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길노래』 여적
이하석 시인
#해월
“그는 여전히 존재하는 이다. 우리 세상 구석을 가고 온다, 속 궁금한 보따리 짊어진 채 떠도는. 그가 오가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 언제나 현실의 안으로 ‘나’를 부르는 사람. 그럼으로 그를 기꺼이 나의 현관 안으로 늘 공손하게 맞아들인다. 오래, 흠모했다. 이 서사의 형식은 그 그리움의 정이 맺힌 말이다. 기껍지 않은가, 이 만남은? 그를 통해 내 속 꿈틀대는 질문과 대답으로 흐르는 길을 느낀 다. 그 느낌들을 말로 드러냈으니, 나도 천생 길 위의 사람. 그래 우린 늘 길 위에서 정을 나누는 존재들. 내 그리움은 그리움이 덧나고, 그는 오늘도 나를 흘러간다. 달빛 가득한 홍수여.”
최근 낸 서사시집 『해월, 길노래』의 후기다.
해월은 조선조 말 조정으로부터 수차에 걸쳐 집중적인 지명 수배를 받아, 평생을 피해 다녔다. 그런 가운데서도 수운 최제우로부터 전해 받은 동학사상을 열정적으로 전파해냈다. 우리 근대정신의 획기적인 전환을 예고하는 ‘인간 평등과, 만물을 한 덩어리로 담는 큰 사상’을 온몸으로 개진해 보였다. 그는 민중들의 삶을 종속이 아닌 주체의 존재로 끌어올렸다. 특히 여성의 지위를 한울의 자리로 격상 시켰다. 아울러 만유가 한 몸이라는 환경과 생태의 보존을 위한 사상의 틀을 근대 최초로 마련,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평등과 생태 환경 운동의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다.
이 시집은 “선 바다 가라앉은 돌 / 달빛이 어루만지네 // 돌은 눈 떠서 높은 수면을 노래하네 // 구르네, 바닥 구르네 / 달빛 어룽진 채 / 떠오르네”의 「서시」를 시작으로, 그의 탄생과 젊은 날의 행적은 물론 백두대간의 골짜기들을 잠행하고 출몰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인간 옹호의 사상을 펴 보이는 모습들, 그리고 체포되어 교형에 처해지는 마지막 모습까지, 전 생애의 서사를 시조 형식을 통해 단편적으로 묘사하여 모자이크 식으로 구성해 보인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오랫동안 나의 ‘과제’였다. 대학 다니던 때부터 그의 ‘도망의 삶’을 통한 ‘위대한 참여의 실천’이란 자칫 모순되는 듯한, 우리 역사의 한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행적을 서사화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처음에는 소설로, 그 후에는 장시로 구상되었으나 최 근 들어 우연히 그에 관한 시조 몇 수를 얻는 바람에 이를 조금씩 넓혀 나가다보니 수십 수를 모으게 되어 결국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시조
한 인물의 서사를 엮는 걸 시조로 잡은 게 이런 글을 쓰게 된 까닭이 되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하고, 대범하게 받아주길 부탁하고 싶다. 시조를 시와 다른 장르라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조가 우리 민족, 특히 우리 시인들의 DNA 속에 흐르는 원천적 정서의 하나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내게서도 특별히 이질감은 들지 않았다. 단시조를 고집한 것은 어쩌면 단시조가 가장 시조다운 모습이라서 그 틀을 고수하려는 나름의 의도도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다만, 현 시조시단이 보이는 현대 시조의 다양한 실험성과 새로운 근대성의 자각 등이 의식되었으나, 비천한 나의 재주로는 그것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뜻밖으로, 이 시집을 엮어낸 다음 많은 시조시인들의 격려를 받았다. 편지로 메시지로 메일로 그들은 나를 격려했다. 시조시인들의 눈치를 많이 살핀 나로서는 그게 너무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더욱 두려움을 느낀다.
『해월, 길노래』는 앞으로 보충하고 더 고쳐가면서 다듬어나갈 생 각이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나는 이후 시조에 대한 생각을 전보다 더 하게 될 듯하다.
이하석 1948년 고령 출생. 1971년 《현대시학》 시 추천으로 문단 등단.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시집 『투명한 속』 『연애 간 間』 『천둥의 뿌리』 『기억의 미래』 등. 서사시집 『해월 길노래』.