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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 현대어 풀이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처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나를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더 말씀하지 마시오 사람들이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출전: 악장 가사)
핵심정리 - 작자: 미상
* 갈래: 고려 속요, 장가(長歌), 3음보, 6구체 민요, 非聯詩(연의 구분이 없는 시)
* 주제: 어머니의 사랑 예찬(禮讚)
* 기타: 신라의 '木州歌'와 '孝'를 주제로 하는 내용이 비슷함.
* 형식: 향가계 시가로 보기도 함
▶ 3단계 시상 전개
* 표현 기법: 영탄법, 반복법,
* 은유법: 호미(보조) → 아바님(원), 낟 (보조) → 어마님(원)
* 비교법: 아바님과 어마님, 호미와 낟
* 표현 기법에 대한 평가: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쇠붙이에다 근본적으로 '따뜻한 이미지'를 지닌 어버이의 사랑을 비유한 것은 잘못이다. 게다가 그 사랑을 '예리하고 섬짓한 이미지'를 지닌 '날'에다가 비유한 것은 더욱 큰 잘못이다. 아무리 이질성이 클수록 참신한 비유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에서의 비유는 참신한 것이 아니며, 이 작품의 문학성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다.
목주 땅에 한 여인이 있었다. 아버지와 계모를 잘 봉양하여 효녀로 이름이 났으나, 아버지가 계모의 말만 듣고 딸을 심히 구박하였다. 그럴수록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였으나 결국 부모로부터 쫓겨나고 말았다. 부모를 하직하고 나선 그녀는 산 속의 석굴에서 사는 한 노파를 만나 사정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노파가 불쌍하게 여겨 함께 있기를 허락하였다.
그 후 그녀는 그 노파를 부모 섬기듯 극진히 모셨다. 노파는 그녀를 며느리로 삼았다.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며 또한 알뜰하게 살아 큰 재물을 모았다. 부모가 가난하게 산다는 소식을 듣은 그녀는 자기 집에 부모를 모시고 지성으로 봉양하였으나, 그 부모는 끝끝내 즐겨하지 아니하므로 효녀는 이 노래를 지어 한탄하였다고 한다. 이 설화는 고려사에 수록되어 있는데, 지방의 부녀자들이 이 노래를 구전하여 불러 왔다고 전한다. 사모곡은 이 목주가의 후대 행태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1
고려 시대 속요의 하나. 작자·연대 미상으로 일명 <엇노리>라고도 한다.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금합자보(琴合字譜)>에 사설 및 악보가, <악장가사(樂章歌詞)>에는 그 가사만 전한다. 이와 같은 악보의 기록으로 미루어 <사모곡>은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설은 어머니의 사랑을 기린 내용이다.
악보상에 나타난 <사모곡>의 음악적 내용은 <시용향악보>에 의하면 계면조의 선법에 16정간보 8행의 길이로 되어 있고, <금합자보>에 의하면 거문고의 대현(大絃) 5괘가 궁(宮)인 임종평조(林鐘平調)로 되어 있다.
국문학계에서는 사모곡을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목주가(木州歌)와 동일한 곡으로 보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사모곡>이 대부분의 고려 속요가 지니고 있는 3음보의 율격의 반복 어구와 대구의 사용, 여음(餘音)의 사용, 단연체(單聯體)의 시상을 연장체(聯章體)의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그 원형상으로는 <목주가>와 관련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악보로 정착된 <사모곡>은 <목주가>와는 달리 완전한 고려속요로의 전환을 보인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해와 감상2
1,2구에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호미와 낫으로 비유하고 있다(호미는 아버지에 낫은 어머니에 각각 비유함). 3,4구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보다 깊음을 토로하고 있으며, 5,6구에서는 3,4구의 의미를 반복, 강조하여 시를 끝맺고 있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부모, 그 중에서도 어머니께 대한 생각과 느낌을 노래하고 있다. '아소 님하'에서 '아소'는 감탄사로서 10구체 향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시조 종장 첫 구(3음절)에까지 그 형식적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구체 단연(單聯)의 짧은 형식에 어머니의 사랑을 예찬하는 마음과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진솔하게 나타나고,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그것보다 훨씬 섬세하고 깊다는 내용을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어 노래의 동기를 '원부(怨父-아버지를 원망함)'라고 보는 이도 있다. 단순하고 간결한 작품이지만 이 작품 속에는 일정한 목소리를 지닌 화자가 있어 주제를 압축하여 전달하고 있다. 비유의 대상으로 낫과 호미가 등장한 것으로 보아 작가 계층이 소박한 농민층을 짐작하게 한다. 주제 면으로 보아 '오관산요(五冠山謠)', '상저가(相杵歌)', '방아타령'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사모곡' 전편을 통해 이 작품의 화자의 모습은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작품을만든 작가와 마찬가지로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식이라는 점이 나타날 뿐이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부모, 그 중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말하고 있다. 화자가 말하는 화제(話題)가 소중한 어머니에 대한 것이기에 그 목소리는 '업스니이다', '어이어신마'에서 정중하고 간곡하다. 한편 이 노래는 일명 '엇노리'라는 이름으로도 전해진다.
이해와 감상3
고려 시대, 국가에서 관장하며 궁중에서 전승되던 음악에는 아악, 당악, 속악의 세 가지가 있다. 아악은 국가에서 거행하는 공식적인 행사 특히 천지신명이나 왕가의 제사에 쓰이던 음악으로 엄격한 기풍을 갖추고 까다로운 절차에 의해 연주되었다. 이에 반해 당악과 속악은 공식적이지 않은 행사 특히 잔치를 베풀 때 쓰이던 음악으로, 이 두 가지는 유래에 따라 구분된다. 즉 중국에서 들어온 것은 당악이라 하였고, 국내에서 불리다가 궁중에 들어온 노래는 속악(속요)이라 한 것이다. 비속하다거나 세속적이라 하여 속악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그러면 민간 사회에서 생성된 민요를 궁중에서 선택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먼저 민간의 아름다운 풍습을 알 수 있는 것을 꼽았을 것이고, 또한 궁중에서 놀이를 하며 즐기는 데 적합한 노래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놀이를 하며 즐기는 데 적합한 노래'란 어떤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속요가 궁중에 들어올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민간에서 불리던 민요가 궁중으로 들어가 속악으로 자리 잡던 시기는 고려 후기로 볼 수 있다. 고려 후기는 혼란의 시기였다. 국왕과 권문세족의 사치와 향락이 극에 달했던 시기인 것이다. 속악은 이러한 배경 아래 대부분 국왕과 권문세족들의 향락 추구를 위해 불리던 노래이다.
그러나 궁중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민요를 채집했던 간에 민요가 속악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계속 전승되고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속요를 통해 고려 시대 민중의 생활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속요가 국왕이나 권문세족들의 향락을 위해 쓰였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민요를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고친다 하여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럽고 솔직한 사랑의 감정과 민중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한 사연들을 일일이 다 제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속요에는 고려 시대 민간의 아름다운 풍습과 더불어 민중들의 어려운 생활상 그리고 그들의 솔직한 사랑의 감정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사모곡"은 소박한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꾸밈없이 노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모곡"은 원래 신라의 목주(木州)라는 특정 지방에서 불려지던 제목도 없는 노래이다. 그러나 점차 이 노래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엇노래"라는 제목으로 불리게 되었다. "엇노래"란 이름은 '어머니의 노래[사모곡]'를 뜻한다. 먼저 "사모곡"의 구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사모곡"의 1-2행에서는 호미와 낫을 비교하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낫에, 아버지의 사랑은 호미에 비유하여 둘 다 날[刃]을 지녔지만 낫의 날이 호미의 날보다 더욱 잘 든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행과 5행은 아버님도 어버이지만 어머니만큼 우리들을 사랑하실 리 없다고 하여 어머니의 사랑을 부각시키고 있다. 나머지 행에서는 반복을 통해 그 사실을 확고하고 확인하며 끝을 맺고 있다. 4행의 '위 덩더둥셩'은 북 소리, 즉 악기의 의성어이다. 따라서 "사모곡"은 전체적으로 3단계의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구성으로 볼 때 "사모곡"은 호미와 낫의 비유를 통해 어머니의 크신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호미와 낫의 비유를 통해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더 깊고 자애롭다는 것을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각각 낫과 호미라는 농기구에 비유했다는 사실은 이 속요가 '농사'왕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즉 "사모곡"은 농부들이 생활 체험에서 생겨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어 오던 민요인 것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상저가"와 더불어 그 시대의 아름다운 풍습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고려 속요라 할 수 있다. 방아를 찧으면서 불렀던 "상저가"는 힘써 일하며 어버이를 섬기겠다는 효 사상을 바탕으로 한 노래이다.
그 외에도 "상저가"는 "사모곡"과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어버이의 사랑을 다루고 있으며, 장이 나누어져 있지 않은 짧은 형식을 가진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한 둘 다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인 '노동요'로 쓰였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이렇듯 "상저가"와 "사모곡"에는 주로 농사를 짓던 고려 시대 민중들의 소박한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속요는 그 시대 민중들의 노래인 민요를 기본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따라서 속요에는 고려 시대 민중들의 때 묻지 않은 정서와 평민들의 솔직한 생각과 정서를 표현한 고려 속요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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