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영혼/김준현
커피에 든 내 영혼을 빨대로 마셨다 카페인이 지나치다 이 호흡을 커피를 위해 쓸 것이다 지난번에는 풍선을 위해 썼는데 아까웠다 며칠 동안 풍선의 노화가 진행되었지 쭈그렁망탱이가 되었지 삶이 다했네 얼굴이 다했네 볼이 홀쭉해지도록 빨대로 영혼을 남은 영혼을 누워서 보내는 사람에게 살 만큼 살았다는 악담을 하는 느낌이랄까? 빨대 말고 주사라면 어떨까? 주삿바늘은 늘 깊은 데까지 슬프고 피의 길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균인지 나그네인지 거기에 세워 둘 수 있을까?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면 일상처럼 하는 일인데 의대를 나오려면 영혼을 얼마나 마셔야 하는지, 밤은 커피 향으로 가득하고 굳은 목을 풀며 올려다 본 밤하늘 별자리는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혈관 같을 거야 내 눈에는 빛 네 안경에는 빛 16개월 아기가 만진 안경 렌즈에 안개가 묻었다 닦으면 잘 보이겠지만 안경닦이가 없고 시력 0.1과 안갯속 세상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영혼의 이분법 어때? 잘 것인가 혹은 영화 「Soul」을 다 볼 것인가 이제 커피는 제 기력을 다했고 나는 자야겠지 우주복 내부의 산소량을 체크하고 숨을 깊이 들이쉬고 아침까지 무사하기를 빌며 굿나잇
얼띤感想文
아주 멋진 시 한 편을 읽었다. 커피와 밤 같은 세상, 카페인과 노화 방지에 대한 이 기분 그리고 슬프고도 긴 악담처럼 질긴 이 한목숨 갖가지 들이부어야 하는 밑 빠진 독에 의지할 곳 없는 하나의 중생에서 피의 길목은 커피 향처럼 짙기만 하다. 잔에 담은 커피처럼 세상 바라보는 눈빛은 언제나 보아도 깜깜하다. 그것은 16개월 아기가 만진 안경 렌즈에 안개처럼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십육 개월 여전히 이 하나 없이 먹고 싸며 지내는 이 길에 얼마나 저질러야 별에 닿을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별은 시인(나의 處地)의 세계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해탈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해방 같은 것, 죽을 때까지 이룰 수 없는 과업인 것도 잘 알면서도 이 밤 커피 한 잔 마신다. 주삿바늘, 참 딱딱하고 부러질 수 없는 어떤 성질을 대변한다. 주사와는 또 다르다. 시력 0.1 삶을 바라보는 측도 그것은 십분지일 늘 모자라다. 카페人이 카페인처럼 어느 골목에서 삶을 헤아려 본다. 곰방대 물고 있는 고흐의 눈빛만 맑다. 하얀 이 드러내며 웃고 있는 죽은 자의 작품 하나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달랑 속옷 한 장 걸치며 피부에 닿는 기계 저 선풍기 바람에 안도하는 내일은 어떻게 흘러갈까! 빨대에 수우욱 오르는 밀감 주스 같은 것 그건 내 언변과 언변에 깔린 기술적 파동을 미리 짐작해 보는 일 빨대의 한쪽 끝과 나머지 한쪽 끝과의 거리 그리고 단박에 밀어 넣는 고체성 오늘도 나는 산소량을 체크 해 본다.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