 가운데 ‘-’는 띄어쓰기 표지가 아니고 복합어 표지이다. 복합어도 물론 하나의 단어이다. 그렇다면, 앞의 어느 예문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일이 남아있다. (a)에서 서술어는 ‘하다’뿐이다. ‘싸움을’이 목적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아니’는 용언 위에 붙어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이고, ‘하다’는 동사임을 알 수 있다. 즉, ‘부사+동사’의 형태로 두 개의 단어다. 그르므로 띄어 써야 한다. (b)에서의 서술어는 무엇일까? ‘하다’를 서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하다’는 타동사이므로 목적어를 끼고 있어야 하는데 이 문장에 목적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핵심적인 서술어는 ‘싸우지’이고 ‘아니하다’가 보조동사로서 하나의 단어이다. 따라서 붙여 써야 한다.
(a) 우리는 싸움을 아니√했다.
(b) 우리는 싸우지 아니했다.
이제 해결 방법을 알았으니, 한국어사전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경우도 해결해 보라.
(a) 고향으로 가는데 동생에게서 빨리 오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다.
(b) 막내 아이 혼자서 고향에 가는데 위험이 따를 수 있다.
한국어사전을 보면, ‘-는’은 ‘동사의 어간에 붙어서 동작의 현재진행을 나타내는 어미’, ‘-는데’는 ‘동사의 어간에 붙어서 다음 말을 끌어내기 위하여 이에 관계있는 사실을 미리 말할 때에 쓰는 어미’, ‘데’는 명사로서 ‘곳, 경우’의 뜻을 지닌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곳(장소)’이나 ‘경우’로 바꾸어 보아도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문장은 어느 것인가? (b)가 그러하니,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a)의 경우는 ‘가(동사 어간)+는데(어미)’의 형태로, (b)는 ‘가(동사 어간)+는(어미)+데(명사)’의 형태임을 분석해낼 수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어미는 단어가 아니다.
(a) 고향으로 가는데 동생에게서 빨리 오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다.
(b) 막내 아이 혼자서 고향에 가는√데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이번에는 조사에 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다음 문장에서 띄어쓰기가 바른 것은 어느 것일까?
(a)여기에서부터는 대구입니다.
(b)여기서 부터는 대구 입니다.
‘여기’는 대명사이다. 그리고 ‘에서’, ‘부터’, ‘는’은 조사이다. 조사는 단어이기는 하되 다른 단어들과는 달리 단어로서의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주로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과 결합하여 선행명사와 다른 문장성분과의 관계를 나타내거나 의미를 더해 준다. 한글 맞춤법 규정에 조사는 앞말에 붙여 쓴다고 하였으니 여러 개의 조사가 겹치더라도 붙여 써야 한다. ‘대구’도 역시 대명사이다. 그런데 ‘이다’도 조사이다. ‘이다’라는 조사는 다른 조사와 달리 용언(동사, 형용사)처럼 ‘이다/이니/이어서/이니까/’ 등으로 활용을 한다. ‘입니다’도 ‘이다’의 활용형이다. 그러나 조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쓴다.
이와 같이 띄어쓰기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사전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형태가 같은 경우라 하더라도 하나의 단어로 인정된 것과 인정되지 않은 것이 있으므로 한 단어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하다면 무조건 사전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테스트해 보자. 다음에 제시한 단어의 띄어쓰기를 바로잡아 보라. 알쏭달쏭하다면 사전을 활용하여 해결해 보라.
(a) 사회생활, 직장생활, 학교생활, 군대생활, 자취생활
(b) 지난밤, 지난날, 지난겨울, 지난세월, 지난학기
첫댓글 교수님
띄어쓰기가 늘 어려웠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