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돼지 삼형제’와 ‘마음의 정원’
오래전 일이다. 하루아침에 삼풍백화점은 물론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그 참사를 기억한다. 다 부실 공사가 원인이다. 드라마 “상도”에서 임상옥은,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은 하수다. 작은 이익을 보려고 더 큰 위험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이들로 인해 공동체 다수가 위험에 직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보다.
동화 ”아기돼지 삼 형제” 편에서도 그 교훈을 얻는다. 부모가 삼 형제를 독립시켰다. 첫째 돼지는 게을러서 지푸라기로 집을 지었고, 둘째는 통나무로 된 집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막내 돼지는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벽돌로 튼튼하게 집을 지었다. 어느 날, 늑대가 찾아왔다. 입김으로 훅 불어대니 지푸라기로 지었던 집이 홀라당 날아가 버렸다. 첫째 돼지는 둘째 돼지 집으로 도망쳤다. 늑대는 둘째 돼지 집에 찾아와, 또 입김을 불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몸으로 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 둘째 돼지는 첫째와 함께 막내 집으로 도망쳤다. 늑대가 입김을 아무리 세게 불어도 꿈쩍하지 않았고 몸으로 부수려고 시도해 봐도 벽돌로 지은 집은 안전했다.
노아 할아버지가 방주를 지은 스토리가 성경에 나온다. 무려 일백 이십 년 동안 아주 튼튼하게 방주를 만들었다. 왜 그리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야 했을까? 짧은 시일내에 뚝딱 만들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안전을 위해서이다. 만약 노아가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단시일 내 배를 만들었다면 사십 주야 내린 홍수를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결과가 좋으면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었다 할지라도 무시하고 넘어가야 할까? 아니다. 삶에도 지켜야 할 도리와 원칙이 있는 법이다.
“아기 돼지 삼 형제”에서 막내가 형들과 달랐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생각의 차이”, 둘째로 “재료의 차이”다. 우리는 가능하면 손쉽게 돈을 벌고 손쉽게 일을 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쉽게 버는 돈은 쉽게 낭비하게 마련이다. 오래전, 캐나다 위니펙에서 로또가 당첨되어 백만장자가 되었던 사람이 있었다. 삼 년도 채 되지 않아 가진 돈을 모두 흥청망청 탕진해 버리고 자살해 버렸다. ‘지푸라기’와 ‘나무’라는 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을뿐더러, 빠른 시일 내에 집을 완성할 수 있지만 늑대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내 마음의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을 감명 있게 읽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각자 마음의 정원을 가꾸고 있다. 다소 귀찮기는 해도 정기적으로 잡초를 뽑아주고 물도 주고 마음을 써주면 아름다운 정원을 매일 감상하고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가만히 놔두면 잡초가 자라서 정원은 어느새 엉망진창이 돼버리고 만다. “게으름”은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을 좀먹는 독이다. 동화 “아기돼지 삼 형제”에 등장하는 첫째와 둘째는 게을렀기에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고도 “신 포도를 먹는 여우처럼” 자신을 합리화한다.
우리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다. 하나님이 영이 머무는 곳이다. 나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라면 늘 나를 정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세상의 온갖 잡다한 쓰레기와 가쉽으로 채우지 말자. 내 몸과 마음을 더럽히지 말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나를 정결케 하자. 말씀을 묵상할 때 가장 튼튼하고 좋은 재료로 나의 영적인 집을 짓게 된다.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생각과 언어가 깨끗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다. 덕을 끼치는 말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할 것이다. “무릇 다스릴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잠언의 말씀을 상고해 본다.
이진종 <시인, 목사>
*이 글은 디스타임/알버타 저널에 실린 글임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